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센티미터의 고요

마크 로스코

by 책읽는아이린

마크 로스코(1903~1970)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추상 표현주의 화가다. 1903년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10세대 미국으로 이주했다. 뉴욕을 기반으로 독보적인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추상 표현주의를 이끌며 미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고, 동시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45센티미터의 고요


마크 로스코는 말했다.
“내 그림은 45센티미터 거리에서 감상하라.”

그는 왜 그림을 감상하기 좋은 이상적인 거리를 45센티미터라 정했을까.

그 말은 단지 물리적인 거리를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관객이 자신의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 푹 빠지길 바랐다. 물감이 겹겹이 쌓인 그 붉고 검고 자줏빛의 장막 안으로, 침묵과 내면의 어둠 속으로.


그의 그림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색면’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숨겨진 떨림과 균열, 미세한 결들이 보인다. 그 안에는 덧칠된 감정의 응어리가 있고, 마음의 주름이 겹겹이 눌러져 있다.


앙리 마티스가 말했듯,
“예술은 안락의자와 같은 것이어야 한다.”
로스코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의 화면은 편안함이 아니라, 정적 속 진동이 흐르는 곳이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성소처럼 만들고 싶어 했다. 빛이 낮고 침묵이 깊은 공간에서, 그림 앞에 선 이가 자기 내면의 어둠과 만나기를.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의 작품이 있는 채플을 꿈꿨다. 그림이 벽이 되고, 그림이 기도가 되고, 그림이 죽음을 준비하는 방이 되기를.



45센티미터. 그건 물감 냄새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거리였고, 붓질 하나하나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거리였으며, 예술가의 마음이 가장 크게 진동하는 거리였다.

지금, 그 앞에 선 나는 조용히 한 발 다가선다.

나의 고요를, 나의 그림자를, 그 검은 침묵에 조용히 얹는다. 잔잔한 폭풍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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