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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Nov 28. 2020

완급조절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운전을 처음 배우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완급조절이었다.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밟아 속도를 천천히 줄이는 것, 엑셀을 부드럽게 밟아 속도를 천천히 높이는 것, 제 타이밍에 빠르게 핸들을 돌려 좌회전을 하는 것 등 운전에는 힘을 줘야 할 때와 힘을 빼야 할 때가 있다. 초보 운전자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브레이크나 엑셀을 확 밟아 버리는 것,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할 때를 천천히 하다가 부딪힐 뻔하는 것 등이 있다.



나도 운전이 익숙하지 않아 긴장하여 운전할 때 힘을 확 주고 브레이크나 엑셀을 밟아버리는 사람이었다. 속도를 줄이거나 낼 때 힘을 주어 확실하게 밟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옆에서 수시로 ‘힘을 빼고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고 말해도 맘이 급할 때면 나도 모르게 힘을 뽝 줘버리곤 했다. 그렇게 거친 운전을 하던 초보 수강생은 점차 운전 연습을 하면서 부드럽게 속도를 줄이고 부드럽게 속도를 내며 달리는 방법을 배웠다.


1) 발에 힘을 빼고 앞차가 브레이크를 밟은 게 보이면 나도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줄여가기.

2) 속도를 내야 할 때에는 천천히 발에 무게를 더해 속도를 높여갈 것.


발에 힘을 주는 것보다 어려운 게 발에 힘을 빼고 운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운전 연수를 배우는 동안 내가 연습해야 할 것은 발에 힘을 빼는 연습이었다. 힘을 빼고 부드럽게 무게를 더해 브레이크, 액셀을 밟아가는 것 말이다.



이렇게 힘을 빼는 게 운전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흔히 중요한 일이나 시험에 너무 많이 긴장한 나머지 힘을 빡 줘서 오버할 때가 있다. 그런데 준비에는 힘을 줘도 실전에서는 힘을 빼고 여유롭게 임해야 준비한 만큼의 좋은 성과가 나온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청심환을 과다 복용해서 잠이 오거나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있지 않나.



힘을 주기만 했던 10대

10대 시절에는 미처 몰랐다. 나는 고3 때 수능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재수생이 되었다. 마음먹고 시작한 재수생활이었지만 그 일 년이 그렇게 고된 일 년이 될지 몰랐다. 준비과정이 힘들었던 만큼 2번째 보는 수능은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되는 시간이었다. 점심 도시락을 1/3도 채 먹지 못한 채 혹시나 원하는 점수가 안 나오면 어쩌나 바들바들 떨면서 시험을 봤다. 그 결과, 가장 힘주었던 과목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평소에 받아본 적 없는 점수를 받고 말았다. 심지어 그해 그 과목이 제일 쉬운 과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힘을 주는 방법은 알지만 힘을 빼는 방법을 몰랐던 수험생의 두 번째 수능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때는 내가 왜 그렇게 긴장을 했는지, 내가 뭘 준비하지 못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운전을 배우면서 알게 된 건 그때의 나는 힘을 빼는 방법을 몰랐다는 거다. 힘을 뽝 주는 방법은 알아도 힘을 빼고 주어진 시험지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몰랐다.



우리의 치열한 경쟁사회는 남들보다 빠르게, 남들보다 좋은 결과를 받는 것에 가치를 두고 있기에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조금은 천천히 힘을 빼는 자세 강조하지 않았다. 수많은 합격 수기에는 얼마나 치열하게 공부했는지를 강조하였기에 우리 모두 치열하게 힘을 주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고만 배웠다. 물론 10년 전 내가 수험생 시절에도 '마인드 컨트롤'이라고 해서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단어가 유행이었지만 무형의 단어인 '마인드'와 '컨트롤'이라는 단어를 아무리 보아도 체화시키기 어려웠다.



힘을 주는 것에 지쳐버린 20대

힘을 주고만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0대에는 대학만 가면 끝날 줄 알았건만, 20대에는 훨씬 더 다이내믹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학점, 취업, 승진, 이직, 재테크, 수많은 자기 계발 등등.. 이 모든 것에 힘을 주려고 하니 해도 해도 끝나지 않은 진로 고민, 미래준비에 지쳐가고 있었다. 힘을 줘도 준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많으니 말이다. 나의 노력만으로 결정되지 않은 일들 속에서 어쩌면 수능이 가장 쉬운 게임같았다. 그렇게 나는 힘을 주어 노력했지만 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결과를 받을 때마다 실망했고 좌절했다.


내가 노력할 수 있는 건 다 했는데..


그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지쳐갈 때쯤 나는 그 결과를 내가 만들어가기로 결심했다. 내가 노력한 만큼 인정해줄 회사를 찾아서 내 몸값은 내가 올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이를 갈며 치열하게 이직 준비를 하였다. 그러다 원하는 회사에 면접을 보게 되었고 꼭 들어가고 싶은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했다. 그럼에도 나는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다. 되돌아보면 내가 완벽하게 준비했다는 건 나의 기준이었고 나는 너무 힘주어 면접에 임하여 긴장 속에서 동문서답하기로 했다. 그렇게 준비했던 면접에서 떨어진 후 나는 힘이 빠졌다.


그 뒤에 운 좋게 또 원하던 회사에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탈락의 쓴맛을 맛본 뒤라 큰 기대 없이 연습 면접이다 생각하고 면접을 봤다. 이전 탈락은 내게 낮은 기대감을 심어주었기에 나는 큰 기대 없이 면접에 임했다.


'여기도 떨어질 수 있지 뭐. 떨어져도 경험이니 연습한다 생각하고 면접 보자'


그리고 그렇게 힘을 빼고 면접을 보니 스스로 면접관 눈에 들기 위해 자신 없는 질문에 대해 꾸며내지 않게 되었고 소신 있게 대답하며 여유롭게 면접을 봤다. 그 결과, 나는 면접에 합격할 수 있었다. 20대가 끝날 때 힘을 빼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힘을 빼는 법을 배워갈 30대

남들보다 빨리 가려고 거친 운전을 하면서 힘을 주어 급브레이크, 급발진을 여러 번 밟으면 운전자의 피로감과 긴장감이 높아진다. 우리가 마주하는 수많은 시험과 경쟁도 힘을 주기만 해서 우리가 지쳐가는 건 아닐까. 힘을 빼는 법은 어쩌면 더 오래 우리가 인생을 안전 운전하며 살아가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미 30대가 되어 가는 지금, 눈앞에 큰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혹은 더 큰 산들이 내 앞에 놓일 걸 알기에. 운전처럼 인생에도 '남들보다 빠르게'가 아니라 내가 지쳐 떨어지지 않게 부드럽게 힘을 줬다 빼는 방법도 배워야겠다.


번아웃 증후군처럼 힘을 주기만 하면 나중엔 남들보다 빨리 지쳐버릴 수 있다. 우리가 운전을 얼마나 잘하는지 말할때, 내가 시속 몇까지 달린다고 말하는게 아니라 운전경력이 몇년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인생도 빨리 가는 것보다 오래 달리는게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인생도 운전처럼 완급조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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