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Narrative의 대결
이 글은 필자가 학부 1학년 1학기였던 2019년 4월 17일,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 강의의 '내러티브Narrative의 대결2' 과제로 제출한 글입니다. 일체의 수정없이 그대로입니다.
대학입시에 관한 논쟁은 대부분 ‘수시와 정시의 대립’구도를 갖고 있다. 수시비율의 확대 추세에 반대하며 정시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과, 수시비율을 현행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약간의 감소만을 받아들이는 입장이 그것이다. 정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수능의 ‘공정성’을 외치며 학생부종합전형에는 ‘계급대물림’, ‘학력이 떨어지는 학생의 입학 증가’, ‘교사들의 권력 형성’이라는 폐해가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수시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수능점수만으로는 학생의 능력과 잠재력을 판단하기 어려우며, 학생부종합전형은 ‘공교육의 정상화’라는 이점이 있음을 근거로, 수시 확대의 현 추세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양측의 입장에는 겉으로 내세우는 근거 외에도, 보이지 않는 내러티브들이 숨어있다.
먼저 정시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논거를 보자. 학종은 계급대물림의 폐해가 있다고 한다. 인터넷을 조금만 돌아다니면 사회적으로 유명한 인사의 자제가 입시비리를 저질렀다며 공분을 사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최근에 성균관대 교수가 대학원생에게 자녀의 연구를 대신 맡겨 그 성과를 이용해 서울대 치의학전문대학원에 합격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이 외에도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사건 등은 학종을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그렇지만 이들의 속내는 조금 다르다. 정시를 옹호하는 사람들에 숨은 내러티브는, 사교육 효과가 확실한 정시가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생각이 숨어 있다. 이를 증명하는 한국교육개발원 설문조사 결과가 최근 공개됐다. [교육개발원 관계자는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사교육 효과가 확실한 정시 확대를 지지하는 경향은 2017년도 조사 때도 마찬가지였다”면서 “매년 비슷한 경향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관해 익명을 요구한 한 교육 분야 연구자는 "학부모 입장에서 보면 학생부종합전형에 비해 수능이 사교육을 쏟아붓는 효과가 더 명확하게 보인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의견을 냈다. 이 연구자는 "강남 등 소득수준이 높은 지역은 교육열도 높아서 내신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가 다른 지역보다 더 힘들기 때문에, 정시에 '올인'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결국, 겉으로는 공정성 확보를 위해 정시 확대를 주장하는 척하지만, 그 속에는 ‘수시보다 정시가 사교육 효과가 확실하니, 많은 돈을 투자할 수 있는 우리(고소득층)에겐 정시가 더 유리해.’라는 내러티브가 숨어있고, 그것이 겉으로는 공정성 논거를 내세워 정시확대를 주장하는 것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자신이 좋은 대학에 좀 더 쉽게 가기 위한 이러한 정치적 의도는 수시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2007~2018학년 서울지역 고교의 서울대 등록자 현황을 살펴보면 정시가 확대될수록 전체 등록자 중 교육특구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됐다. 수시전형의 확대는 부모의 경제적 여건과 사교육환경이 열악한 많은 지역에게 유리하다. 모든 학생을 똑같은 점수로 판단하는 정시와는 달리 각 학교의 교육환경을 고려하여 평가하는 학종으로 평가받을 때 더 경쟁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수시옹호자들이 겉으로 내세우는 공교육정상화라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점수위주의 교육 대신 개개인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다양한 교육이 제공되기도 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수시옹호자들 역시 자신이 대학에 가기 쉬운 방법으로써 수시체제를 지지하는 내러티브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사람들 간의 대립에서 각 의견의 합리적 근거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정치적 의도를 포함하는 함의, 즉 내러티브를 같이 고려하는 숙고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수시정시논쟁의 경우는 아무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좋은 대학에 가고자 하는 함의가 밑에 깔려있었다.
참고자료
한국일보 자녀입시에 제자 총동원 ‘교수 갑질 끝판왕’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469&aid=0000374779
연합뉴스 “고소득층일수록 사교육 효과 명확한 ‘정시 확대’지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10729943
서울신문 사교육 효과 확실한 정시…소득 높을수록 확대 선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81&aid=0002987532
매일경제 [단독] 서울대 "공론화委 자료 공정·타당성 의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9&aid=0004200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