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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Nov 25. 2020

나의 명품 운전면허증

올해 나는 운전면허를 따기로 마음먹었다. 그동안 운전이라는 것은 위험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고 나는 운전을 하기에는 조심성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쉽사리 도전할 마음이 안 들었다. 게다가 대중교통만으로도 불편함이 없어 굳이 차를 끌고 다닐 생각도 없어기에 운전면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이제는 더 늦어지면 면허 딸 시간도 안 생길 것 같아서 나는 퇴사를 결심한 순간 바로 운전면허학원을 등록했다.



운전면허증이 기본 자격증처럼 가장 흔하고 볼 수 있고 또 쉽게 따는 사람들도 많다 보니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운전면허증의 첫 관문인 필기시험을 위해 기출문제집을 보는데 내 눈에는 정답이 보이지 않았고 정답을 봐도 왜 이게 정답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생각보다 어려운데 사람들은 다 어떻게 30분 만에 합격했다고 하나 싶었지만 주위 사람들이 쉽게 시험 본 경험담에 마음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운전면허시험 그냥 30분 쓱 문제집 보고 시험 보니 합격이던데? 문제집 달달 풀면서 공부한 기억은 없어."


남들이 그랬으니 나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기출문제집이 실제 시험보다 어려워서 내가 모르는 게 많겠거니 합리화하며 무작정 필기시험을 보러 갔다. 그리고 나는 필기시험에 떨어졌다.



내가 크게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남들 다 붙는다는 운전면허 필기시험부터 떨어진 내가 한심했다. 평일에 시간 내서 힘들게 왔건만 떨어지다니... 그때 알았다. 운전면허는 떨어질수록 시간과 돈이 깨진다는 것을. 그래서 더 속상했다. 시간도 돈도 아까워서.


그래서 그다음 시험부터는 기출문제집 한 권을 다 풀고 필기시험을 보았다. 겨우 2번 만에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합격했다. 어쩌면 그게 시그널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운전면허를 쉽게 딸 수 없다는 시그널 말이다.



필기시험 합격 후에 장내주행 연수는 4시간 받았다. 처음 운전석에 타서 핸들을 잡아봐서 겁도 냈지만 내 첫 장내주행 연수를 맡으신 선생님이 친절하셨다. 아무것도 모르고 서툰 내가 답답한 수강생이었겠지만 최대한 친절하고 따뜻하게 말씀해주셨다.


"오케이~ 딱 좋아! 여기서 2시간만 더 연수받으면 완벽하겠다!"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도 나는 바로 장내주행 시험을 봤다. 그리고 나 홀로 차에 앉아 장내주행 코스를 운전한 지 30초 만에 깨달았다. 망했다는 걸. 차선을 넘어도 차선을 맞출 줄도 몰라 삐뚤빼뚤 운전하다 결국 차선을 넘어 실격되고 말았다.


아쉬움도 없었다. 첫 장내주행 시험을 보면서 나 홀로 차에 앉아 내가 얼마나 운전이 미숙한지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겸손하게 장내주행 2시가 추가 연수를 결재하였다. 무려 125,000원.. 그리고 이어서 바로 장내주행 재시험을 등록하여 175,000원을 결재하였다. 운전면허 학원비만 내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추가 장내주행 연수를 받는데 이번 선생님은 무서웠다. 나의 미숙한 핸들 조작을 보면서 차를 모퉁이에 세워두고 핸들을 빠르게 돌리고 푸는 연습만 시켰다. 속으로 비싼 연수비 내고 차 안에서 핸들 돌리기 연습만 하니 답답했지만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내가 운전에 대해 질문하면 "그건 당연한 거지, 그런 걸 물어봐!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라고 윽박지르시기도 했고 "왜 이렇게 운전이 서툰 거 같아요?"라고 아픈 곳을 찌르시기도 했다.


비싼 돈 주고 배우러 와서 혼만 나는 거 같아 나도 까칠해져서 "아직 운전한 지 얼마 안돼서 그런 거겠죠."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니 이제 막 운전 배우는데 못할 수도 있지 않나! 그러자 선생님은 내가 남들보다 운동신경이 없어서 운전이 더 서툰 거라고 하셨다.. 맙소사 나 운동신경 없는 거 바로 아시네.. 역시나 수많은 수강생들을 만나 운전을 가르치다 보면 척 보면 척인 건가 싶었다. 다시 알려주시는걸 열심히 따라 해 보고 2시간 연수 시간이 지날 때쯤 되자 호랑이 선생님이 마지막 조언을 주셨다.


"운전면허 시험이 원래 장내기능 시험이 10시간이었는데 이명박 정권 바뀌면서 4시간으로 축소된 거예요. 그래서 운동신경도 있고 감각 있는 사람은 4시간 만에 따는데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더 걸리는 게 당연한 거예요. 이번에 시험 떨어져도 너무 위축되지 말고 더 연습하면 될 거예요."


선생님의 조언에는 아마 내가 아직 더 연습하고 시험을 보라는 뜻이었던 거 같다. 그 속뜻도 모르고 나는 또 과감히 시험을 봤고 이번에는 시작하자마자 실격되며 또다시 장내기능에서 떨어졌다. 이제 핸들은 좀 조작하겠다는데 좌회전, 우회전을 언제 해야 하는지가 어려웠기에 나는 또 거금을 들여 장내기능 연수 2시간을 신청했다.


