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을 준비하는 동안 내가 간절히 가고 싶은 회사의 면접 기회를 얻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때 마침 회사 동기와 이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00 회사에 면접을 보게 된 것은 말하였다.
"나 다음 주에 00 회사 면접 봐."
"나 거기 합격했었는데 아직도 뽑고 있구나."
"00 회사 합격했어?? 언제?"
"2월쯤에, 연봉협상에서 마음에 안 들어서 안 갔어. 이직하기 전에 승진하고 가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서"
"우와. 그럼 질문 뭐 나왔어? 면접 어땠어?
"면접 별거 없던데. 질문은 기억 잘 안나지~"
"그럼 연차 쓰고 면접 보러 간 거야?"
"아니 나 그냥 그 회사 담당자 미팅한다고 하고 잠깐 갔다 왔지~"
"면접 뭐뭐 나오는지 알려줘 봐~"
"네가 그 회사 00이라고 생각하면 뭐가 어려움일 거 같아? 그 관점에서 생각해봐."
내가 면접을 준비하는 회사에 동기도 이직 면접을 봤다고 하니 조력자를 얻은 것만 같았다. 회사에는 최대한 이직 준비하는 것을 들어내지 말라고 하지만 믿고 이야기한 보람이 있었다. 그 동기도 자신이 여러 군데 제안을 받았다고 말했고 나도 그 동기의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지켜줬다.
동기는 면접 질문을 어떻게 다 기억하냐고 말하면서도 내가 준비해야 할 포인트를 짚어주었기에 나는 붙게 되면 크게 한 턱 쏘겠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질문을 물어보는 내게 그는 그렇게 면접이 어렵지 않았다고 했고 별다른 준비도 안 했지만 붙었다고 했다.
그 말만 듣고 마음 놓고 1차 면접을 봤는데.. 예상보다 너무 어려운 면접이었다. 40분간 20개 이상 질문을 쉬지 않고 받았고 질문도 생각을 요하는 질문이 받았기에 나는 1차 면접에서 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1차 면접을 합격했고 좀 더 준비하여 2차 면접까지 합격한 후에 한 달 뒤에 최종면접을 보게 되었다.
최종면접은 까다롭게 3시간을 보고 영문이력서까지 준비해야 했기에 나는 합격했던 동기에게 다시 한번 연락을 했다.
"00 회사 최종면접 볼 때, 오빠도 3시간 봤어??"
"아니 왜? 3시간이래??"
"응 3시간 본다고 하고 외국인 면접관도 들어온다던데? 영문이력서도 보내달래.."
"쉽지 않구먼. 너네 팀장님도 00 회사 지원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아 그래? 이미 퇴사하셔서 잘 모르겠다.. 최종면접 어땠는지 좀 알려줘 봐~"
"너네 팀장님한테 물어봐 ㅋㅋ"
"동기가 편하지~외국인 면접관도 들어왔어?"
"나땐 아닌데. 다른 사람 소개해줘??ㅋㅋ"
"그럼 오빠는 최종면접 누가 봤어?? 최종면접 전에 면접 2번 봤어?"
"아니 한번 ㅋ 넌 두 번 봄? 나 지금 운전 중이라 연락이 잘 안되네"
" 알겠어! 난 두 번 봤어! 다음 주에 점심 한번 먹자! 내가 살게."
이미 면접을 경험했던 동기에게 최종면접 전에 더 많이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동기는 바빠 보였기에 큰 도움을 받지 못한 채로 나는 최종면접을 보게 되었다. 왠지 모르게 회피하는 동기를 보며 찜찜한 마음도 들었지만 휴가철이라 그러려니 하며 나 홀로 준비를 했다. 최종면접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고 나는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이미 동기는 붙었던 회사였기에 떨어지면 내가 부족한 것만 같다는 생각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런 내 속도 모르고 동기는 수시로 연락해서 그 회사 면접 결과를 물었다. 시도 때도 없이 싱숭생숭한 마음을 콕콕 찌르는 동기의 연락조차 불편하게 느껴졌다.
"언제 00 회사 가?"
"안가~오빠 면접 볼 때는 누가 면접 봤어? 000 면접관 들어왔어?"
"기억도 안나~ 왜??"
"너무 어려웠어 면접이. 분위기도 딱딱했고."
그 뒤에 나는 00 회사 탈락 소식을 듣고 다른 회사 면접을 보고 그렇게 퇴사를 확정하였다. 그 동기는 또다시 연락 와서 내게 향후 거취를 물었다.
"00 회사 가나요?"
"00 회사 안 가~ 딴 데 갑니다! 다음 주까지 나와!"
그런데 운 좋게 면접 봤던 00 회사에 다른 팀 지원한 게 최종 합격되어 결국 그토록 가고 싶었던 00 회사를 입사하게 되었다.
00 회사에 입사하고 얼마 있다가 이전 회사 동기들이 승진에서 떨어졌다는 소식도 들렸고 반대로 내가 00 회사로 이직했다는 것도 이전 회사에 소문이 났다. 그리고 그 동기도 내게 연락하여 자신의 상황을 한탄했다.
