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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읽는아이린 Jun 30. 2024

희미해져 가는 기억

시 이젠

 요리를 잘했던 엄마는 부엌에서 멀어졌다. 운동 기능이 떨어지며 손으로 하는 일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직장 생활이 바빠 요리나 집안일은 잘하지 못했다. 인터넷에서 요리 레시피를 찾아가며 반찬을 만들었다. 나물 무침을 하더라도 씻고, 데치고, 무치는 과정이 있고 소금 간을 적당히 맞추어야 한다. 만들고 보면 별 것 아닌데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요리는 노동이었다. 오래 서 있느라 다리도 아프고 시간이 정상이 들어간.


엄마가 진단받고 1년 4개월 정도 지났을 때다. 엄마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엄마의 지인 김** 아주머니 이름이 뜬다. 

"안 받으련다."

"왜요? 한번 받아보세요." 수신을 눌렀다.

"여보세요?"

전화 속 아주머니 목소리가 들린다. 

"형님 잘 지내시나 오랜만에 전화했어요."

"그랬어?... 끊어."

"형님 바빠요? 밥 해요?"

"응."

"그래요."

대화 없이 전화가 끊겼다.  아주머니는 말 많던 엄마가 평소와 다르다고 느꼈을 것 같다. 

"누군지 기억이 잘 나지 않네."

내가 조금 이야기를 하니 그제야 알 것 같다고 한다.

'기억이 희미해진 걸까?' 

파킨슨 증후군을 앓다 보면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증상이 동반해서 나타난다. 내 마음에 자주 빗방울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다. 


그날, 동생 생일이라 미역국과 잡채를 만들었고 케이크도 사 왔다. 촛불을 끄고 소원을 얘기해 보라고 하니,

"엄마가 건강해져서 공원도 가고, 우리 가족 행복해지는 거."

예전에는 당연하다 여겼던 것들이 소원이 되어 있었다.


그때는 코로나 19로 집 밖에 잘 나가지 못할 때여서 거의 집안에서 생활했다. 엄마가 집안에서 넘어져 왼쪽 무릎에 깁스를 했다. 베란다 타일 바닥에 무릎을 찧으며 넘어졌는데 금이 간 것이다. 잘 넘어지는 증상이 생겨 베란다와 화장실 바닥에 충격 흡수용 매트를 깔았다. 

부엌일을 끝내고 나니 옆에 앉으라고 한다. 

"왜?" 

"이쁘니까."

내 얼굴을 유심히 본다. 잊지 않고 머릿속에 담아두려는 듯이.


삼시 세끼 밥을 차리는 것 말고,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내가 놓치고 있는 게 있을까?'


그즈음, 이런 시를 썼다.



이젠 


밥을 차려 주고

어릴 땐 양치, 목욕도 시켜주고

항상 곁을 지켜주었던 

엄마


이젠

내 차례예요

점점 할 수 있는 게 줄어드는

엄마

걱정 말아요,

이젠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어

지켜드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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