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보이스
요셉 보이스(1921~1986)는 독일의 예술가다. 조각, 드로잉, 설치 미술, 행위 예술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했고, 교육가 정치가로도 활동했다. '삶이 예술이다'라는 확장된 예술 개념으로 사회의 치유와 변화를 꿈꿨다. 그는 예술계의 거장이라 불리는 백남준과 친했다고 전해진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
요셉 보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다소 도발적으로 들리는 이 말은,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마음에 맺힌다. 예술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선언처럼. 삶 자체가 예술일 수 있다는 가능성처럼.
보이스는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1965)라는 퍼포먼스를 남겼다. 얼굴에 꿀과 금박을 뒤집어쓰고, 양쪽 발에는 각각 펠트와 쇠로 밑창을 댄 신발을 신었다. 죽은 토끼를 품에 안고 약 세 시간 동안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림을 토끼에게 설명한 퍼포먼스이다. 관객은 공연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유리창 밖에서 그 퍼포먼스를 관찰할 수 있었다. 토끼는 보이스가 작품에 가장 빈번하게 사용한 동물로, 그에게 토끼는 토양, 육화(肉化), 재생, 부활, 정신적 전환 등을 상징한다.
토끼를 품에 안고, 속삭이듯 작품을 설명하며 질문한다.
“사람과도 소통이 되지 않는 세상에서, 죽은 토끼에게 예술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 퍼포먼스는 이미지보다 의미와 사유를 중요시하는 그의 예술관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작품을 보는 우리 또한, 이미지가 아니라, 내 안의 감각과 생각으로 바라보기를 그는 요구했다.
코요테와 함께한 퍼포먼스도 있다. 《나는 아메리카를 좋아하고 아메리카는 나를 좋아한다》(1974)
1974년, 미국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한 보이스는 펠트 천에 싸여 들것에 실린 채 구급차를 타고 르네 블록(René Block) 갤러리로 갔다. 갤러리 바닥에 건초더미, 펠트 천, 《월 스트리트 저널》 등을 깔아 놓고, 그곳에서 코요테와 3일 동안 생활했다. 보이스는 커다란 펠트 천을 두른 채 지팡이만 내놓고 코요테와 대화를 시도했다. 코요테가 보이스에 익숙해지자 펠트 천을 벗고 코요테와 함께 창 밖을 바라보는 등의 행위를 보여주었다. 3일이 지난 후 보이스는 갤러리에 도착할 때와 같은 방법으로 외부와 일절 접촉하지 않은 채 미국을 떠났다.
이 퍼포먼스에서 코요테는 아메리카를 상징한다. 코요테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던 동물이었는데, 백인들이 아메리카를 점령하며 코요테를 비천하고 교활한 동물로 낙인찍는다. 따라서 보이스에게 코요테는 서부 개척 신화와 함께 사라져 간 존재들, 현대화된 미국사회가 잊은 야생성과 본능, 그리고 아메리카 땅이 겪은 정신적 충격을 상징한다.
보이스는 그 코요테 앞에 앉아 스스로를 드러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존재와 소통하려는 그 모습은, 결국 오늘날 우리 모두가 맞닥뜨리는 관계의 벽을 은유한다. 그 퍼포먼스가 하나의 시처럼 느껴진다.
《7000그루의 떡갈나무》, 그는 1982년부터 독일 카셀 도큐멘타에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하나의 나무마다 돌을 세웠고, 그의 죽음 이후에는 아들이 7000그루를 심는 퍼포먼스를 완성했다. 숲은 예술이 되었고, 풍경은 사유의 흔적이 되었다.
“예술은 조각상이 아니라 변화다.”
그가 심은 건 나무였지만, 자란 건 사유였다. 예술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 보이스는 그렇게 삶이 자리한 곳에 예술을 심었다. 말로 다하지 못하는 것들을 몸으로 전했고, 생각으로 남겼다.
그의 예술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내 생각과 철학을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전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나만의 떡갈나무를 어디에 심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