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의 철학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연생 Oct 11. 2020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고 철학을 고민하다

"과학 발전은 누적적 과정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1년 전 독서모임에서 읽었다.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가장 유명한 과학철학 서적 중 하나이며, '패러다임'의 현재 용법을 처음 제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이런 명성과는 달리, 나는 별다른 새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쿤에 따르면, 평소의 과학은 '정상과학'으로서, 한 패러다임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지식을 탐구한다. 그러다가 정상과학의 수수께끼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불안정한 시기에 다다르면 새로운 이론이 제안되고, 그 이론이 더 맞다고 판단되면 아예 과학의 기반 자체가 바뀌어버린다. 이때까지 발견되었다고 생각한 것들도 변경된 패러다임에 따라 다시 연구된다. 한마디로 이 책은 "과학의 발전은 누적적 과정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라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교과서에 나와있는 'A과학자가 발견한 ㄱ법칙'이라는 표현이 주는, 마치 과학이 개별 과학자들의 업적이 누적되어 일직선으로 진보해왔다는 암시를 문제 삼으며 이 책은 시작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학교에서 과학을 배우면서, 나는 이미 토머스 쿤이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느껴왔기 때문이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패러다임이 바뀌면 이때껏 천동설 하에서 설명해온 행성들의 움직임도 지동설 이론 안에서 다시 설명해야 한다. 패러다임이 바뀌니 모든 것을 새로이 정립해야 하는 것이다. 어째서 이걸 배우면서 '과학은 일직선으로 진보해온 과정'이라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물리 시간에 뉴턴 법칙을 배우고 상대성이론을 배울 때, 뉴턴 법칙이 완전히 대체된 것이 아니라 빛의 속도를 논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배웠다. 보어의 원자모형과 오비탈 개념 역시 비슷하다. 이런 사례는 비록 토머스 쿤의 이론에 완전히 부합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많은 분석이 새로운 패러다임 하에서 다시 이루어졌음을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쩌면 1962년에 출간된 이 책이 제시한 철학이 받아들여져, 이미 과학 교육과정에 반영되고, 다양한 과학 대중서적의 설명방식에 반영되고,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내가 수용해왔기에, 정작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새로운 것이 없다'라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되고 수용된 배경을 아주 자세히 알지는 못하기 때문에, 정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사회의 도움 없이 내가 과학을 배우면서 스스로 토머스 쿤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지대하게 철학적인 인간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철학책의 위대함을 알지 못하는 우매한 인간이었던 것인지. (하이데거의 철학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도 든다. 나는 철학서적을 읽을   철학의 위대함을 제대로 평가할  있는지. 철학 원전은 대개 난해한 논리와 언어로 직조되어 있다. 그래서 철학 원전은  어렵다. 하지만, 동시에 철학이란  시대의 문제의식을 설정하는 아주 엄청난 학문이다. (: 분석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서양의학과 총체적이고 자연중심적인 동양의학) 이런 점에서 내가 철학서적을 읽으면 '메시지는 간단한데 글만 어렵게 썼다' 느낌을 받기 십상인  같다. 그렇다면, 내가 어떤 철학서적을 읽을 , 정말  책이 대단한 철학을 제시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어떻게 판단할  있을까? 또한, 내가 철학을 배우면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우리 사회에 깊숙이 박힌 사고의 틀을, 그저 어려운 말로 다시 한번 읽는 것에 그치는 것인지?


나는  항상 이렇게 혼란스럽기만 한지.
매거진의 이전글 MBTI와 코로나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