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 몫의 짐만 싸서 서울역으로 갔다. 종이 기차표를 들고 타던 시절이 마지막 기차 여행인 나에게 모바일 티켓(심지어 검사도 안 함!!)을 핸드폰에 저장해 두고 타는 기차 여행이라니! 내 옆 자리엔 다정한 나의 글동무가 앉아 있고, 전주역에서 내리면 전주에 사는 글동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아주 특별한 시수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완주행을 결정하자마자 한 달 치의 기다림을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하루하루 디데이가 다가오는 것조차 아쉬운 마음으로 8월을 살았다.
아주 특별한 시 수업이 열린 곳은 바로 전라북도 완주에 위치한 '소양고택', 소양고택은 고택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부터 언젠가 꼭 가보겠노라 다짐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워낙 옛 집과 한옥을 좋아하고 늘 공간에 대한 욕망을 품고 사는 나에게 이 공간은 '첫눈에 반했다.'라는 말과 딱 어울리는 곳이었다. 이화정 작가님, 그리고 책구름 출판사와 함께하는 이런 날이 올 거라 내내 믿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꿈꿔왔다는 말이다. 오랜 믿음처럼 정말 그 순간이 다가오고야 만 것. 게다가 이 날은 엄마가 된 후 혼자 떠나는 첫 여행이기도 했으니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래야 않을 수가 없다.
소양고택에 위치한 플리커 책방으로 들어서는 길목, 책방 안에 전시된 <우리의 영혼은 멈추지 않고>에 수록된 시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름(창비)'이라는 그림책과 함께 아주 특별한 우리의 시 수업이 시작되었다. 막연하게 상상만 했던 순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소양고택의 이문희 대표님의 이야기 덕분에 덩달아 더 큰 애정을 품게 된 고아한 한옥, 시,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의 눈빛까지 이미 시작부터 두고두고 이 순간을 그리워하며 살겠구나 싶었다. 초대장에 대한 답장, 사전 질문지를 작성하는 순간부터 이미 시 수업이 시작된 거나 다름없었다. 작가님의 질문에 진심을 담아 답장을 했고, 작가님 또한 프라이빗 시 모임에서 각자 저마다의 한 편의 시를 선물해 주셨다.
프라이빗 시 모임 후 고택 근처에서 아주 뜨끈한 순두부를 먹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본격적인 저녁 일정이 시작되었다. 바깥은 어느새 어두워지고 플리커 책방엔 낮은 조명이 은은하게 퍼졌다. 내 눈앞의 한 사람, 그리고 그 옆의 또 다른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북토크 내내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는데 마지막 PPT 화면의 <아름다움 수집 일기>, <우리의 영혼은 멈추지 않고>가 나란히 놓여 있는 사진을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의 시작으로 이름 붙이기로 했다.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PPT 장면들.
북토크는 8시쯤 끝이 났지만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책방에서 숙소로 자리만 옮겼다. 서로 가까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밤 깊은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깊은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새벽 1시가 훌쩍 지난 시간에야 겨우 잠이 든 것 같은데(마지막 순간까지 3인 1실 윤슬 멤버들과 대화 나누다 셋다 자연스레 숙면..) 6시가 조금 넘었을 때쯤 눈이 떠졌다. 산책을 하기로 약속한 시간이었다. 근처 저수지 길을 1시간 정도 걸었다. 어느새 아침 해가 진해져 돌아오는 길 숲 나무 사이로 바라본 저수지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새벽 산책, 길 위엔 우리들만 존재했다.
