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
현대미술 강의에서 우리는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예술을 되짚었다. 전쟁은 인간 이성과 문명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렸고, 사람들은 더 이상 현실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예술가들 역시 기존 질서와 예술관에 반발심을 품기 시작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실주의나 인상주의는 더 이상 진실을 담아내지 못한다고 느낀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다다이즘이 등장했다. 다다이즘은 모든 전통을 부정하며 반이성과 반도덕, 반예술을 외쳤다. 말하자면, 그 혼란스러움 자체가 시대의 진실이었던 셈이다. 다다이즘은 뒤샹, 브르통, 아라공, 아르프 등의 작가를 통해 퍼졌고, 이후 초현실주의로 흡수되며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 문 너머, 낯설게 하기로 인간의 인식과 현실을 뒤흔든 르네 마그리트를 만났다. 그의 작품 《연인들(Les Amants, 1928)》은 내게 강렬한 질문 하나를 남겼다. 화면 속 남녀는 서로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흰 천으로 완전히 가려져 있다. 어두운 배경, 무표정한 몸짓, 그리고 덮인 얼굴. 표정을 알 수 없다.
표정을 모른다는 건 마음을 읽을 수 없다는 뜻이다. 얼굴은 인간 정체성과 의식을 상징한다. 그 얼굴을 감춘다는 것은 무의식의 세계로의 진입이거나, 정체성의 해체를 의미한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는 초현실주의의 세계관이 이 작품 속에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마그리트는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을 직접적으로 남기지 않았다. 그는 그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그림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미스터리를 보여준다.”
《연인들》 역시 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을까.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조차 느껴지는 단절, 그 거리감. 점점 개인화하는 이 사회 속에서 우리는 과연 어떻게 진실하게 소통할 수 있을까. 사랑은 얼마나 서로를 향해 눈을 맞추고 있는가, 아니면 서로를 가린 채 기대고만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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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얼굴
우리는 입을 맞추지만 얼굴을 보지 못한다 그 흰 천은 무엇일까 사랑한다 말하지만 마음은 어디에 머무는가 그대는 나를 바라보는가 아니면 내가 그려놓은 그대의 그림자를 바라보는가
나는 종종 사랑 앞에서 눈을 감는다 닿은 입술보다 보이지 않는 표정이 더 궁금하다 왜 우리는 가장 가까운 순간에 가장 멀어지는 걸까 그대의 이마는 내 어깨에 기댔지만 마음은 도달하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돈다 흰 천 너머 당신은 내게 누구였을까
사랑은 알 수 없는 신비에 입 맞추는 일 내 앞에 선 당신이 낯설고 내 마음조차 가끔 낯설다 서로를 껴안고 있으면서도 한 겹의 천처럼 얇은 단절이 우리 사이에 내려온다
그림은 고요히 말하고 나는 그 침묵 속에서 사랑의 정체를 묻는다
어쩌면 사랑은 끝내 마주할 수 없는 것 서로를 덮은 채 맞닿는 어떤 무늬
우리는 지금도 흰 천을 두른 채
사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