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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글 Apr 17. 2023

봄을 먹어 봄!

제철 식재료의 끝판왕, 봄나물 이야기.

 글방이 시작되기 전 계획안을 받으면 주제에 따라 어떤 글을 쓰면 좋을지 이런저런 글감들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글감이 바로 떠오르는 주제도 있고, 그렇지 않은 주제도 있지만 이번 봄 글방의 3번째 주제인 ‘봄나물 보고서’는 유난히도 내 마음을 들썩였다. ‘봄나물’이라는 키워드 하나를 두고 얼마나 많은 상상을 했던지, ‘도서관에 가서 ‘봄나물’ 책을 찾아 읽고, 근처 재래시장 구경을 해 볼까? 친정 텃밭에 갈 수 있다면 노지의 봄나물 사진을 찍어도 좋겠군,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나물 요리도 도전할 테다!‘ 마음먹고 봄 따라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며 봄나물 수집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두 아이의 학교와 어린이집을 오가는 엄마의 일과 개인적인 일들이 동시에 몰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큰아이가 발레 수업을 하는 동안 같은 건물의 대형 마트를 둘러보는 것이 지난 2주 사이에 허락된 유일한 봄나물 수집이었다.

      

 마트에 들어서자 ‘제철은 향긋하구나’라는 광고 문구가 걸려있는 제철 식재료 코너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서니 향긋한 향을 풍기는 미나리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미나리’는 3월을 대표하는 건강 식재료 중 하나로 달면서도 매운 향을 가지고 있다. 각종 비타민이나 몸에 좋은 무기질과 섬유질이 풍부하고 해독과 혈액을 정화시키는데 좋은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보통 손질한 미나리로 겉절이를 해 먹거나 살짝 데쳐 간장, 마늘, 참기름 등을 넣어 나물무침을 해 먹는다. 비교적 간단한 조리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지만 선뜻 장바구니에 넣지는 못했다. 가장 만만한 삼겹살을 구운 기름에 미나리를 함께 구워 먹는 ‘미나리 삼겹살’을 먹을까 하다 채식 위주의 식단을 해야 하는 남편의 얼굴이 떠올라 바로 마음을 접었다.     

  

 옆 매대로 발걸음을 옮기니 그곳엔 냉이가 진열되어 있었다. 특유의 흙내음을 가지고 있는 ‘냉이’는 맛 또한 쌉쌀하다. 보통은 들판이나 논둑, 밭 등의 야생에서 채취하지만 밭이나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냉이는 잎과 줄기, 뿌리까지 모두 먹을 수 있는 식물이기 때문에 손질을 특히 신경 써서 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나도 할 말이 많다. 매일 비슷한 된장국만 끓이는 변하지 않는 내 모습에 질려 호기롭게 냉이를 구매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평소 끓이는 된장찌개에 냉이만 얹으면 되겠지 하고 간단하게 여겼으나 냉이는 만만치 않은 녀석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손질의 어려움이었다. 흐르는 물에 냉이를 씻으며 흙을 털어내고, 잔뿌리들을 칼로 살살 긁어내야 하는데 이 뿌리 손질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자잘한 틈 사이에 끼인 흙은 또 어찌나 잘 떨어지지 않던지. 간신히 뿌리 손질을 마친 다음 시든 잎을 떼어내며 다짐했다. 다시는 냉이를 사지 않으리라. 물론 요즘엔 손질 냉이도 팔긴 하지만 미리 소분되어 있거나 깨끗하게 손질된 식재료는 잘 사지 않는 나는 그냥 냉이를 외면하기로 했다.      

