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빛 아래에서

『내 이름은 태양꽃』 (한강 동화, 김세현 그림, 문학동네, 2002)

by 책읽는아이린

‘나도 언젠가, 꽃을 가질 수 있을까?
내 몸에도 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한강의 『내 이름은 태양꽃』을 만났다. 담장 아래 풀의 시점으로 시작되는 이 동화는 첫 장부터 내 마음을 붙잡았다. 담쟁이는 담장을 타고 훌쩍 넘어가는데, 나는 언제나 그 담벼락 아래에 멈춰 선 풀 같았다. 담장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를 부러워하면서도, 제자리에서 묵묵히 견디는 풀의 모습이 내 마음과 닮아 있었다.


풀은 꿀벌이 다녀간 뒤에야 자신에게 꽃잎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나 그 꽃의 색을 얻기 위해선 아픔을 견뎌야 했다. 장미처럼 붉은 빛을, 들국화처럼 보랏빛을, 물망초처럼 푸른 빛을 동경하던 풀은 마침내 자신의 색을 찾는다. 그 빛깔은 눈부신 노랑, 태양의 색이었다. 하지만 그 찰나, 회오리바람이 불고 꽃잎은 흩날린다. 그럼에도 풀은 슬퍼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이제는 알고 있는걸요. 나에게 꽃이 피기 전에도, 그 꽃이 피어난 뒤에도, 마침내 영원히 꽃을 잃은 뒤라 해도, 내 이름은 언제나 태양꽃이란 걸요.”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시를 쓰다 보면 자주 멈춰 설 때가 있다. 다른 이의 시가 빛나 보일 때, 나는 아직 아무 색도 가지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어쩌면 나 역시 이미 꽃잎을 지닌 풀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시선이 스쳐 간 뒤, 혹은 한 줄의 문장이 내 마음을 흔든 뒤, 문득 나만의 빛이 깃들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글을 쓰는 시간 속에서 나는 조금씩 자라고, 견디며, 내 안의 색이 짙어지게 하는 중일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알게 되었다. 꽃이 피는 일은 단지 눈에 보이는 변화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 바뀌는 일이라는 것을. 누군가의 시선을 부러워하던 자리에서, 이제는 나만의 뿌리를 더 깊이 내려야 함을 배운다. 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안의 빛은 조금씩 단단해진다. 기다림 속에서도 성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비로소 이해한다.


태양꽃은 색을 얻는 순간 꽃잎을 잃었지만, 그 이름을 믿었다. 나도 그렇게 나를 믿고 싶다. 시가 피어나지 않아도, 바람에 흩어져도,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나를 잃지 않기를. 내 안의 태양빛이 서서히 피어나 언젠가 눈부신 노랑으로 세상을 비출 수 있음을.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조용히 내 안의 꽃을 피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