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어떤 사람이 이직을 성공할까? 능력이 출중하여 여기저기 제안을 많이 받는 능력자일까? 아니면 현 직장에서 도저히 버티지 못할 것 같아 혹은 비전을 볼 수 없어 적극적으로 뛰어다니면 스스로를 셀링한 사람일까?
일단 나는 굵직한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며 업계에 이름을 날린 스페셜리스트로 여기저기 와달라는 제안이 끊이지 않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화려한 이력(학교, 전공, 현 직장, 커리어)을 가지고 있어 원하기만 하면 여기 아닌 다른 회사를 언제든 갈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스스로를 적극 세일즈하는 후자의 사람이 되어야 했다. 여기서 버틸 만큼 회사에 열정이 남아있지 않아, 그렇게 열정을 바칠 만큼 회사에 비전을 보지 못해, 열정을 바쳤지만 회사가 나를 대하는 대우가 좋지 못해 내 시장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고 여기서 이만큼의 성과를 냈으니 나를 데려가라고 말이다. 그리고 아마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도 후자의 사람들일 것이다.
3개월 전에, 내가 사표를 마음에 품고 사는 동안 나보다 먼저 퇴사를 던지고 이직한 선후배들을 보았다. 사실 나는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준비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들이 얼마나 간절하게 탈출을 희망했는지는 공감이 갔다. 그들은 내가 회사에서 배신감을 느끼기 전에 더 강한 좌절감, 배신감, 번아웃을 느꼈고 그 결과 더 적극적으로 더 빠르게 이직을 준비하였다.
함께 일했던 어떤 과장님은 작년 한 조직의 수장으로 성과를 2배 이상 끌어올렸다. 그러나 회사는 그 성과를 그의 능력으로 보지 않았고 그 과장님 위에 비슷한 연차의 다른 수장을 세웠다. 그리고 2배 아닌 3배 성과를 달성해야 한다며 그의 노고를 칭찬하기 전에 더 큰 성과를 달성해야 한다고 쪼아댔다. 그렇게 새로운 수장을 본 그는 2주간 연차를 쓰며 회사를 출근하지 않았다. 그리고 2달쯤 지나자 그는 퇴사를 하겠다고 회사에 통보했다. 결국 그는 몸값을 30%는 높여 한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성공했다. 그는 안정성을 떨어지지만 더 큰 보상과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곳으로 떠나갔다. 떠나는 마지막 날 그는 15년간 이 회사에서 일하면서 단 한 번도 퇴사를 생각한 적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최근 2달간 그는 퇴사를 강하게 생각했고 결국 실행하였다는 것이다. 15년간 회사에 강한 로열티를 가졌던 만큼 자신의 노고를 깡그리 무시한 회사에 큰 배신감을 느꼈고 회사에서의 자존감, 15년 차 직장인으로서의 자존심이 무너진 순간 그는 누구보다 절실하게 탈출을 준비한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 후배는 업계에서 대우가 가장 좋기로 유명한 회사로 이직하여 회사에서 큰 부러움은 샀다. 그는 본부 조직으로 이동한 지 2달쯤 되자 바로 이직을 하였다. 곧 승진 면접을 앞두고 있었지만 그는 혹시나 자신에게 돌아올 승진에 연연하지 않고 이직을 선택하였다. 2달 전에 발령이 날 때만 해도 신이 났던 그였기에 왜 이직을 준비했는지 의아스러웠다. 나중에 듣기로 그는 발령 난 조직에서 새로운 사람에 대한 온보딩 프로그램도 없고 막내라고 함부로 대하는 분위기에서 소외감을 느꼈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업무적인 성취감을 느낄 수도 없었고 의미 없는 보여주기 식 보고자료를 위해 새벽까지 일해야 하는 업무 강도에도 심신이 지쳤다는 것이었다. 업무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안정감을 느끼지 못한 그는 발령이 난지 한 달 만에 탈출을 갈구했다. 그래서 그는 여러 업계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이직이라는 우물을 적극적으로 팠고 결국 더 좋은 회사로의 이직에 성공했다. 그의 이직은 비슷한 연차였던 우리에게 큰 센세이션이었다. 우리는 매년 로테이션이 잦은 회사여서 3~4년 차에 큰 전문성을 쌓기는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아직 애매한 연차에서 다들 승진을 하고 연차를 더 쌓아야 이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좋은 회사에 있는 사람 혹은 더 오래된 연차로 깊이 있는 직무역량을 쌓은 잘난 선배들을 미리 지레짐작하여 겁먹지 않고 본인의 도전을 아끼지 않은 후배는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열렬하게 이직에 도전했기에 빠르게 원하는 곳으로 이직에 성공한 선후배의 성공은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사실 이직 준비를 한다고 하지만 열심히 지원하기보다 몇 군데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두고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동료들도 있었다. 반면, 그들은 이직이 간절했기에 앉아서 기회를 기다리지 않고 각자 자기의 기회를 찾아다녔고 그 덕분에 더 좋은 대우, 더 좋은 회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니 나 자신을 세일즈를 해야 하는 구직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간절함'이다. 그 '간절함'이 더 치열하게 도전하고 준비할 열정과 뭐든 두렵지 않을 패기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이직 준비를 할 때, 스스로 적극 세일즈해야 하는 목마른 사람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두 가지일 것이다. '내가 애매한 경력(연차)이지 않을까?' 혹은 '이직이 확정되기 전에 레퍼런스 콜로 현 직장에 알려지지 않을까?' 우려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지원 공고에 "6년 차 이상"이 적혀있어 5년 차인 자기가 지원할 수 있냐고 지레 겁을 먹는 동기를 보았다. 그러나 목이 말랐던 나는 4년 6개월에 경력으로도 5년 차 이상, 혹은 6년 차 이상을 경력자를 뽑는 공고에 여러 차례 지원했고 실제로 해당 회사들의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도 다수 경험했다.
