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팝아트는 1950년대 초 리처드 해밀턴(영국) 주도로 시작되었고, 1960년대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크게 발달했다. 대중문화(광고, 만화, 상품, 유명인 등)를 소재로 예술작품을 제작했는데, 기존의 '고급 예술'과 ‘일상, 상업 이미지’의 경계를 허물은 데에 의의가 있다. 주로 대량인쇄, 실크스크린, 반복 패턴, 강렬한 색채가 특징이다.
팝 아트는 앤디 워홀(1928~1987)과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이 이끌었다. 오늘은 앤디 워홀을 만나본다.
앤디 워홀은 미국에서 상업미술가로 작품을 생산했다. 대표 작품으로 캠벨 수프 캔,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케네디 등 유명인들의 초상이 있다. 실크스크린으로 대량 복제해 예술작품을 공장에서 찍어내듯 제작했다. 같은 인물을 색깔만 달리해 표현한 것을 보면 '소비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철학을 읽을 수 있다.
"미래에는 누구나 15분 동안은 유명해질 것이다"
대중성과 스타 시스템에 대한 통찰을 담은 이 말이 유명하다. 미래를 내다보았을까. 요즘은 SNS로 정말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앤디 워홀이 팝 아트에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마릴린 먼로나 코카콜라처럼 소비와 스타를 예술의 중심으로 끌어온 점이다. 또 대량생산 방식으로 예술품을 ‘유일무이’ 하지 않게 만들어 전통 미술 개념을 뒤흔들었다. 또, 자신을 브랜드로 하나의 ‘상품’이자 ‘아이콘’으로 만든 최초의 예술가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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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아트, 쇼윈도 속 나
마릴린의 미소가 캔버스를 뚫고 나와, 형광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앤디 워홀의 그림은 그려진다기보다 찍힌다. 마릴린의 얼굴은 붓질이 아니라 수십 번의 실크스크린을 통과하며 태어났다. 그는 화가이자 공장장이었다. 뉴욕의 공장에는 물감 냄새보다 잉크 냄새가 더 짙었고, 예술은 제품처럼 컨베이어 벨트를 흘렀다.
팝아트 이전의 미술은 고요한 방에서 느리게 마르는 유화였다. 앤디 워홀은 수프 캔과 코카콜라 병을 캔버스 가운데에 세웠다. 누구나 마시는 음료, 마트 진열대의 질서가 미술관 벽에 걸렸을 때, 사람들은 웃거나 찡그렸다. 웃음과 찡그림 사이에서, 대중문화와 고급예술의 경계가 스르르 풀리고 있었다.
그의 예술은 ‘유일함’을 포기했다. 같은 이미지가 색만 바꿔 수십 장 찍혀 나왔다. 원본과 복제의 선이 흐려지는 순간, 미술은 자본주의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 사회를 사랑했을까, 비웃었을까. 아마 둘 다였으리라.
나는 그의 작품 앞에서 오래 서 있지 못한다. 번쩍이는 색과 반복되는 얼굴이 시선을 붙잡으면서도 금세 나를 밀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서는 길목에서 불현듯 거울 속의 나를 본다. 매일 같은 광고를 보고, 같은 상품을 쓰며, 나 또한 복제된 삶의 한 틀 속에 서 있음을.
그는 마릴린의 웃음 속에 나를 숨겨두었다. 그 공장은 멀리 사라졌지만, 그 형광빛은 오늘도 내 얼굴 위에서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