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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거북 Feb 13. 2023

엄마! 그 아저씨, 나쁜 사람이야?

"엄마, 아까 그 아저씨한테 왜 돈 안 줬어?"

"아.. 엄마 지갑에 동전이 없었어~ 다음에는 그런 일 생기면 꼭 드릴게~"


지난 토요일 저녁시간이 되어갈 무렵,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다 느지막이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차에 타려는 찰나 다소 불량한 걸음걸이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한 할아버지가 다가오셨다. 술에 취하신 건지, 불편하신 분인지 헷갈렸는데 갑자기 500원만 달라는 그분의 손에는 천 원짜리가 쥐어져 있었기에 아마도 돈을 더 모아서 소주를 사려하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표정이 너무 비열해 보였다고 해야 할까? 느낌이 좋지가 않았다. 어린아이들을 혼자 차에 태우고 있는데 다짜고짜 다가와서 돈을 요구하는 것도 굉장히 무례했는데 정말이지 너무나도 당연한 태도였고 돈을 주지 않으면 해코지라도 할 듯한 인상과 분위기를 풍겼다.

어린아이 둘의 손을 잡고 힘겹게 여러 번 차에 왔다 갔다 한 내가 타깃이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니 그분이 정말 치졸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남편이 없었기에 더 뭉그적 거려선 안 되겠다고 판단한 나는 최대한 정중하면서 민첩하게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현금이 없어서요. 죄송합니다~" 하고는 차를 반바퀴 돌아서 운전석에 올라탔다. 차 트렁크 쪽을 돌아서 오는데 그 순간이 꽤나 길게 느껴졌다. 혹시라도 쫓아와서 강도짓이라도 하면 어쩌지?

나름 동네에서 큰 마트임에도 가로등불빛도 거의 꺼진 상태에다가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면 소리라도 크게 질러야 하나? 하지만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고, 운전석에 올라탄 나는 숨을 깊게 내뱉으며  얕은 혼잣말을 내뱉었다.

"휴~왜 저래...?"


지갑에 현금이 없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그렇게 출발하고 몇 분 뒤에 5살 아들의 질문은 왜 나를 뜨끔하게 만든 걸까? 아들의 시선 속에 나는 어떤 태도로 비쳤을까? 아이들이 처음 만나는 타인을 무조건 색안경 끼고 보기보다는 신뢰하는 사람으로 자라줬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과는 너무 상반되는 태도였나? 힘들고 불쌍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도와줘야 한다 가르치면서 내가 너무 극단적으로 내 판단에 빠져서는 진짜로 500원이 절실한 분의 손을 뿌리친 건 아닐까? 함께 마트를 잠시 동행해서 카드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실 수 있게 해야 했나? 하지만 그러기에 어린 두 아이들을 데리고는 너무 번거롭고 조금... 음.. 더 이상 변명거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내 딴에는 아이들을 지킨 거였다는 자부심으로 마음 놓고 출발한 거였는데 아이의 눈엔 그게 아니었구나.."엄마 그럼 그 아저씨는 나쁜 아저씨야?"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엄마가 진짜 돈이 없어서 드릴 수가 없었어..." 하.. 이토록 굴욕적인 순간을 어찌 대처해야 할까.. 이후엔 아이가 추가질문을 멈췄지만 내 마음속은 계속 물음표로 둥둥.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또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그때도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낯설고 이상한 사람은 무조건 피하고 보자' 할 것인가. 아니면 그런 상황을 대비해 지갑에 현금을 꼭 챙겨 다닐 것인가...


글을 쓰는 엄마이고, 글을 사랑하는 엄마이기에 내가 쓴 글에서 멀리 빗나간 일상을 살아갈 순 없는 노릇이다. 내가 쓴 글, 내가 쓰고 싶은 글이 내 삶과 완벽히 맞닿을 수는 없더라도 애는 써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 사람들과 얽히고설키며 부대끼고 사랑받고 신뢰하고 긍정하며 아이들이 살아가주길 바라는 거라면, 나 자신이 어린 시절 그렇게 살지 못했기에 성인이 된 지금 그렇게 살아가는 게 실은 아직도 힘들고 부러 노력해야 하는 일이긴 해도 그 바람에 다가가려면 엄마인 내가 조금 더 용기를 내야 하지 않을까? 그 할아버지가 아주 선한 표정과 정중한 말투로 도움을 요청하셨다면 어떻게 해서든 도와드렸을 것 같다는 결론이 지어짐과 동시에 이런 판단의 몫은 오롯이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가지 않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선한 얼굴을 한 채, 시커멓고 뿔 난 그림자를 달고 다니는 사람이 놀이터에 있을 수 있으니 다정하게 말한다고 해서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그림책을 읽어준 지난날을 떠올리며...


우선은 돕자. 최대한 도우려고 애써보자. 낯선 타국이 아닌 이상, 내가 뿌리내리고 있는 이곳에서 위험한 순간이 발생할 확률은 현저히 낮다. 아이들은 아무나 따나 가서는 안 되는 건 확실히 교육하되, 도움이 필요한 이를 발견했을 때 우리 엄마아빠는 도움을 주실 분들이라는 믿음은 쌓여있어야만 직접 그 상황에 개입하진 않더라도 즉각 부모님을 부를 수 있을 테니. 그리고 점차 성장해 어른이 되어가면서 '선판단' '후도움'이 아닌 나를 내던져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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