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전교 꼴등이었습니다.
공부가 왜 중요한 것인지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을 때 일어나는 결과는 참담합니다. 제가 바로 그 예입니다.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부모님과 떨어져 지냈고,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그 암담함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형들의 압박에 눌려 매일같이 양말 빨래와 교복다림질을 해야 했고, 집합해서 뚜드려 맞았습니다. 몰래 담장을 넘어 형들과 함께 모은 돈을 갖고 야간 매점에 만두를 사러가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공부가 왜 중요한 지, 왜 다들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못 보면 펑펑 들 우는지 알 질 못했습니다. 저는 당시에 어떻게 하면 오늘도 형들에게 맞으면서 덜 아플까, 오늘은 집합 안 할 수 있을까, 그냥 잠자는 시간만 왔으면 좋겠다, 빨리 학교 끝나고 떡꼬치 먹고 싶다, 이딴 생각만 하면서 살았거든요. 그렇게 살아온 학창 시절에서 남는 건 하나뿐이었으니, 그건 맨 마지막에 얘기하겠습니다.
대학교는 지방도시에 연고도 없는 곳에 가서 연극학을 전공했습니다. 제가 연극학과를 진학한 건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다는 어린 마음이었습니다. 성적에 맞춰서 간 것도 맞고, 그 대학에 경쟁률은 1:1이었고 그냥 원서만 내면 붙는 곳이었습니다. 대학교수님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의리 있는 말이네요."라고 했다가 완전히 낭패를 봤습니다. "일리 있는 말이네요."라고 했어야 했고, 그 상황에서 교수님께 할 말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지나서 하는 아주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뭔가 내가 허점을 갖고 있진 않을까 내심 불안해하며 살고 있습니다. 남들은 기본지식으로 다 알고 있는 무언가를 내가 텅 빈 채로 살고 있다면 정말 위기인 겁니다. 그래서 인문 교양 상식 서적을 가끔씩 읽곤 하지만 상식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아쉽습니다. 학창 시절에 그렇게 하지 못한 제 자신이 너무 아쉽습니다. 나에게 친밀하게 조언해준 누군가가 없었던 것이 너무 아쉽니다. 학년이 끝나고, 새 학기가 되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정답게 다니고, 참 즐거웠는데... 수업시간만 되면 알지도 못하는 공부들을 따라가지 못해 지옥이었고 곤욕이었습니다. 특히 이공계 과목들은 그 수업들은 정말 생각조차 안 납니다. 언제부터 진도를 따라가지 못한 건지도 상상조차 못 하겠고... 잠깐 낮잠 한 번 잤을 뿐인데 이해할 수 없는 말들로 칠판이 채워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쉬는 시간 그 10분을 방송반 동아리에 쓰느라 그나마 견뎠던 것 같습니다.
만약에 제 아이가 학교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학교 공부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면... 학원이라도 알아보고, 같이 서점에 가서 이거 저거 사주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아들은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이라 자신이 공부를 잘 하는지, 못하는지 칠판에 내용이 이해가 되는지 전혀 생각할 나이가 아니지만.
일단 저는 그 이야기를 할 만한 상황이 안 됐고, 주말마다 집에 오면 그냥 성적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부모님 곁에서 즐겁게 삼겹살을 구워 먹었으니까요.
말이 조금 이상하게 나갔는데, 저희 부모님은 제가 그저 학교에서 무탈하게 지내기만을 바라신 것 같습니다. 공부까지 잘하면 좋았겠지만, 타지로 보냈는데 그런 것까지 스트레스를 주기는 싫었겠죠. 그래서 저에게 별다른 이야기를 안 했던 거라고 이제야 생각해 봅니다. 그때는 그저 '나는 왜 공부를 못하지...?' '엄마아빠 오늘도 집에 없으니까 게임이나 해야지~' 같은 생각들로 하루를 보냈었습니다.
아무튼. 공부는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책임을 전가하진 않겠습니다. 아빠인 저도 아직 어린 나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이라도 영어를 배우고, 역사책을 읽고, 학창시절에 못 배웠던 것들을 배우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애가 싫다는데 계속 이거해라 저거해라 못하면 어떡하니 어떻게 살려고 그러니 등등. 제가 못한 공부를 아이에게 떠넘기는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하며 공부시키겠습니다.
마무리 짓지 못한 얘기가 하나 있는데요. 기숙사 생활하면서 얻은 거 하나 있습니다. '생존'입니다. 군대에 입대하고 저는 동기들 중에 환복을 가장 빨리 하고, 샤워를 가장 빨리하고, 뭐... 그런 거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