4시간 기본 연수에 추가로 4시간을 더 들으니 이제는 좌회전, 우회전을 언제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4시간의 추가 연수 끝에 장내주행 시험에 도전했으나 시간 초과, 과속, 신호위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불합격을 맛봐야 했다. 이제는 준비된 거 같은데 예상치 않은 곳에서 떨어지니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남들 다 붙는 운전면허시험을 장내주행에서부터 5번 넘게 떨어지는 모질이 같으니.. 운전면허를 포기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운전면허를 따면 안 되는 사람이라는 계시일까. 그냥 포기할까? 장내주행 시험비만 30만 원이 들어갈 줄은 몰랐다. 돈뿐만 아니라 평일에 주말에 시간 내서 시험 보러 오는 게 쉬운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끝까지 해보기로 결정했다. 시작했으면 끝은 봐야지 라는 마음이었다. 중간에 포기생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나는 운전을 하기에 운동신경도 없고 운전에 대해서도 잘 모르니 남들보다 오래 걸리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떨어지면 ‘또 시험보지 5만 원 내지 뭐'라는 여유만만한 마음으로 차분하게 시험을 보니 장내주행 6번째 시험만에 합격할 수 있었다. 사실 똑같은 시험을 6번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남들 도로주행 연수받고, 면허 따서 슝슝 나가는 동안 나는 장내주행 코스 연습만 계속하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험을 볼 수 있었던 이유는 한 번씩 시험 볼 때마다 내가 조금씩 더 나아졌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어려웠던 좌회전이 이제는 능숙하구나. 주차나 시간을 좀 걸려도 차선 이탈을 하지 않구나. 속도 조절만 조금 했어도 합격했을 거 같다.'


남들과 비교하기보다 지난 나의 운전 실력과 비교해서 늘었기에 반복되는 도전에도 위로를 받으며 나아갈 수 있었다.

 


이렇게 어렵게 6번 만에 장내주행을 합격해서 도로주행을 시작했기에 나 자신에 대한 큰 기대가 없었다. 올해 목표는 도로주행 연수 6시간 듣기였다. 시험 합격이 아니라 도로주행 연수라도 받아보자는 마음이었다. 장내주행이 6번 만에 되었으니 도로주행은 도대체 얼마나 걸릴지 가늠할 수 없었다.



나의 목표는 추가 연수도 계속 받아가면 다양한 운전면허 학원 선생님들을 만나 운전면허를 제대로 따 보자는 것이었기에 빨리 따자는 조급함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운전의 감을 잃지 않기 위해 매주 도로주행 수업을 신청하여 듣는데 2시간 연수해주시는 선생님을 만났다. 그 선생님은 내가 처음 연수받는 선생님이었지만 이전에 내가 장내주행 떨어질 때 시험 안내하고 결과지 주시며 조언해주신 분이기에 속으로 내심 반가웠다.



장내주행 8시간의 연수받은 덕분인지 도로주행을 어렵지 않게 진행했음에도 나 스스로 운전을 못한다고 생각했기에 주눅이 들어있었다. 나는 운전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스스로 가둬두고 있었고 선생님도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고 이해해주시며 운전을 알려주시길 바랬다.


"선생님 제가 사실 기능 주행도 6번 만에 합격했어요~ㅎㅎ"

"그러면 그 기능 주행 6번 연습한 걸 도로에서 이제 발휘하는 거죠! 대기만성형이시네요!"


나는 나름 쉽다는 장내 기능도 어렵게 딴 나의 수준을 말하고 싶었는데 선생님은 여러 차례 도전하고 연습한 나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주셨다. 말을 이렇게 예쁘게 할 수 있다니.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실 수 있다니 선생님의 반응에 나는 뭉클해졌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난 이후부터 신기하게도 나는 스스로 선생님 말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장내주행을 8 시간 하면서 연습을 많이 했어! 도로주행도 어렵지 않아! 난 할 수 있어!'


그렇게 6시간의 도로주행을 끝내고 더 준비하고자 2시간 추가 연수 후에 시험을 봤지만 아쉽게 과속으로 실격되었다. 차라리 끝까지 주행해보고 떨어졌으면 돈이라도 안 아까웠을 텐데 타자마자 5분 만에 실격되어 얼마나 속이 쓰렸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사실 아직 내가 코스도 못 외우고 준비가 덜 되었기에 다음 시험 전까지 유튜브 도로주행 영상을 달달 외우기로 했다. 적어도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시험을 보면 아쉬움은 없겠지. 불합격 해도 완주를 하면 나아진거다 위로하면서.



그리고 마침에 도로주행 2번 만에 나는 운전면허 합격하였다! 필기시험을 2번째 만에 합격, 장내주행을 6번째 만에 합격했기에 도로주행 시험은 5번 이상이 걸릴 수 있다고 이미 마음을 내려놓은 상황이었고 큰 기대가 없었기에 더 기뻤다. 운전면허 합격증이 끝이 아니라 이제 시내 연수도 받아보고 계속 운전 연습도 해야 되기에 이제는 운전 진짜 첫 시작 단계라는 걸 알지만 학원차가 아닌 자차로 운전을 연습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주행코스대로 연습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필요한 코스대로 연습하면 된다는 게 얼마나 자유로운지 모른다. 이제 나도 드라이버라니.


7전 8기 운전면허 도전 끝에 얻은 비싼 면허증이라 더 소중하다. 이 면허증이 명품처럼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안전을 다해 운전해야지. 그러니 혹시 나처럼 여러번 시험에서 떨어져서 기죽은 예비 드라이버가 있다면 내 시험지를 보고 힘냈으면 좋겠다! 우리는 대기만성형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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