조식을 먹기 전까지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졌다. 짐을 정리하고 고택 마당을 잠시 혼자 걸었다. 방으로 돌아와 조식 후 있을 김용만 시인님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시집을 꺼냈다. 잠시 시를 읽다 마루로 나가 작가님과 함께 그림책을 읽었다. <여행의 시간>, (틈만 나면>, 그리고 <끄로꼬>까지. 고택에서 지내는 동안 차오를 만큼 차오른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나오기 시작한 건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다음 일정은 시인 김용만 선생님 댁에서 진행되었다. 김용만 선생님의 시집 <새들은 날기 위해 울음마저 버린다>는 <우리의 영혼은 멈추지 않고> 책 속에서 이미 접하긴 했으나 완주행을 앞두고 뒤늦게 읽기 시작했던 시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십 년 동안 용접일을 하던 두터운 손으로 써 내려간 시가 어쩐지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어렵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점. 시집 곳곳 시의 언어로 묘사된 동네 풍경, 강아지 소양이, 공들여 쌓은 돌담, 그리고 텃밭, 시를 쓰는 선생님의 서재 등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설렘과 시인의 집에서의 시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가늠할 수 없어 낯선 마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소양고택에서 차로 10분 정도 달려 시인 김용만 선생님 댁에 도착했다. 햇빛 아래 소반에 올려져 있는 빨간 고추, 마당, 꽃, 그리고 손님이 오자마자 어디선가 신나게 뛰어나온 강아지 소양이까지. (소양이 한 번 안아보고 싶었는데!) 김용만 선생님과 사모님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을 찾을 수 없던 시인의 집! 돌담과 꽃이 흐드러진 거실 창 아래 앉아 정갈하게 차려주신 다과상을 앞에 두고 그제야 시인 김용만 선생님께 제대로 인사를 드렸다.
꽃 한 송이, 돌 하나 어디에서나 김용만 선생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사모님께서 준비해 주신 다과상, 그리고 가져가라고 주신 꽃차.
시인 앞에서 시를 낭독하는 경험을 언제 또 할 수 있을까? 돌아가며 시를 한 편 읽기로 했는데 하필 내가 첫 타자. 첫 소절을 시작하기 무섭게 목이 메어 이화정 작가님의 도움을 받아 한 편의 시를 겨우 읽어냈다. 김용만 선생님과의 시간은 내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그리고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반복해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시인 김용만 선생님을 보며 내내 생각했던 단어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삶을 대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의도하거나 과장하여 표현하지 않고 삶 가장 가까운 곳에서 쓰인 선생님의 시가 더욱더 애틋하게 다가왔다. 이제 나는 김용만 선생님의 시만 읽어도 이 날을 떠올리고, 이 시간을 그리워할 테지.
마지막 일정은 김용만 선생님과의 점심 식사(무려 선생님께서 따라주신 막걸리도 마심!), 그리고 오스 갤러리에서의 티타임이었다. 김용만 선생님 덕분에 들어갈 수 있었던 오스 갤러리 관장님의 음악 감상실, 그 안에서 흐르던 하우저의 음악, 그리고 김용만 선생님의 이야기.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마무리가 아닐까..
오스 갤러리, 정말 아름다웠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밤 10시 서울 도착, 던지듯 짐을 내려놓고 씻자마자 곤한 잠에 빠졌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이미 잠들어 있던 둘째 아이는 아침 8시부터 쿠키 가루를 가져와 만들자며 성화였다. 한쪽 눈만 간신히 뜨고 일어나 계란과 버터를 꺼냈다. 그사이 당직인 신랑은 출근을 하고, 나는 냉장고를 열어 신랑이 끓여둔(달랑 두부와 된장만 들어간...) 된장국을 꺼내 아이들 아침을 차렸다. 고작 이틀 집을 비웠을 뿐인데 집안이 어수선했다. 어제 풀지 못한 짐을 풀고, 빨래를 돌리고, 바닥 청소를 시작했다. 아이가 어질러놓기만 한 쿠키 반죽을 마저 굽고 점심에 먹을 새 밥을 안치고 나니 오후 1시. 꿈을 꾼 듯 지난 이틀이 아득했지만 그렇게 다시 일상을 살아냈다.
다시 월요일, 여행의 여독을 풀기 위해 숲을 걸었다. 완주에서 떠나온 지 이미 많은 시간이 훌쩍 흘렀는데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들로 온몸이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쯤 서서히 속도를 늦췄다. 걷는 내내 함께했던 얼굴과 장면들을 떠올렸다. 모든 것이 흘러 이내 사라질까 두려운 마음에 서둘러 산책을 마치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