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의 글 Jul 10. 2023

'고전'하는 '고전'읽기

#2 오늘은 왠지 혼자 있고 싶네요.

 책 모임을 하다 보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게 된다. 책 모임의 묘미 중 하나는 혼자라면 선뜻 손이 가지 않을 책들도 시도하게 되는 것! 보통은 넓은 시야로 생각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곤 하지만 반대로 ‘난 0개 언어 능통자인가..’하며 문해력의 수준을 의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과학 서적은 물론이고, 나를 곤란하게 하는 몇 가지 종류의 책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바로 ‘고전’이다.    

 

 지난 6월, 4개월간 진행되었던 서평 쓰기 모임인 ‘윤슬’이 마무리되었다. 이 모임은 책구름 출판사의 편집장님과 함께했던 모임으로, 나 포함 7명의 멤버들이 4권의 책을 함께 읽고 서평을 쓰는 모임이었다. 이 모임은 미리 각자 원하는 책을 골라 발제자를 정해 매달 둘째 주에는 발제와 토론을 하고, 2주 후엔 각자 쓴 서평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편집장님께서는 아니 에르노의 <얼어붙은 여자>, 핍 윌리엄스의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 대니 샤피로의 <계속 쓰기:나의 단어로> 이렇게 총 4권의 책을 선정해 두고 사전 모임날 멤버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어디 보자.. 첫 발제는 부담스러우니 패스, 마지막 발제는 오래 기다려야 하니 패스, 그렇다면 남은 책은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과 <등대로>.      


 대체 무슨 용기로 그랬을까, 정말.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그날의 나는 줌 화면 너머로 수줍게 손을 들고 외쳤다. ‘저, 등대로요!!’     


 '고전'하며 '고전'을 읽는다더니 <등대로>는 예상대로 만만치 않았다. 학창 시절 너덜너덜했던 ‘수학의 정석’ 집합 부분처럼 이 책 또한 앞부분만 몇 번을 반복해 읽어야 했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한국 이름이 아니라서..? 어려운 건 절대 아닐 텐데 등장인물의 이름과 특징을 적어 보기도 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읽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의식의 흐름’ 기법을 논하는데 나는 그게 뭘 말하는지 조자 책장을 덮을 때까지 몰랐고, 전반적인 스토리도 딱히 와닿지 않았다.

그래서 등대에 가긴 간다는 거야..? 혼란스럽던 날들.

 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발제를 하다니, 게다가 그날은 특별 게스트까지 모시기로 한 날. 모임 당일 아침부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하루는 왜 이리 짧은가, 밤 10시가 다가올수록 머릿속은 점점 백지처럼 하얗게 질렸다. 하 도망가고 싶다..     


 2시간 30분 정도 진행된 발제 모임이 끝났다. 이불을 밤새도록 뻥뻥 차도 모자를 정도로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명색의 발제자였는데, 덜덜 떨고 청중처럼 모임 분들의 대답에 감탄만 하며 끝난 나의 첫 발제.. 함께 준비한 멤버분께는 또 어찌나 미안하던지, 침대에 누웠지만 정신은 점점 또렸해졌다.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어쨌든 발제는 끝이 났고, 다음 과제만 잘 해낸다면 그래도 좀 낫겠지 생각했다. 이번 서평은 등장인물 중 한 명을 골라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는 형식으로 쓰기로 했다. 서평을 위해 다시 한번 ‘등대로’를 펼쳤다. 모임 때 나눈 이야기들 덕분인지 재독의 즐거움을 조금은 알게 되었지만, 그건 그냥 조금씩 고전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는 거지 이 책을 가지고 글을 써야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였다.      


 머리카락을 쥐어짜며 ‘램지 부인’께 편지를 썼다. ‘은아’가 ‘은아’에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마감일이 다가오자 단톡방은 한숨으로 가득 찼다. 모두 쓰기의 고통을 토로하고 있었다.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나만 어려운 건 아니군? 다행이야.      


 하지만 멤버들의 글을 받아 들자 상황은 달라졌다. ‘아니, 뭐야, 또 나만 엉망이야.....’ 고통을 호소하던 멤버분들의 글은 엄지 척!(네이버 글비배곳 카페에 오시면 볼 수 있어요!) 반면 난.. 분명 제출 전 몇 번을 다시 읽었는데도 몰랐던 치명적 실수, ‘램지 부인’께를 ‘릴리 부인’께로 쓴 걸 시작으로(윤슬 멤버분께서 먼저 발견, 조용히 1:1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고마워요!) 편지의 내용조차 한없이 가벼워 누가 봐도 아직 이해가 덜 되었나..? 싶을 정도. 다정한 글벗들은 그럼에도 내 글을 열심히도 읽어주셨다. 하.. 커다란 내 몸이 다 들어갈 거대 쥐구멍 찾습니다...


 원래도 어려웠던 서평 쓰기, 마음은 점점 더 쪼그라들고 쓰는 일을 멀리해야 하는 건가.. 고민을 하며 어떤 정신으로 모임에 참여했는지도 모르게 끝날 시간이 다가왔다. 우리는 5월 한 달간의 <등대로> 모임을 인사와 소감을 나누며 모임을 마무리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저.. 혼자 있고 싶어요, 죄송한데 다들 로그아웃 해주실래요..? 엉엉엉”


  며칠은 진한 남색의 책 표지만 봐도 고개를 돌리곤 했는데 그때의 괴로움이 잊혀졌는지 <등대로>를 다시 펼쳐보고 싶어졌다. 그녀의 다른 책인 '자기만의 방'도 읽어 보고 싶고, 서평도 다시 쓰고 싶고. 이것 참 신기한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괜찮아, 독서 모임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