 

 이대로 봄나물 수집이 끝나는 것인가. 가평 친정집에라도 갔다면 사방에 널려있는 ‘돌나물’을 따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른 새벽, 뒷산에 오른 아빠가 따온 야생 두릅을 아침 식사 자리에서 맛보는 즐거움도 누렸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어린 쑥을 캐고, 그 쑥을 엄마에게 건네면 쑥과 쌀가루를 쓱쓱 버무려 찜통에 찐 ‘쑥버무리’가 뿅 하고 나타나는 일 또한 지금 이 계절엔 흔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저런 일들로 친정을 가지 못했더니 제철 식재료를 맛볼 수 없어 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물김치 익었어, 나물 무쳐놓은 거랑 같이 가져가’

 추위가 오기 전에 담근 김장 김치는 묵은지가 된 지 오래고, 식탁 위에 오르는 채소들도 별반 특별한 것이 없어 가뜩이나 흥미 없는 끼니를 차리는 일이 더 재미없게 느껴지던 때, 엄마로부터 반가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봄의 시작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는 부모님의 밭에서 제철 식재료들을 얻어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무거운 돌을 옮기다 허리를 삐끗한 아빠의 회복이 더뎌 올해는 적극적으로 부모님의 텃밭 일을 도와주면서 식재료를 얻어오려는 마음은 먹었었다. 하지만 잘 키운 식재료들만 쏙쏙 골라 받아먹는 역할 또한 부모님의 보람을 위한 나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다. 아이들을 보내고 반찬을 가지러 갈 테니 반찬은 냉장고에 잘 넣어달라 답장을 보냈다.      

 

친정 엄마의 머위나물 무침

 엄마의 반찬은 물김치와 머위나물 무침이었다. 물김치는 아이들을 향한 외할머니의 마음, 사과와 무가 아이들의 한입 크기에 맞춰 총총 썰어져 있었고, 연한 초록색의 제철 미나리까지 빠지지 않고 들어 있었다. 미나리만 쏙 골라 국물과 함께 맛을 보니 순식간에 입안이 개운해졌다. ‘머위’는 11년 전 친할머니가 살아계시던 때까지 할머니께서 해주시던 반찬이었다. 매년 4월이면 할아버지 기일에 맞춰 온 가족이 모이곤 했는데 그날을 위해 할머니는 구부정한 허리로 들과 밭을 다니며 봄나물들을 잔뜩 캐 서늘한 ‘광’에 보관을 해두었다가 식구들이 모이면 밥상 가득 나물 반찬을 해 주셨다. 할머니는 머위를 된장에 무쳐 상에 올렸다. 흰 밥을 뜬 수저마다 ‘머우’도 함께 먹어 보라 권했지만 쓴맛의 머위에는 영 손이 가지 않았다. 머위의 쓴맛을 즐기게 된 건 온전히 식탁을 책임지게 된 결혼 후부터였다. 그제야 하나의 식재료가 상에 오르기까지의 고생과 제철 식재료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 그래서 엄마의 반찬이 여전히 반갑게 느껴진다.      

 

 지역에 따라 ‘머우’ 또는 ‘머구’라고도 불리는 ‘머위’는 습기가 있는 곳에서 무리 지어 자란다. 집 주변에 심어 두기도 하며 작물로 재배를 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여름에는 길쭉하고 단단한 줄기 껍질을 벗겨 들깨 가루에 볶아 먹기도 하지만 봄에는 여린 잎을 따다 나물로 무쳐 먹는 게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머위 자체의 쓴맛이 강해 물에 담가 쓴맛을 뺄 수도 있지만 엄마의 머위무침엔 쓴맛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는 흰 밥 위에 머위나물을 올리고 바싹 튀긴 계란 프라이와 함께 비벼 먹는다. 다른 반찬은 필요 없다.      

 

 배부르게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서울과 가평을 오가며 밭일하는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고마운 마음을 가득 담아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들이 물김치를 잘 먹는다고, 머위나물도 남기지 않고 먹겠다고. 서울보다 봄이 늦게 오는 곳인데 벌써 봄나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냐고, 우리도 곧 가평 집에 놀러 가겠다며 땅 위의 제철 식재료를 맛본 즐거움에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건만 엄마의 답장은 간단했다.      


 ‘엄마도 마트에서 산 거야. 가평은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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