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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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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연생 Aug 07. 2020

철학책을 읽어서 남는 일

당신은 '왜' 사는지를 고민하나요,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하나요?

 철학책을 읽으면 뭐가 좋을까? 철학책 읽기는 매우 고리타분하고 지난한 과정이다. 한 가지 말을 하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논리를 쌓아 결국 하는 말은 단순하다.

 이번에 읽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강독'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책은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을 (그나마) 읽기 쉽게 철학과 교수님께서 풀어놓은 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에게 하이데거란, 수능대비 윤리와사상에서 '현존재는 죽음에 직면하여 자신의 실존을 고민하고 찾아야 한다'는 정도로 파악되는 누군가였다. 이번에 이 책 한 권을 읽었지만 남는 것은 결국, 누군가(라고 하지만 실은 엄청난 학자들의 집단)가 아주 명쾌하고도 압축적으로 정리한 한 문장을 뛰어넘는 깨달음을 얻지는 못했다.

 다만 철학책이라는 것을 읽으면 나에게는 논리있게 주장을 개진하는 능력, 하나하나 단어의 뜻을 검토함으로써 세상과 다른 나만의 해석과 사고방식을 1층부터 차곡차곡 쌓아 결국에는 기존 건물을 무너뜨리는 힘이 생긴다.

 나는 책을 읽으면 항상 '지금 나'에게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그래서 중학교 국어시간에 문학작품을 작품 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외재적 관점'을 배울 때 매우 강한 의구심을 가졌다. 작품은 순수하게 작품 내적으로만 해석해야 하며, 거기에 외부적인 관점이 개입하는 것은 그것을 읽는 독자인 나의 발전에 영향을 미칠 때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생애, 시대상황을 고려하는 것은 그 작품과 내가 순수하게 독대하여 나의 발전과 사고의 일부분으로 책을 편입시키는 것을 방해하고 세상의 기존 해석을 강제하는 것일 뿐이었다. 이러한 나에게 수능 국어 영역에서 문학작품을 다루는 방법을 비판하고, '신비평'이라는 것을 일종의 저급한 방식으로 취급하는 현대 문학계는 맞지 않았다. 더불어, 대신에, 나에게는, 어떤 지식을 접했을 때 그것 외부의 다양한 기존 경험이나 세상 돌아가는 일들과 연결지어 창조적인 제 3의 것을 상상해내는 능력은 부족하다. 예를 들면 책을 읽고 내가 봤던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의 메시지와 연결짓는다던지.

 책은 항상 '지금 나'의 삶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했다. 이번 하이데거의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인간(현존재)은 세상 사람들의 기준과 일상적인, 관습적인 삶에 파묻혀(퇴락하여) 자신은 누구인지에 대한 물음에 회피하게 된다(자기 자신 스스로를 문제삼도록 규정된 '실존'으로부터의 도피)고 하이데거는 말했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을 전제하고,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 파묻힌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만의 실존을 되찾아야 한다고 한다. (사실 이 책 뒷부분의 '시간성'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며, 글쓴이의 수준은 전혀 엄청나지 않으므로 엄밀함을 잠시 내려놓고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가르침이 '지금 현재'에도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최근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라는 우울증 관련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거기서 말하는 것이, (당연히 우울한 사람들을 예상독자로 상정한 상태이겠지만) '왜 사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왜 살고, 왜 밥을 먹어야 하고, 왜 잠을 자야 하고, 왜 공부를 해야 하고, 왜 운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한 적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나 차별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한동안 빠졌던 것도, '대체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사회 전방위적으로 던지면서 이러한 물음에 답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결국 이러한 물음에 대한 '논리적인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고 판단내렸다. 그리고는 내 생각을 잠시 멈추고, 우울증 관련한 그 책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왜 사는지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지에 대한 물음. 왜 밥을 먹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맛있고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운동을 잘 할 수 있을까?와 같은 물음이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글 역시, 철학책을 읽어서 남는 일은 논리력이다 / 무언가를 읽을 때 외적인 것을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는 나의 철학 / 기존 문학계와 나의 불협화음(?) / 하이데거의 철학 비판 /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 라는, 주제가 2개 이상인 글이 탄생했다. 이러한 글이 읽기 불편하다는 것은 알지만, 나의 사고 흐름이 이렇게 서로 풀어낼 수 없도록 꼬여있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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