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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May 16. 2021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죽을 수도 있다.

최근 매스컴에 안타까운 소식들이 많았다. 친구 만나러 나갔던 한 의대생이 한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고 23살 청년이 아르바이트하던 평택항에서 30톤이 넘는 컨테이너에 깔려 죽었다. 죽음이라는 게 멀게만 느껴지는 나이에 그저 평범한 시간을 보내던 그들에게 이게 왠 마른하늘에 날벼락인가.



이 뿐만 아니다. 최근 강원도 등산로에서 묻지마 살인으로 50대 여성이 영문도 모른 체 살인범의 손에 죽고 말았다. 그저 지인들과 등산을 갔던 것뿐인데 운 나쁘게 미친놈을 만난 것이다. 어릴 때는 마흔, 오십이라는 나이가 엄청 많은 나이처럼 느껴졌는데 서른이 되어 보니 아직 삶을 만끽하기에 너무나도 젊은 나이다. 지금껏 학생으로서, 자식으로서, 부모로서 소임을 어느 정도 마치고 자신의 삶을 즐길 여유가 생기는 나이이니 말이다. 그렇게 고단한 역할을 어느 정도 끝내고 이제야 느끼는 여유의 일상에 갑자기 나타난 미친놈에 인생이 끝나다니.  


마른하늘에 날벼락...


백세 시대라고 하는데 누군가의 삶은 생이 끝나기에 너무 젊은 날, 아주 예상치 못한 날 끝이 났다. 이런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고작 분노밖에 없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황망한 타인의 죽음은 우리에게 현타의 숙연함을 준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나도 운이 나빠서 죽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더럽게도 운이 나빠서 말도 안 되게 일어난 일이 우리 누군가에게도 일어날 수 있으니 말이다. 예상치 못한 불행도 예상치 못한 순간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게 세상사이니 말이다. 우리가 피한다고 피할 수도 없고 거부할 수 없는 일들이 누구에게나 운이 나쁘게 올 수 있기에 우리가 이런 안타까운 죽음에 더 공감하고 가슴 아파하는 게 아닌가.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로 행복을 미루지 말고 일상 속에서 내가 만들 수 있는 행복을 소소하게 느끼며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작은 행복을 모으면 언제가 제가 갑자기 죽거나 아파서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게 되더라도 조금은 덜 억울할 테니 말이다.



퇴근하고 영어수업을 듣는데 매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강사님은 가벼운 질문으로 수업을 시작한다.

"Let's share one thing that made you smile or feel happy recently."


여느 날과 다름없이 평범한 하루 끝에 듣는 수업이지만 이 질문을 듣는 순간 내가 최근에 기분 좋았던 순간을 되돌아보곤 한다. 별다른 이벤트가 없는 일상 같지만 생각해보면 나를 설레게 한 일들이 꼭 하나씩은 있었다.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잠시 잊었던 그 행복이 떠오르는 순간 다시 나는 행복한 순간을 살게 된다.


이번 주는 월급날이에요.

이번 주 주말은 여행을 가요.

이번 주에는 맛있는 식당을 예약했어요.


반복되는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주간, 월간 이벤트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를 즐겁게 만든다. 또 잊고 지냈던 감사할 일, 행복한 일을 다시금 곱씹게 만든다. 그러니 나를 웃게 만드는 것들을 한 번씩 꺼내 보는 것도 행복을 내 가까운 곳에 보관하는 방법이지 싶다.



그렇게 내 작은 일상의 이벤트를 생각하고 감사하는 일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습관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에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지만 반복되지 않아 종잡을 수 없는 일에는 불안감과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인간은 잠들고 싶지 않은 밤과 일어나기 싫은 아침 속에서 고군분투한다고 하지 않나. 일하기는 싫은데 일하지 않는 건 또 불안한 모순적인 마음속에서 균형을 찾지 않고 나만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지 않으면 어느 쪽에도 만족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된다.


생각보다 우리의 삶은 짧은데 늘 내가 살지 않는 이상만 꿈꾸고 현실에는 불만족한다면 죽을 때까지 불행을 토로하는 삶이 될지도 모른다.



