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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거북 Feb 06. 2023

필멸하는 엄마에게 시간은


"나는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여기고 있을 때 즐기던 것들에 흥미를 잃어갔다. 더 이상 소설을 읽지 않고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필멸하는 인간들을 위한 송가였다.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지 않다면 감동도 감흥도 없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생이 한 번 뿐이기 때문에 인간들에게는 모든 것이 절실했던 것이다."


최근들어 읽은 김영하작가의 장편소설 '작별인사'속 주인공 철이의 대사를 읽으며 현재 나의 삶 속 절실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가 셋인 나는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낼 수 없다.

그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면 아마 생각한대로 사는 게 아니라 정말 사는대로 생각하는 삶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아이들 깨워서 간단히 먹이고 등원시키고 막내랑 시간 보내주고 그나마 잘 안하는 청소도 틈틈히 예의상 해주고 점심차려서 막내랑 먹고 가끔 친한 학부형 만나서 인생이야기 나누고 또 틈틈히 책 읽고 글쓰고 인스타에 책서평 남기고 아이들 하원하면 밖에서 뛰놀게 감시자 역할 톡톡히 해주다가 들어와서는 저녁준비 하고 아이들 잠들기 전까지 의미있는 무언가를 제공해주고자 머리 굴리고 화도 내고 짜증도 냈다가 참아보기도 했다가 폭발했다가 잘 놀게 두었다가 잠들기까지...

하나하나 살펴보면 홀로 사유할 시간, 제로이다.


미라클모닝이 간절했다. 허나 이번겨울은 폭삭 망해버렸다.

벌써 봄이 다가오고있고 셋을 출산한 84년생의 뱃살은 나날이 축 쳐져만 가는 시점에서

나만의 시간보내기는 막내 낮잠자는 시간으로 옮겨졌다.

오늘부터. 막내를 재우고 전기자전거를 30분 타고왔다.

처음부터 무리할 수는 없기에 딱 30분, PAS1단으로 놓고 전기자전거의 이점을 십분 활용해 옆마을까지 정말 딱 30분만 타고 왔다. 미세먼지는 상당히 나쁨 수준이었지만 오늘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또 이번주를 허송할 것 같아 호흡기 건강이고 뭐고 팽개치고 막내가 잠들자마자 패딩에 헬맷을 챙겨 나섰고 미세먼지 가득 봄이 옴을 예고하는 바람을 맞으며 루틴 선상에 내 몸을 올려놓고 들어온 지금,

노트북을 바로 펼쳤다. 아이들이 하원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한 시간.

어제부터 떠오른 글감이 맴 돌고 있기에 풀어놓지 않으면 브런치 서랍 속에 봉인되어

다시는 빛을 보지 못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니 어떻게 해서든 써내야만 한다는 생각이 지배한다.


미스 시절에 시간이 이토록 귀한 줄 알 턱이 있나.

강사 생활하며 밤10시가 넘어 퇴근하면 집에 가서 미드나 때려주다가 밤12시 넘어 잠이 들기 일쑤였고,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떠야만 일어나서 씻고 간단히 밥만 챙겨먹고 출근하는 일상이 다반사였다.

그나마 요가는 좀 했던 것 같다. 지금 그토록 열망하는 새벽기상에 독서, 여행, 어디가서 한달살기, 글쓰기, 전시회 관람하기 등등의 일들은 나의 뇌 속에 단 1%도 차지하지 않았다.

그 때는 일과 연애에만 관심있었던 것 같다.

또 지금은 미치게 갈망하는 '고독'도 그 때는 외로움에 몸서리 칠 때 였고 당장 다가올 내일은 외롭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독이란 게 대체 어떤 감정이고 어떤 공간에서 어떤 생각으로 있어야 하는 것인지 개념조차 느껴지지 않았고 그저 외로움보다 더 고급스러운 단어정도로만 치부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고 억겁의 시간이 주어지는 줄만 알았다.

아니,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냥 시간에 기댄 채 살아있으니까 살아진 것 같았다.


시간이 아깝다는 개념이 없었기에 열심히 독서하지도 열심히 사색하지도 열심히 어디를 다니려고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 같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의 내가 소설 작별인사에 등장하는 휴머노이드들과 다를 게 뭐가 있었나 싶다.

내 삶에 한계가 있어야만 했다. 나를 둘러싼 제약이 있어야만 했다. 그래야 지금 내가 바라는 한 차원 더 높은 사유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 때는 아무 제약이 없었기에 아무 것도 하고싶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필멸하지 않는 리얼 하이퍼 휴머노이드 철이처럼.

시간이 남아도는데 왜 오늘 책을 읽는가, 미뤘다가 내일이든 모레든 아무 때나 읽으면 되지.

그런데 어디 그런가? 시간이 남아돌면 결국 안 읽는다.


나는 절실하다. 어떻게든 제한 된 시간을 쪼개고 쪼개야만 한다.

새벽, 아이들 등원 전후, 밤시간.. 대략적인 시간을 블럭으로 현명하게 나누어서 사용해야만 한다.

시간에 제약이 있다보니 지금 책 읽지 않으면 안되고, 지금 나가서 조금이라도 뛰지 않으면 안되고,

지금 쓰지 않으면 안된다.

아이들의 소중한 어린 시절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니 함께 가보픈 곳은 어떻게 해서든 가본다.

나는 필멸한다. 그렇기에 세상 모든 것이 감동과 감흥으로 다가온다.

필멸하는 존재는 축복받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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