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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Nov 25. 2020

친분을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친구들도 무리로 다 함께 어울리기보다 1~2명씩 따로따로 만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친구가 많지 않다. 그나마 없는 친구들도 사회생활하면서 바쁘니 일 년에 한두 번 보기 일쑤였다. 그래도 나는 그 일 년의 한두 번 보는 친구들도 전혀 불편하지도 어색하지도 않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부터 , 고등학교 때부터, 그리고 대학교 때부터 10년 넘게 알고 지낸 친구들이니 일 년 정도 안 봐도 알고 지낸 그 오랜 시간이 우리들 사이의 공백을 메꿔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때로는 서로 알지 못하는 상황들이 우리를 그때와는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게 만들기도 했고 그때는 그게 중요하지 않았던 요소들이 지금은 우리 사이에 벽을 만드는 거 같았다. 시간의 공백이 오래전 친분으로 채워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그 공백이 커지는 게 두려웠다. 매일 보던 친구들을 일 년에 한 번 정도 보고 있는데 이마저도 노력하지 않으면 몇 년에 한 번, 그러다 나중에는 영영 보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을 사이가 될까 두려웠다.



일 년에 한 번은 봐야 한다는 나의 의무감은 그렇게라도 친구들과의 친분을 유지하고 싶은 노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일 년에 한 번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을 꼭 보려고 했다. 친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니깐.



몇 달 전 중학교 친구 두 명을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았다. 두 친구가 함께 자취를 하고 있었기에 내가 그들의 자취방에 일 년 만에 방문하였다. 오랜만에 본 친구들이었지만 우리들 사이의 공백을 메꾸려고 나는 그간 내게 있었던 희로애락을 떠들었다. 그리고 배달음식이 왔고 나도 내가 모르는 친구들의 근황이 궁금했고 듣고 싶었다. 그런데 한 친구가 TV를 켰다.


TV에 딱히 재밌는 드라마도 예능도 하지 않았기에 친구는 뉴스에 채널을 고정하였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대화거리는 뉴스가 되었다. 마치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공통분모가 없어 뉴스로 스몰토크를 주고받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배달이 많아지고 있는데 배달원이 얼마를 버는지,, 요즘은 배달은 걸어서 할 수 있대..

로또에 당첨된 사람이 얼마를 받는지,, 부럽다.. 나도 로또 좀 되고 싶다..


나는 친구들의 근황이 궁금했고 그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면 같이 위로해주고 편들어주고 싶었고 좋은 일이 있었다면 함께 축하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친구들은 자신들의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일상도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화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내게 있었던 재밌는 이야기를 꺼내놓아 순간 서로 재밌어해도 대화가 핑퐁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TV를 보며 나눌 스몰토크도 없어 대화가 필요 없는 보드게임을 했다.



그렇게 게임을 하고 나니 피곤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지금 이 친분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친구들이 굳이 물어보지 않는 나의 근황을 이야기하며, 가라앉은 분위기를 풀어보면 재밌는 이야기를 해가며, 관심도 없던 보드게임을 해가며 시간의 공백, 우리 사이의 공백을 억지로 채우고 있구나. 나는.



내가 황금 같은 주말에 왜 이러고 있지? 내게 전혀 유익하지도, 즐겁지도 않고 불편하기만 한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그래서 나는 다음날 약속을 핑계 삼아 집으로 가야겠다고 나왔다.



한 친구는 일 년 만에 봐서 3시간 만에 떠나는 나를 보며 아쉬워했다.

"오랜만에 보는데 금방 가서 아쉽다.. 우리 그럼 또 일 년 뒤에 보는 거야?.. 또 언제 보니"

집으로 홀로 돌아가는 나의 발걸음도 무거웠다. 지금껏 실감하지 못했던 친구들과 나 사이에 공백을 실감해서, 어느샌가 너무 멀어져 버린 친구들이 실감돼서 말이다.



오래 알고 지내면, 옛날에 각별한 사이였다면 시간이 지나도 각별한 거라고, 마음만은 가까울 거라고 생각했다. 다시 봐도 어색하지 않으니 여전히 가까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낯설지만 않은 사람이지 속 깊은 이야기, 서로의 진심을 말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옛날에 그랬다고 지금도 그럴 수 없었다. 15년의 시간은 우리가 생각보다 많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걸 알려주는 거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옛날의 친분, 알고 지낸 오랜 시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생각보다 나와 가깝게 지내지 않게  친구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래된 사이니깐 아주 가깝다고 착각하며 친분을 노력하고 있었다. 비단  친구뿐일까. 애정 없는 할머니, 명절 때만 보는 친척들..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봐야 하는 친척들 또한 나는 친분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살았다.


공감대는 없지만 또래인 사촌과 따로 만나 밥도 먹고 수다도 떨어야 하고 애정을 받지도 못했고 착관계가 전혀 없는 할머니를 수시로 찾아뵈며 손녀 노릇을 해야 했고 오래전에 알고 친했지만 지금은 멀어진  친구 들을 주기적으로 보며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피곤했다. 피곤한 일이지만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나를 잘 알지 못하고 나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친척이라고, 오래된 친구라고 친분을 노력하고 있었다. 전혀 내가 즐겁지도 않음에도.



그래서 이제는 얄팍한 우정, 무늬만 친척인 그들과의 친분을 노력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 시간에 나에게 더 집중하기로 했다.


이제야 내려놓을 관계가 무엇인지 보이는 것 같다. 쥐고 있는다고 다 친분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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