특별한 이벤트 없이도 일상적이고 평범하지만 손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일들은 많다. 당연하게 보일 수 있지만 결코 당연한 선물이 아니다. 운이 나쁜 누군가가 갑자기 세상을 뜨거나 시한부의 삶을 살게 되는 것처럼 운이 좋아서 무탈하게도 일상을 만끽할 수 있는 거다. 그러니 순간순간에 내가 운이 좋다는 걸, 그러니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충분히 만끽하며 살아야 한다. 생각보다 우리의 삶은 짧고 갑자기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일상에서 이런 무탈한 하루에 대해 감사하는 시간을 꼭 가지려고 한다. 별생각 없이 한다면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아침에 몸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눈 뜰 수 있다는 거 자체가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이 오늘 하루도 무탈하게 보냈음을 만끽하는 시간을 가진다.


아침에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커피 마시면서 기분 좋아지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듣는 일,

저녁때 창문 밖으로 해가 지는 모습을 감상하면서 연인과 통화하는 일,

자기 전에 어머니와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


스무 살에 백혈병에 걸린 한 대학생은 아프기 시작해서야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가 삶을 대하는 자세도 아프기 전과 후가 달라졌다.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었어요. 당연한 건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나요. 이전에는 적당히 취직하고 결혼하고 마음 편히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전부라면 인생이 너무 아깝잖아요. 지금은 꿈이 있어요."



그러니 바꿀 수 없는 과거를 후회하면서, 예상할 수 없는 미래를 걱정하면서 현재를 좀먹지 말고 지나간 행복의 순간도 다가올 설렘의 순간도 곱씹으며 현재를 충분히 누리자. 우리 모두 언제 죽을지 모르니깐.


인간은 희소한 쪽에 가치를 두는 습성이 있다. 아무리 비싼 보석이라도 가는 곳마다 여기저기 널려 있다면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간이 영원히 계속된다고 착각하면 하루를 헛되이 보내기 십상이지만, 제한된 시간임을 기억하면 하루하루가 매우 귀중해진다.

 가족이나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처럼 의식하지 않으면 당연한 것처럼 흘러가버리는 시간들이 있다. 이러한 일상을 언제라도 잃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한층 각별해지는 법이다. 고대 로마인의 가르침 '메멘토 모리(반드시 죽는다는 걸 기억하라)'와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1년 후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中 / 시미켄 지음

행복의 원천은 좋은 일이 일어나는 크기나 빈도가 아니라 작은 행운도 감사하게 여기는 삶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예전에 집 근처에 맛있는 김밥집을 알게 되어 이 맛을 지인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날 만나는 두 친구에게 줄 김밥을 포장해서 가져갔다. 한 친구는 내가 선물한 김밥을 먹자마자 너무 행복해했다.


"너무 맛있다. 진짜 배고팠는데 고마워!! 이거 진짜 맛있다! 컵라면까지 같이 먹으면 환상이겠다. 이거 어디서 샀어? 매콤하고 진짜 맛있어!! 다른 분들도 이거 같이 드셔 보세요~"


그녀의 행복한 리액션은 나까지 기분 좋게 만들었다. 번거롭지만 김밥을 사 오길 잘했다는 뿌듯함도 들었다. 반면 다른 친구에게 똑같은 김밥을 기대하며 꼭 먹어보라고 권하자 그 친구는 먹어보고 시니컬하게 말했다.


"음 뭐 괜찮네. 근데 아까 그 친구는 너무 오버하네.. 그 정도는 아니고 맛있긴 해. 괜찮네."


뭔가 바라고 사 온 건 아니지만 번거롭지만 친구에게 맛있는 걸 나누고 싶은 내 노력이 허무해진 순간이었다.


누군가 맛있는 음식을 아무런 대가 없이 나누고자 했을 때 그 소소한 마음에도 행복함을 표현했던 친구는 언제 봐도 행복해 보였고 삶에 만족도도 높았다. 그러니 행복할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오지만 작은 행운을 보고 감사하며 행복할지 말지는 우리가 선택하는 게 아닐까.



하루는 영어로 present 이다. present 는 '하루'라는 뜻 말고도 '선물'이라는 뜻도 가진다. 오늘도 우리는 '하루'라는 선물이 받은 거다.


이제 운이 좋아서 받은 이 당연하지 않은 '하루'라는 선물을 기분좋게 열어보자. 뭐가 나오든 선물 받은 거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행불행은 조건이 아니다,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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