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크게 한숨을 쉬었다. 거울 속 표정은 시원섭섭한 듯 묘하다. 오프라인 모임이야 보통 오전에 진행되니 대략 점심 후면 모임이 끝나지만, 아쉬운 마음에 자정이 지나야 겨우 헤어지는 온라인 화상 모임을 마치고 나면 긴장이 풀리면서 엄청난 피곤함이 몰려온다. 하지만 모임의 여운이 남은 탓일까, 묘한 흥분감이 감돌아 오히려 좀처럼 잠에 빠져들지 못한다. 이불속에 누워 모임 중에 내가 한 이야기를 가만히 떠올리다 허공에 주먹질을 하거나 이불을 발로 뻥뻥 차다 지쳐 잠드는 건 늘 따라오는 모임 후유증.
2019년 9월, 영등포의 한 작은 그림책 책방에서의 강의를 시작으로 독서 모임에 참여한 지 어느덧 4년 차. 독서 모임은 커녕 혼자 책 한 자 읽지 않고 몇 년의 시간을 보냈으면서 덜컥 독서 모임 운영자를 위한 강의를 신청한 과거의 나! 이유는 하나였다. 엄마들의 세계를 벗어나 나의 세계를 찾고 싶다는 것.(+sns 속에서 말없이 남몰래 흠모한 이화정 작가님이 너무 뵙고 싶었다.)
<2019 첫 모임, 이화정 작가님께 받은 메세지 카드.>
3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으면 무뎌질 만도 한데 모임을 앞두면 여전히 떨린다. (이건 정말 비밀이지만 화상 모임 시간엔 너무 긴장이 되어 커피 대신 와인을 마신 적도 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하는 일은 아니지만 잘 보이고 싶은 일, 그리고 잘 해내고 싶은 일. 나에겐 독서 모임이 그랬다.
모임 계획안을 받아 드는 순간의 설렘을 가장 좋아한다. 물론 그다음부터 조금 사정이 달라진다. 미리미리 책도 읽고, 글도 쓰면 좋으련만 어쩜 그리 집중을 못하는지, 책 한쪽 읽다 SNS에 수시로 들어가는 건 너무나 흔한 일, 글 한 편 쓰기 위해 첫 줄을 시작하려면 1시간은 준비 시간이 필요하고, 머릿속에 전구라도 켜진 듯 갑자기 화려한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려 하면 아이들 하원 시간이 다가온다. 분명 다음 모임까지 꽤 긴 시간이 남아 있었는데 막상 모임 준비를 하는 건 하루 이틀 전이었던 날도 부지기수. 스스로 생각해도 준비가 미흡한 날엔 모임 시간이 다가올수록 배가 스륵스륵 아파오기 시작한다.
모임 중엔 또 어떻고? 첫 순서로 발표를 하게 되면 ‘아.. 음.. 어.. 저요..?’하며 뜸만 들이다 횡설수설하고 중간이나 마지막 순서로 발표를 하는 날엔 내 앞에 계신 분들의 이야기는 하나도 듣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내가 할 얘기 정리하기 바쁘다. 그렇게 머리를 굴리고서 말이나 좀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말하는 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어버버거리다 말을 끝내기 일쑤다. 다행히 강아지떡.. 같은 나의 말도 찰떡처럼 알아채고 이해해 주시는 모임 선생님들이 계서 얼마나 다행인지!
등 떠민 사람도 없는데 제 발로 모임에 찾아간다. 자발적 마감 모드로 매일 쫓기는 사람처럼 종종거린다. 수입이 생긴다거나(오히려 적자), 어떤 또렷한 결과물이 보이는 일은 아니지만 읽고 쓰는 행위를 스스로 '일'이라 칭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차곡차곡 시간은 쌓였고 어느새 독서 모임은 내 삶에서 가장 유의미한 일 중 하나가 되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서로의 이야기에 깊게 감응하는 순간을 사랑한다. 어딘가엔 나랑 비슷한 사람이 있겠지. 여전히 서툴지만 독서 모임에 가는 사람,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멤버 중 1인이라는 타이틀에서 충분한 행복을 느끼고 있는 사람, 혹은 여전히 시작점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사람, 그 사람을 위해 글을 쓰고 싶어졌다.
며칠 후 7월의 첫 목요일엔 내 마음 속 가장 커다랗고 든든한 울타리 <책 모임 선향>에 간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