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했다 해도

시절은 제각각이기에

by 꾸준한거북

엄마가 돌아가신 후 집을 나왔다.

'새아버지의 돈을 눈치 없이 축내며 살 수는 없다'는 20대 초반, 나의 판단이 이른 독립을 이끌었다.

새아버지와 함께 살아왔던 십몇년의 세월이 마구 불행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편안하지도 않았다. 나는 엄연히 새아버지와 성이 다른 등본상 '동거인'이었고, 돈이 필요해도 아빠한테 매달려

"아빠~ 나 저거 사줘~~~~"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어서 엄마만 괴롭히며 돈 달라고 떼를 썼고, 아빠라는 존재에게 반말을 하는 내 동생이 부러웠을 뿐이었다. 그게 다였다.

그렇게 속해있는 듯 속해있지 않았던 나의 어린 시절을 뒤로하고 집을 나왔다.


집을 나와 멋있게 독립해서 일하며 돈 벌고 성공할 줄 알았다. 아직 성숙하지 못했던 내 전두엽은 내가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며칠은 너무 허해서 방구석에서 울기만 했다. 너무 외로워서 엄마가 너무 그리워서 살고 싶지 않았다. 내 외로운 비명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고 외가 식구들도 내게 함께 살자고 손 내밀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더 가치 없게 만들었다.

'내가 사랑스럽지 않아서 그런가?'

'내가 내 친아버지처럼 엄마나 속 썩였던 후레자식이었어서 나를 신경 안 쓰는 건가?'

나는 내심 이모들이나 삼촌들이 나를 거두어 주기를 바랐다. 그러다 '내가 20대 초반이다 보니, 성인이다 보니, 그래서 나를 거두어주시지 않는가 보다. 처음 멋지게 살아보겠다고 나오지 않았던가. 그래, 누가 나를 거두어주길 바라지 말고 그냥 열심히 일해보자'라고 마음을 고쳐먹고살아나갔다.


엄마가 돌아가신 게 나 때문이라고 자책하며 연못가에서 울부짖는 청개구리처럼 심한 자책감에 시달리며 엄마 살아생전 못되게 굴었던 것만 그렇게 따라다닐 수 없었다. 죄책감을 떨쳐내려고 노력하면 내가 '죄인'이라는 걸 잊어버리고 살아가게 될까 봐, 그러면 더 나쁜 거니까 죄책감을 떠안고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몇 시간이고 엄마가 괴로웠을 상황을 되감기하며 죄책감을 집어삼켰다. 그렇게 부정적 에너지로 온 몸을 혹사시키고 뇌를 망가뜨리며 한 해를 보냈다. 그러면서도 먹고는 살겠다고 매일 일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려고 그 감정을 죄책감으로 꽁꽁 싸매서 못 나오게 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 나의 20대를 하나의 키워드로 정의 내려보라고 한다면 철저한 '외로움'이다.

열정도, 긍정도, 확신도, 안정감도 없었던 어둡고 불안했던 20대.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어른들의 포옹을 간절히 바랐던 20대.

그 누구도 나를 책임져야 할 의무가 없음에도

'누가 좀 그 의무를 이고 지고 나를 받아주면 안 되는 건가요'

간절히 외치던 시절.

10대 시절에 안정적인 사랑을 받지 못했던 나였기에 그것이 20대가 되어서도 채워지지 않아 이리 어슬렁 저리 어슬렁..


30대가 된 지금, 나는 어떠한가?

그때의 외로움이 한 올도 몸에 남아있지 않다. 재잘대는 작고 귀여운 존재들이 가져다주는 심리적 안정을 느끼며 아무 아쉬울 것도 없이 그들의 성장을 바라보며 시끄럽지만 평온한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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