5년 차를 뽑는다던 회사는 면접을 보러 온 나를 보며 말했다.
"사실 앨리님의 경력은 우리가 희망하는 것보다는 조금 짧아요. 우리는 팀장급을 뽑아서 5년 이상의 근무 경력자를 찾고 있어요. 그런데 앨리님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고 어떤 분인지 꼭 만나보고 싶었어요."
그 뒤에도 '6~10년 차 경력자'를 지원자격에 넣은 공고에 겁 없이 지원하고 연락이 없어 잊고 있었는데 해당 회사에서는 지원 한 달 만에 연락이 왔다. 10년 차의 과장급을 뽑고 대리급을 뽑느라 이제야 내게 연락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내가 4년 6개월의 경력이라 5년이 채 되지 않아, 6년에는 좀 많이 모자라다고 생각하여 지원하지 않았으면 나는 소중한 면접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지금도 탈출만을 바라면 이력서를 다듬고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회사에서 보는 수많은 선후배들이 연차 1~2년으로 드라마틱하게 업무역량 차이가 나지 않다는 것은 흔히 보아왔다. 5년 차 대리가 8년 차 대리보다 빠릿빠릿하고 깔끔하게 일처리 하기는 것도 보았고 3년 차 사원이 해당 부서에서 가장 신선한 아이디어로 이름을 알리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 이직을 도전할 때 1~2년 정도의 나보다 긴 근무경력을 가진 선배들도 내 역량으로 이겨버릴 수 있다는 패기가 필요하다. 지원도 전에 포기하고 겁먹는 것이 아니라. (물론 연차가 안되면 지원조차 안 되는 회사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가 더 많으니 가능한 지원의 폭을 넓혀 확률을 높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두 번째로 현 직장에 알려질까 봐 이직 면접을 보러 못 가겠다고 말하는 동료들이 몇 명 본 적 있다. 그들이 아직 확고히 이 회사를 떠날 준비가 안된 게 아닐까 싶다. 물론 떨어질 때를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도전도 하기 전에 떨어지면 내게 올 불이익이 걱정돼서 지원을 못하겠다는 것은 그만큼 이직이 절실하지도 그만큼 자신의 능력을 믿지도 못하는 게 아닐까. 물론 안정성이 중요해 현 직장에 적당히 배수진을 치느라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도전에는 헝그리 정신이 필요하다.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아야 더 큰 걸 쥘 수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내가 이직을 준비하면서 지원한 회사에 아는 지인으로부터 평판조회를 듣고 내게 역으로 연락 왔던 회사 동료들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어느 회사에 지원해서 레퍼런스 콜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소문도 들려오기도 했다. 비밀리에 퇴사준비를 하는 것이 맞지만 말이 빠른 회사에서 내 맘처럼 비밀이 유지되기는 쉽지 않다.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만큼 흘러나오는 말들도 있을 수밖에 없다. 생각보다 회사 사람들은 남 얘기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굴하지 않았다. 이미 이직이 되지 않아도 퇴사하리란 의지가 컸기에 회사에서 누가 알고 있다고 한들 겁이 나지 않았다. 물론 이직을 준비하는 것을 공공연하게 하긴 어렵지만 직장인이라면 더 좋은 조건, 더 좋은 회사가 있다면 이동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 않나. 회사도 나보다 더 유능하고 더 성실한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나보다 더 위에, 더 좋은 대우를 주는 것처럼 말이다. 현 직장에 적당히 만족하면서 더 좋은 조건을 재는 거라면 진짜 가고 싶은 몇 군데 회사에 조용히 지원하는 것이 좋겠지만 이미 회사에 정내미가 떨어져서 여기 못 버티겠고 제발 퇴사하고 싶다면 회사에 남겨졌을 때 걱정보다 회사를 떠났을 때 희열에 더 집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속담처럼 말이다.
그러니 떠나고 싶다면, 우물을 파세요. 간절하게. 겁 없이. 열정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