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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Dec 13. 2020

카톡이 알려주는 생일이란.

카카오톡이 생일을 알려주면서 사회초년생이 되던 해에는 기프티콘을 매달 뿌리면 살았다. 이제 나도 돈을 번다는 여유와 함께 넘쳐났던 인심으로 헤프게 생일 축하 기프티콘을 남발하였다. 그리고 내가 뿌린 많은 생일 축하 기프티콘들은 쌓이고 쌓여 내 카드값으로 돌아왔다. 기프티콘을 결재할 때까지만 해도 실감되지 않았던 지출은 카드 결제대금이 산정되고 나서야 내게 지출이라는 것이 실감됐다. 물론 축하를 해준 만큼 내 생일에도 그만큼 축하는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카오톡이 알려주는 생일은 부담스럽다.

생일을 챙기기에는 애매한 사이지만 업무로 엮여 있는지라 어쩔 수 없이 챙겼던 생일들도 있었다. 지출이 실감되어 남발하던 기프티콘도 줄이던 참에 이렇게 애매한 사이의 생일을 안 챙기기도 그렇다고 챙기기도 찝찝했다.


2년 전, 이맘때 소시오패스 상사에게 괴롭힘을 받던 때에는 생일날임에도 그녀의 폭언을 계속되었고 팀원들이 모여 깜짝 서프라이즈 생일 파티를 해줄 때조차 그녀는 뒤에서 전화를 하며 딴청을 피웠다. 그렇게 악랄한 괴롭힘을 받았음에도 내 생일 이주 뒤에 있던 그녀의 생일을 모를 체할 수가 없었다. 카카오톡에서 제일 먼저 위에 알려주는 생일을 맞이하는 친구 목록에 딱하니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악마 같은 상사에게도 어쩔 수 없이 나는 생일 축하 기프티콘을 보내야 했다. 그러면 그녀도 나를 가엽게 여겨 좀 더 마음을 곱게 쓰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람이었다. 약자의 작은 염원을 담아 기프티콘과 함께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네자 그녀는 오히려 받지 싫은 내색을 하며 '아.. 안 줘도 되는데..'라며 불편해했다.


불편할 수밖에 없겠지. 지가 내 생일에 한 짓이 있는데. 자기가 생일날마저 폭언하며 괴롭힌 후배가 선물까지 주면 본인 생일을 축하해주면.


악마 같은 상사의 생일마저 축하해줘야 하는 것이 나 또한 돈이 아까웠지만 이마저도 안 하면 더 큰 분노의 화살을 맞을 것 같았다. 그렇게 카카오톡의 생일 공지로 나는 원하지 않는 사람의 생일을 마지못해 챙겨줄 수밖에 없었다.



점점 카카오톡에 뜨는 생일을 모른 체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카카오톡의 생일 알람을 보면서 몇 번 서로 챙겨주다 보면 뫼비우스의 때처럼 돌고 돈다. 심지어 얼굴 안 본 지 오래됐음에도 작년 내 생일을 챙김 받았다는 의무감에 상대의 생일을 챙겨주게 된다. 그리고 또 상대도 올해 내게 생일 축하를 받았으니 비슷한 금액대의 선물로 챙겨주는 것이다. 누가 먼저 끊어야 하나 눈치싸움으로 카카오톡으로 선물을 받고도 마음이 무겁다. 선물도 마음도 공짜가 아니라 내가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선물 받는 것들은 모두 기억해서 상대방의 생일에 보답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이렇게 카카오톡이 알려주는 생일은 우리에게 불필요한 의무감을 만들어줬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잊는 순간 얄미운 사람으로 전락하니 말이다. 생일이라는 경사를 챙기는 게 부담스럽게 느껴지자 나는 내 생일날 카카오톡 선물을 받지 않는 이상 지인들의 생일을 모른척하기 시작했다. 선물을 주고 신경 쓸 만큼 돈독한 사이가 아니라면 카톡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생일자 리스트를 못 본체 하였다. 그러고 나니 절친한 사이 혹은 내 생일날 축하를 해준 사람을 제외하고 카카오톡 생일선물을 챙겨야 할 리스트가 좀 더 가벼워졌다.



기대했던 생일 축하를 받지 못하면 실망하게 된다.

생일을 맞이하면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적어도 내가 올 한 해 챙겨주고 축하해준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연락이 올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막상 하루 종일 떠 있는 카카오톡의 생일인 친구 알람에도 연락이 없는 지인들이 있으면 괜히 마음속으로 실망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그 친구의 생일을 챙겨준 마음을 비교하며 기분이 상하고 만다. 카카오톡이 없던 시절에는 모를 수도 있고 깜박할 수도 있는 생일이지만 이렇게 카톡이 하루 종일 알려주는 생일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일까.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 안 챙겨주는 그 마음에 실망하게 된다. 아니 선물은 안 줘도 상관없는데 연락조차 없는 그 마음이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예상했던 축하인사, 예상치 못한 축하인사들 속에서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했지만 연락도 없는 친구를 기다리다 씁쓸하기도 한다.



선물 말고 연락만으로도 마음을 전해요.

올해 생일날 예상치 못한 분들께 카톡을 받았다. 1년 전에 함께 일했지만 지금은 함께 하지 않는 분들이 카카오톡에 뜬 생일을 보고 축하 카톡을 주신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분들의 축하 인사였기에 더 반가웠고 감사했다. 수많은 카톡 친구들이 매일같이 보이는 생일 알람 속에서 못 본체 지나갈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연락을 준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선물을 받지 않아도 진심으로 이렇게 연락 한번 나누면서 안부인사를 하게 되니 부담도 덜했다. 후에 내가 그분들의 생일자 알람이 떠도 부담 없이 연락하여 축하하고 안부를 물을 수 있으니 말이다. 선물보다 더 반가운 연락이었다.



돈을 쓰기 쉬워진 세상 : 마음은 돈이 아닌 정성으로 전한다.

손쉬운 카톡의 선물하기 기능 덕분에 고마운 마음, 축하하는 마음이 손쉽게 선물하며 그 선물의 크기를 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서로 주고받는 것이 때로는 부담으로 느껴진다. 순전히 축하하는 마음이지만 선물 없이 연락하기도 가벼워 보이니 괜히 상대의 생일에는 연락조차 피하게 된다. 또 괜히 챙겨주고도 빈정 상하기도 하니 돈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게 손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기억에 남는 따뜻한 축하는 정성이 아닐까 싶다. 12시까지 기다렸다 제일 먼저 축하해주고 싶었다는 그 마음, 우리의 친분을 되새기며 앞으로도 진심으로 응원한다는 장문의 카톡 말이다. 돈으로 표현할 수 없는 진심이 담긴 정성이야말로 진짜 잊지 못한 고마움으로 남는다.  


사실 카카오톡에 매일같이 뜨는 생일자를 보고도 기꺼이 카톡을 하며 인사를 전하는 것도 정성스러운 마음이다. 그 마음을 잊지 않고 앞으로는 나도 좀 더 마음을 정성으로 표현해야겠다. 의무감이 아닌 따듯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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