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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준한거북 May 19. 2023

북한접경지에서 살고 있습니다

시골성장기 1

"이 길로 가다보면 진짜 북한 나오는 거 아닌가?" 북한과 꽤나 가까이 맞닿아 있는 이 마을에 들어오면서 일었던 생각이다. 읍내에서부터 점점 멀어지며 철새도래지를 지나 또다시 몇차례 언덕을 넘나들면 드넓은 임진강이 한 눈에 들어온다. 먼 옛날에는 이 강을 건너려면 나룻배를 타야만 했고, 그 이후 다리가 생긴 뒤에는 다리입구에서 군인들에게 신분증 검사를 받은 뒤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첩첩산중이란 이런 거구나를 실감하며 기대할 구석이라곤 요만치도 없이 15분을 내리 달려 도착한 자그마한 산골마을에 드디어 도착했다. 남편의 직업상 불평 없이 와야만 하는 시골이었기에 또한 불평을 하다보면 한없이 우울해질 것만 같았기에 그저 조용한 동네, 짹짹거리는 새소리, 초록파도를 일으키는 나무들을 보며 억지 만족을 만들어내야 했다. 그 날은 미처 몰랐다. 20개월 아들과의 시골살이가 어떻게 펼쳐질지.


이 곳은 면사무소까지도 차를 타고 5분여 나가야만 하는 오지 시골 마을이다. 우리 집 바로 앞에는 마을회관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을 뿐,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다. 집들도 50채가 넘지 않는 작은 마을, 시시한 미끄럼틀 한 개 딸린 놀이터조차 존재하는 않는 마을, 3시간에 한 번 시내버스가 들어오는 마을, 배달음식은 단 한 곳 차로 7분여 걸쳐 나가야하는 '페리카나' 에서만 가능하다.그나마 배달을 해주니 성은이 망극한 곳이다. 새벽엔 멧돼지가 출몰해서 남편도 두 번 정도 새벽에 나갔다가 멧돼지에게 옴팡 공격을 당할 뻔했었고, 고라니의 구슬픈 울음소리에 온 몸에 소름이 끼치기도 하는, 11월부터는 방 안에 무당벌레 천지가 되는 이 곳. 이 곳에서 20개월 아들과 무얼해야할까.


시골이라해서 우리 집에 마당이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꿈꾸는 마당있는 집. 우리집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곧바로 비탈길이 이어진다. 비탈길을 따라 내려가면 차들이 지나가는 도로변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아이와 놀 수 있는 환경이 결코 아니다. 하지만 어떻게해서든 이 곳에서 생존?해야 했기에 유모차에 태워서 옆마을까지 산책을 하다오기도 했고 그마저도 지겨워지면 차를 타고 가장 가까운 도시에 1시간 걸려 나가서 시끄럽고 복잡한 도시소리와 차들에 둘러쌓여 있다 오기도 했다. 참 이상도 하지, 도시 사람들은 힐링하러 시골에 놀러오거나 5도2촌을 한다던지, 캠핑을 하고 가는데 나는 역으로 도시힐링을 하러 돈쓰고 오는 꼴이라니.


그 때만해도 깨끗하고 감성넘치는 키즈카페를 찾아다니느라 바빴다. 신도시에는 엄마 마음 홀리는 키즈카페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거기 가서 돈을 쓰면 오지에 살면서 품게 되는 불만들을 씻어낼 수 있었다. 오지에는 없는 대형마트에 가서 아이쇼핑만 해도 신이 났던 시절이었다. 아이를 위한거라지만 실은 나의 마음 속 허전함을 꾸역꾸역 채워나가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 같다.

'내가 원해서 온 건 아니니까 나는 이런 불만을 가져도 돼. 내가 얼마나 외롭고 허전하고 심심하고 낙이 없는데!' 하며 불만을 합리화 시키고 있었다. 불평할 권리가 있다며 남편에게 끊임없이 불만을 일삼았던 나날들 이었다.


불안했다. 신경은 예민해져만 갔다. 아이랑 나가려고하면 그냥 내리막길로 내지르는 천방지축 20개월이었기에 집 밖으로 나가려는 그 순간조차 참으로 예민했다. 조심해! 뛰지마! 비탈길에서는 걸어가도 돼! 를 수천번은 외쳤던 것 같다. 그리고 더해졌던 동네 어르신들의 염려까지,"여기 지난 번 살던 분 아들도 뛰어내려가다가 버스에 치일 뻔 했어요!. 조심해야되요."


헌데 그런 말들이 진심어린 걱정이라기 보다 나의 일상을 억압하는 걸로 느껴졌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이놈의 비탈길, 이놈의 찻 길. 나는 어디서 이 남자아이를 키우란 말인가. 어린이 집 하원해서 놀고싶은데 뛰놀 곳 없어 울어재끼는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와 어르고 달래며 시간을 보냈다. 들이 가끔 오고가는 길에서라도 바깥공기를 쐬게끔 해주고 싶었지만 아직 만3세도 되지 않은 아들녀석인지라 내 맘이 편치 않아 그리 할 수가 없었다.


마을 어르신들과 조금이라도 친해져 보려고 회관에서 운영하는 요가 프로그램에도 참가해 봤지만 딱 거기까지 였다. 그냥 요가하면서 어르신들 웃을 때 웃고 어르신들이 열심히 따라하는 동작을 따라하며 시간을 떼우고 돌아오면 또 허무함이 밀려왔다.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닌데.. 평균 연령 60대가 넘는 할머님들과 친해질 수 있는 비결을 없었다.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대화 주제도 없었고 그저 만나면 인사 잘하고 가끔 건네주시는 논 밭의 소산물을 감사히 받고, 읍내 나가실 때 모셔다 드리고 그게 다였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하나되어야 한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았다.



렇게 7개월을 보냈다. 시골살이라해서 딱히 특별할 것도 없이 아니 시골에서 평온이 아니라 불안을 달고 7개월을 보냈다. 언제 이 곳을 탈출하지? 하는 생각만으로 7개월을 보냈다.


이듬 해 5월 둘째를 임신했고 둘째를 출산하기까지도 도시를 동경하는 일상은 이어졌다. 임신 중 정기검진을 받으러 나가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그 날이 참 달콤하게 느껴졌다. 다양한 간판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고,도대체 누가 저렇게 새로 생겨나는 아파트들에 들어가 사는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신축아파트들에 사는 이들을 부러워하며 임신기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집 앞 도로변에 차들을 다니지 못하게 해달라고 군청에 민원이라도 넣어볼까? 우리 집 에서 조금만 빙 둘러 나가면 멀쩡한 대로변이 있는데 왜 굳이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이 안 쪽까지 도로를 만든거지? 그 생각도 나에게 아이가 있으니 흘러나왔던 생각일 터, 어르신들께는 일채 불만사항이 될 수 없었을 것이고 괜히 민원을 넣었다가는 내게 불화살이 되어 돌아올 것이 불보듯 뻔했기에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작은 놀이터라도 지어달라고 해볼까? 그저 그런 생각들만으로 임신기간을 먹는 것으로 달래며 산책할 곳도 없다는 불만을 추가한 채, 살만 찌워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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