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린 통제욕구의 발현, 난폭운전

by 미세스앤

운전이 난폭해지는 때가 있다.

급출발 급가속은 물론이거니와 누가 끼어드는 꼴을 못 보고 장티푸스와 썩을을 연발하며 입이 거칠어진다.


듣는 음악이 시끌벅적할 때 그러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난 뒤로는 내가 좀 그런다 싶으면 음악을 바꾼다.

핸들을 잡으면 내가 원하는 길로 원하는 순간 출발하고 멈춘다.

그걸 공식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신호등이고 갑자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끼어들기 같은 것이다.


급격한 변화에 대한 반응으로 안전하게 속도를 늦추고 양보할 수도 있고

빵빵 경적을 울려대며 거친 욕설을 내뱉을 수도 있다.

그건 운전대 잡은 사람 마음이다.

그래서 통제력이 온전히 나에게 있다고 느끼는 순간 평소에 거칠거칠했던 마음이 고스란히 올라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운전행태는 위험하기도 하지만 정신건강에 굉장히 해롭다.

이렇게 해로운 것들을 겹겹이 쌓아 올리면 조만간 어디서든 터진다.

그래서 내 운전이 거칠어진다는 느낌이 올 때,

아니 그냥 내가 누군가에게 절대 양보를 해주지 않겠다며 앞차와의 간격을 딱 붙이는 일이 잦아질 때

나는 그 통제력에 대해 생각한다.





상담선생님과 통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일상에서 이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인가 없는 일인가 구분해 보는 연습을 계속하다 보니

나는 훨씬 덜 불안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문제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에 있다.

미친 통제력으로 사람을 옥죄는데 전문인 상사. 그 사람을 처음 만난 것은 회사 초년생 때였다.

너무 바쁠 때 너무 많은 일을 하던 때여서 그 사람이 휴가 갈 때마다

한 문장 한 문장 이어 붙이기 하고 있던 나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이거 다 해 놔" 하고 숙제를 떠안은 콩쥐가 된 기분이었다.

거기에 자실자실한 모든 것들을 시키는 그야말로 핑프였다.

사무실 근무가 생전 처음이었던 삼십 대 아줌마인 나는

원래 그런 건 줄 알고 모든 일을 빠짐없이 다 했다.

일 년이 지날 무렵 맨 윗분께 말했다.

나는 더 못하겠다고.

그분이 물었던 건 그래서 그 사람이 없어도 온전히 외부로 나가는 글을 잘 쓸 수 있느냐였고

난 필요한 것은 이미 다 배웠다고 말했다.

그렇게 어렵게 헤어진 인연이었는데....


두 번째 만났을 때는 같은 업무를 하지 않고 한 사무실에 있기만 했다.

그래서 첫 번째처럼 그 사람이 나를 통제하거나 어쩌거나 할 일이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처음의 시절을 모두 잊었던가 보다.

이번 인사이동 때 이렇게 같이 일하겠다고 내 발로 걸어왔으니 말이다.



내가 성장한 만큼 상대방의 지랄도 진화했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남은 그대로 있고 나만 성장했을 거라는 어리석은 착각이라니.

나한테 나쁜 사람이 모든 이에게 나쁜 사람인 건 아니지만

나한테 나빴던, 유해했던 사람은 앞으로도 유해할 확률이 높다.

안 맞는다는 걸 확인한 사람과는 다시 엮일 생각을 하지 말자.


그 상사는 내게 어떤 큰 깨달음을 주려고 온 사람이 분명하다.

아직 내가 다 깨닫지 못해서 이 인연이 이렇게 계속되고 있는 거겠지.

이번에는 내 기필코 이런 유형의 사람에게서 나를 지키는 법을 완전히 습득하고야 말리라.


나의 이 이야기를 들은 친한 직원이 그랬다.

어쩌면 그렇게 긍정적인 사고가 가능하냐고.

이건 요즘 애들 말로 하면 원영적 사고이고 옛날 사람들 말로 하면 루신의 아큐의 정신승리다.

이런 사고의 흐름이 오래도록 단단하게 유지되면 좋겠지만 그건 이성적 생각의 일부일 뿐이고

금세 내가 왜 그랬을까나 내 삶은 왜 이 모양 인가 하는 생각으로 되돌아온다.


내 통제 영역을 벗어난 이 일들이 답이 없다거나 끝이 날 것 같지 않다는 기분은 나를 우울로 끌고 간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는 진리는 이럴 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럴 때 운전을 하면 지금까지 쌓인 울분이 한꺼번에 삐져나오게 된다.

그래서 내가 난폭운전을 하는 순간이면 깨닫는다.

너 지금 너무 힘들구나. 하고.

힘듦이 켜켜이 몇 겹은 쌓인 상태인 거구나 하고. 응급처치가 필요하다.

일단은 음악부터 좀 느긋한 걸로 바꾸고, 심호흡.

쌓인 울분을 어떻게 풀지는 집에 가서 생각하자.

운전을 하고 있는 지금은 그냥 나오는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는 것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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