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일정이 취소됐다.
사람 만날 일이 없어졌을뿐 해야 할 일은 산더미다. 하지만 미루기로 했다. 베란다에 비치는 따뜻한 햇살을 핑계로 엄마와의 바깥 나들이를 계획했다. 내년 리모델링을 앞둔 도서관에서 일인당 30권의 책을 대출해 준다는 소식을 들은터다.
"엄마, 나 도서관에 갈 건데, 같이 가요."
방금 아침식사를 끝낸 엄마의 표정이 밝다.
"그럴까?"
공기는 차갑지만 햇살은 따뜻했다.
도서관에 가기 전 병원에 들러 오랫동안 먹고있는 약으로인해 생긴, 배앓이를 낫게하는 약을 한 봉지 받아들고 나왔다. 오랜기간 항암치료 경력이 있는 구십세 노모에게선 약 냄새가 난다. 아파서 먹는 약, 약 때문에 먹는 약이 원인이다.
엄마는 일을 하는 두 딸이 시간을 쪼개가며 당신을 돌본다는 걸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늘 미안하고 고맙다고 하신다. 약봉지를 들고 빙글빙글 돌리며 "징글징글한 약이네." 하는 내 농에
"오래 살아서 약을 먹는거지." 하신다.
"요즘은 다들 오래 살아요. 항암 때문에 그런 거지." 말 끝이 흐려진다.
차에 올라타며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괜스레 수다를 떤다.
"거기 도서관이 내년에 리모델링 하는데, 책을 1년동안 빌려준대요. 엄마는 뭐 빌리고 싶어?"
"글쎄, 갑자기 뭘 빌리나?"
20여분을 달려 도서관에 도착, 훨체어와 수레를 연달아 꺼냈다. 내가 가진 힘에 비해 휠체어의 무게는 상당하지만, 엄마 앞에서는 번쩍 들어 보인다. 있는 힘을 다 써야 하는 일이다. 휠체어와 수레를 앞뒤로 끌어가며 어린이자료실과 종합 자료실을 두루 돌며 책을 골라 담았다. 엄마는 종합 자료실의 큰 글자 책꽂이 앞에 모셔다 드렸다. 큰 글자다보니 책의 두께가 상당하다. 소설책의 두께에 놀라 머리를 휘저으신다.
"글자가 커서 그래. 소설이라 금방 읽어요."하는 나의 말에
가수 양희은의 에세이와 쭈뼛쭈뼛 김훈의 역사 소설을 집어 드셨다.
엄마는 최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소년이 온다>를 너끈히 읽어내셨다. 책 읽기와 그림 그리기를 즐기던 분이다.
암덩어리는 엄마의 취미조차 빼앗아 갔다. 제대로 앉을 수 없었고, 음식을 씹을 수 없었다. 손이 떨려 젓가락을 집을 수 없었고, 혼자 힘으로 양말을 신을 수 없었다. 고통의 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먹고 자고, 걸을 수 있는 힘이 생겼다.
타자 눈에 보이는 아픈 사람의 스토리는 대개 비슷하다.
그러니 이런 얘기는 식상하다. 알면서도 밝히는 건 자식으로서 느끼고 있는 통증이 가시지 않기 때문이다. 병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은 등에 진 자신의 짐에 고통이 추가된다. 아파도 아프단 말을 못한다. 더 아픈 엄마가 계시기 때문이다. 졸려도 어둠을 깨고 일어나야 한다. 새벽부터 약봉지 부스럭 거리는 엄마가 계시기 때문이다. 먹고싶어도 먹으면 안되는 게 생긴다. 미약하게 남아 있는 신장기능을 지키기위해 애쓰는 엄마가 계시기 때문이다.
도서관 귀퉁이에서 휠체어에 앉아 책 보시던 엄마의 모습을 벌써 또 보고 싶다.(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