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내 능력에 의심이 들 때.

by 북극곰

이직 준비생이 된다는 건 다시 취업준비생으로 돌아간 느낌 같다. 다만, 취준생처럼 패기 넘치는 열정보다는 경력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기에 선택의 폭이 좁고 날카로워진 취업준비생 말이다. 그래서 내게 적합한 곳들을 찔러보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내 무기가 무뎌서 그런 건지 의기소침해지고 만다. '내가 시장 경쟁력이 있는 사람일까?'라고 스스로를 의심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기대했던 회사로부터 탈락 고배를 마시는 날이면 하루 종일 다운된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회사에 지원을 하게 될 때까지 마음에 응원을 뿌려줘야 한다. 내 문제가 아니라고 그러니 멈추지 말라고 말이다. 나에게도 3개월간의 이직 준비기간 이런 응원들이 있었기에 서류 탈락 혹은 면접 탈락에도 쉬지 않고 지원할 수 있었다.



처음 지원한 회사는 대학생 때부터 선망했던 기업이었다. 헤드헌터는 내 이력서를 보고 이 정도면 서류 정도는 합격할 거라고 말해주었기에 나는 바로 면접을 준비했다. 첫 헤드헌터였기에 연락을 받은 것도 신기했고 수많은 케이스들을 봐왔을 헤드헌터가 내 이력서를 긍정적으로 봐주자 자신감도 붙었다. 그래서 서류 결과도 나오기 전에 나는 주말마다 면접을 위해 경쟁사와 해당 기업을 분석하고 경력직으로서 기여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찾아 헤맸다. 지인 중에 해당 회사에 재직 중인 선배들을 찾아 조언을 여쭤보기도 하며 이미 마음을 그 회사로 출퇴근하고 있었다. 그렇게 간절히 기다렸지만 헤드헌터는 서류 탈락 소식을 전해왔다. 기대가 큰 만큼 상심도 컸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동력을 잃고 멈춰 섰을 때 헤드헌터는 다시 연락이 왔다.


“다른 직무로 나온 공고에 지원해보시겠어요?”

“이미 그 회사는 떨어졌는걸요?”

“참 이상하게 그때 그 공고는 제가 다른 적합한 경력자 분 두분도 함께 추천했는데 그분들도 경력이 우수하였는데 다 떨어지셔서 아마 공고가 닫히지 않았나 싶어요.”


그의 말에 나는 무너진 자존심을 조금은 지킬 수 있었다.

'내가 부족한 문제가 아니구나.'라는 이 작은 안심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른다. 과정은 치열하게 준비할지라도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포용하는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다. 결과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다시 심기일전을 하여 30군데 넘게 지원을 하자 몇 군데 스타트업에서 연락이 왔고 그중 가장 아이템이 경쟁력 있어 보이는 회사의 면접을 보게 되었다. 사실 면접을 보기 전까지 신생 3년 차였던 회사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큰 기대를 하지 않은 스타트업이었지만 면접을 보면서 근무환경이나 면접 수준은 체계적이라 느껴졌다. 부대표와 실무자 두 명으로 구성된 면접관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열심히 나의 경험을 토대로 그들을 설득했다. 질문만 들어도 그들이 어떤 사람을 뽑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방향이 느껴졌다. 이런 기업이라면 앞으로 어찌 될지 모르는 신생기업일지라도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1시간의 면접 결과, 1차 면접을 합격했으니 2차 대표 면접을 위해 과제를 해서 면접날 발표를 해달라고 했다.

숙제까지 내준 면접이라 면접을 위해 고민할 게 많았고 준비할 시간도 많이 필요했지만 오히려 이렇게 사람을 뽑기 위해 여러 절차를 거치는 것이 더 믿음직스러웠다. 준비를 하면서 시장 동향과 기업 투자 유치금 등을 파악하면서 전망이 더 구체적으로 그려졌고 가고 싶은 마음도 간절해졌다.


그래서 2차 면접은 꼭 합격하고 싶었다. 이렇게 이미 김칫국 마셨던 터라 겨우 1차 면접을 합격해 놓고 최종 합격한 것처럼 사직서도 준비해뒀다. 머릿속으로 2차 면접 뒤에 합격 발표 일자를 고민하고 몇 주간의 리프레쉬 시간을 갖은 뒤 바로 출근하면 되겠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그렇게 준비한 과제를 대표와 부대표 앞에서 발표하고 여러 질문에 답변을 하며 2차 면접을 마쳤다.


최종결과를 보기 전에 사직서를 언제 제출할지 고민하던 찰나에 갑자기 나는 발령이 났다. 장거리 통근이었던 터라 퇴사 사유를 장거리 통근으로 하려고 하던 참에 집 근처로 발령이 나게 된 것이다. 당장 2일 뒤 발령으로 나와 갑자기 나는 정신없이 새로운 부서에서 업무를 배워야 했다. 새로 발령 난 조직이 근무환경도 통근거리도 좋았고 이 회사에 다니면서 한 번쯤은 경험해보고 싶었던 직무였기에 급히 퇴사하지 않고 몇 주 경험을 하자는 마음도 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새로운 부서로 이동한 첫날, 면접을 봤던 스타트업 부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 발신자만 보고도 합격이구나 예감이 들었다. 탈락자에게는 굳이 전화가 아닌 문자로 결과를 통보해 줄 테니 말이다.


"앨리님, 통화 가능해요?"

"네! 안녕하세요. 부대표님!"

"아 앨리님 아쉽게도 이번 면접에서는 함께 하지 못하게 되셨어요. 다른 분이 직무에 더 적합해 보이셔서.. 그런데 저는 너무 아쉬워요. 저는 앨리님이 책임감 강하지고 일도 잘할 거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2차 면접을 너무 못 보셨어요.. 1차 면접을 훨씬 더 잘 보셔서 느껴지셨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계속 1차 때 한 얘기도 괜찮으니 더 말해보라고 말씀드렸었어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저는 앨리님이랑 한번 꼭 일해보고 싶어서 이 직무여야만 한다는 게 아니라 우리 회사 내 다른 직무도 괜찮다고 하시면 다른 직무로 제안드려도 될까요??

"아 네 좋아요! 저는 그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거라 다른 직무도 좋습니다."

"알겠어요! 앨리님! 고마워요!진짜 너무 아쉬워요"


기대했던 합격 소식은 아니었지만 마침 새로운 근무지가 맘에 들어 급하게 퇴사할 생각을 내려놓았던 참에 들은 결과여서 불합격의 아쉬움은 덜했다. 그리고 오히려 합격했던 1차 면접 답변과 불합격했던 2차 면접 답변을 복기해보며 다음 면접에서는 어떻게 말해야지 하는 확신도 들었다.


2차 면접 때를 회상하면 "제가 그걸 해보지 않아서 정확하지 않지만." , "아직 해보지 않았지만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답변을 많이 하였다. 반면, 1차 면접에는 "저는 ~~~ 경험을 하며 끈질기게 협상해 온 경험이 있어서 그런 업무도 능숙하게 소화해낼 수 있습니다."라고 답변하였다. 면접에 통하는 화법을 정확하게 깨닫게 되었으니 합격소식보다 더 소중한 불합격 피드백이지 않았나 싶다. 결과적으론 나라는 사람은 동일한데 답변 스타일에 따라 불/합격 여부가 달라지니 서류나 면접 결과가 온전히 나라는 사람을 어필하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떨어졌지만 내가 들은 피드백들은 내가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는 용기를 심어주었다. 그 용기들이 쌓여 계속 이직 준비를 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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