"네가 옳았다. 잘 탈출했어 ㅋㅋ"
"왜 또 무슨 일 있어?"
"그냥 여긴 아닌 것 같아..ㅎㅎ 너네 팀에 슬쩍 추천 정도 해줘"
"우리 팀은 이미 충원 끝나서 다른 팀으로 추천해야 할걸?"
"다른 팀 추천할만한 곳 알아봐 줘"
"그래 알겠어~ 이력서 줘~"
"진심이야! 다음 주에 회사 근처로 갈게!"
동기는 믿고 있었던 승진에서 떨어진 후 회사에 실망하고 이직을 다시 준비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구태여 떨어진 회사에 다시 오고 싶어 하는 동기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만나면 왜 떨어진 회사에 다시 오려는지 물어보려고 했다.
오랜만에 본 동기는 우리 회사 앞까지 왔다. 서로 안부를 묻고 근처 카페로 가면서 나는 궁금한 걸 물었다.
"여기는 붙었는데 안왔다며 또 쓰게?"
"아 사실 여기는 아니고 00 회사였어."
"여기라며??"
"여기 아니라 00,000,000 이렇게 3군데 제안받았었어."
아.. 어쩐지 면접 질문도 기억 안 나고 면접도 3시간도 안 보고 영문이력서도 안 썼다고 회피해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그동안 말한 그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니. 왜 거짓말을 한 거냐고 더 캐묻고 싶었지만 그토록 긴시간 거짓말을 당한 얼얼한 기분과 얼굴 보고 거짓말한 걸 물어보면 민망해할 동기 기분을 배려하여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어쨌든 여기까지 와서 도움을 요청하는 동기에게 나의 이력서를 보여주고 면접에 대해 상세히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지만 내 기분은 여전히 찜찜했다. 도대체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합격했다는 거짓말로 내게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다고. 이해할 수 없었다. 거짓말의 의도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그 동기가 했던 그 모든 말이 거짓말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이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지.
의도를 알지 못한 거짓말이라 여전히 찜찜했지만 그 동기는 내게 추천을 지속적으로 요청하며 연락했다. 그래서 나는 그 동기가 민망하지 않을 선에서 카톡으로 용기 내어 물어봤다. 물어보지 않고 그냥 두며 영원히 찜찜할 것 같았다.
"근데 오빠 왜 00 회사 붙었다고 뻥쳤어??ㅋㅋㅋ"
"붙었다고는 안 했어 ㅋㅋㅋ너한테도 00 회사 썼냐고 했지. 내가 했다고는 안 했었다. XX업계라고 했지. 거기가 00이라고는 안 함ㅋ"
"00 회사 붙었다고 했는데 ㅋㅋ 00 회사 가서 면접 봤다고 ㅋㅋ 뭐야 ㅋㅋㅋ"
"00 회사라고는 안 했다니깐ㅋㅋ 굳이 물어볼 때 웃으며 넘긴 거지."
"ㄱㄱ 만난다며 언제 만나냐?"
내가 장난스럽게 물었지만 그는 발뺌했고 오히려 화제를 돌렸다. 사실 그냥 허세 부리려고 붙었다고 한 거면 그냥 그러려니 지나가려고 했는데 끝까지 발뺌하는 그 동기를 보니 더 큰 실망감이 들었다. 솔직하게 말할 기회를 주었음에도 거짓말을 하는 동기를 보며 더 이상 도와줄 이유가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거짓말하는 사람을 내 주변에 두는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거짓말쟁이를 알고 지내는 게 무슨 득이 될까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 뒤에 그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그의 연락이 왔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짓말했으면 끝까지 숨기던가 본인이 필요할 때가 돼서야 민낯을 드러내는 동기가 괘씸했다. 만약 내가 이 회사에 오지 않았다면 그 동기는 끝까지 이 회사에 붙었던 척을 했었겠지. 한번 붙었다고 하니 그 뒤에도 계속 거짓말을 해야 하는데 거짓말을 할수록 들킬 거 같으니 내가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말도 돌렸던 거고 말이다.
그 동기가 내게 사기를 친 것도 아니니 어쩌면 사소한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차라리 돈으로 사기를 치거나 뭔가 이득을 취하려고 한 말이었다면 의심이라고 해볼 텐데 도무지 얻을 것도 없어 보이는 일을 꾸며내 거짓말을 친 게 더 무서웠다. 거짓말해서 얻을 게 없는 일을 거짓말하니 의심조차 안 하고 믿어버린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렇게까지 내게 거짓말한 이유가 무엇일지 말이다. 아마 그는 있어 보이려고(?) 거짓말을 했던 거 같다. 좋은 회사에 합격했지만 본인이 가지 않았다는 말로 스스로를 거짓 광고한 것이다. 그런데 그 거짓말은 결과적으로 그를 더 없어 보이게 만들었다.
잘나고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 거짓말을 쳤던 동기는 결국 내게 거짓말을 들켜놓고도 입사 추천을 구걸하는 비열하고 약한 사람이 되었다. 거짓말은 스스로 약점을 만드는 바보같은 짓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