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한 개씩 스테이지를 넘어설 때면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고민이 들곤 한다. 대한민국 10대가 그러하듯 나도 고등학교 시절 꿈의 대학을 가면 인생이 끝일 거라 생각했다. 내 인생의 고생은 이게 마지막이고 이젠 꿈같은 날들만 가득한 곳이 대학이라는 환상에 차있었다. 그렇게 대학에 갔는데 입학한지 몇 달이 지나니 그 환상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이제는 어떤 밥벌이를 하고 살지가 고민이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찾은 길을 열심히 달려가 보면 어느새 또 다른 숙제를 받아 든 어른이 되었다. 이제 서른이 된 지금, 또다시 나는 왜 사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숙제 앞에 놓여있다.
싱글인 나는 지금 외벌이 가장으로 혼자 벌어 가족을 책임져야 하거나 맞벌이 워킹맘으로 내 시간 없이 일과 육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현재의 나는 젊음을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적당히 내 앞가림이나 하며 나 혼자 벌고 나 혼자 쓰면서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어쩌면 혼자 이렇게 사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결혼하여 어떤 책임과 의무 속에서 나를 잃어가는 것보다 능력만 있다면 혼자 사는게 현명한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드니 나는 내가 비혼에 맞는 사람인가 혼란도 들었다.
그럼 나는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평생 결혼하지 않고 혼자살면 행복할까? 그럼 결혼하면 행복할까?
사회초년생 시절에 프로젝트성 업무로 몇 달을 야근하며 일한 적이 있다. 눈 뜨면 출근하고 퇴근하면 눈 감는 생활이 반복되자 동연배 동료들과 이런 쳇바퀴같은 삶 속에서의 낙(즐거움)이 무엇인지 토로하며 이렇게 일만 하는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얘기한 적이 있다. 다들 연애조차 할 수 없이 바쁜 일상에 지쳐 활력을 잃어갔고 그 시기 나도 나의 '삶의 낙'이 무엇인지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였다. 그러니 내게는 결혼하지 않고 미친 듯이 일만 하는 삶도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일은 나를 잘 살게 만들어 줄 도구이고 수단이지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나서 직장에서 주변에 일만 하다가 결혼시기를 놓쳤거나 혹은 비혼을 추구하여 혼자사는 30대 후반~40대 초반의 선배들을 보았다. 적어도 내가 본 대부분의 선배들은 나이가 들수록 결혼을 간절히 희망하거나 포기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혼자가 된다는 건 두려운 일인거 같다. 나이가 들어 주변에 기혼자들이 늘어날수록 비혼주의자라도 연애를 해야 외로워보이지 않고 행복해보였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사랑에 빠지는 것도 젊을 때보다 쉽지 않으니 나이가 들수록 외로워질 걸 두려워하는거다. 그러니 삶에서 결혼은 필수가 아닐지 몰라도 사랑은 필수인거다. 사람이 사랑을 하지도 받지도 못하고 산다면 그보다 더 처량한건 없으니.
그렇다. 삶의 목적은 사랑이다. 우리는 모두 사랑하기 위해 사는 거다.
한번은 왜 이 험난한 세상에 자식을 낳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염병이 전세계를 강타하고 환경오염은 더 심해지고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진 현대시대에 자식을 낳는게 맞을지 고민이었다. 이런 시국에 태어난 아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사람들은 왜 구태여 고생을 하며 자식을 낳는걸까? 나이들어 자식이 없으면 외로우니 자식을 키우는 걸까? 자식을 키우는 과정에서 행복을 얻어 키우는 걸까?
나를 위한 밥 한 끼 제대로 먹을 시간 없다는 육아맘들의 한탄을 들으며 왜 그렇게 힘든 길(육아)을 가는지 고민하던 내 질문에 어느 정도 답을 찾았다. 어떻게 자기 자신만 알던 이기적인 인간이 자식을 낳는 순간 나 아닌 다른 생명을 위해 이타적으로 살 수 있는지 말이다.
내 결론은 어찌되었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위해, 자기가 행복해지기 위해 자식을 낳는거다. 그리고 자식을 낳은 부모는 자기가 낳은 자식이 행복해야 행복하다. 그러니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자식을 웃게 만들어야 하는게 부모인거다. 세상에 자식이 불행한데 부모만 행복할 수 없으니. 그렇게 행복한 자식을 보기 위해 부모가 세상의 그 어떤 고난도 감내하면서 살아가는게 아닐까. 이기적인 인간이 고생을 감내하면서까지 자식을 낳아 키우는 이유가 바로 그거다. 내 모든 사랑을 주려고.
아낌없이 내 사랑을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살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인생에서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많아질수록 삶은 더 풍요로워진다.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려고 일하고 그 존재들과 함께 행복하려고 사는거다. 사랑을 주려고 인간은 사는거다.
윤여정 배우님이 나오는 [죽여주는 여자(2016)]에서 자식도 부인도 잃고 홀로 늙어가는 노인 재우는 더이상 살 이유가 없다며 자살을 선택한다. 삶을 정리하기로 한 그는 이전에 성매매를 하며 알던 소영에게 수면제를 먹고 죽으려는 자신의 곁에 있어만 달라고 부탁한다.
"어제 밤에 집사람 제사를 지내는데. 새삼 혼자 남아있는 내 신세가 너무나 처량하고 비참하더라구. 무슨 미련으로 여태 이렇게 살아있는건지. 평소에 불쑥불쑥 마음을 먹어보기는 하는데 막상 저지르려다보니 덜컥 겁도 나고. 곁에 아무도 없니 나 혼자 죽을 생각을 하면 너무나 아득하고 무서워지더라구. 그냥 옆에 누군가 있어주기만 해도 내가 죽으면 편히 떠날 수 있을거 같아서."
사랑하는 존재 없이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아무런 기대도 즐거움도 없이 끝없는 지루한 터널을 걷는게 아닐까. 그렇게 사랑과 꿈을 잃는 순간 우리는 더이상 살 이유를 찾지 못한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은 지극히도 나약한 존재여서 절대 혼자서는 행복해질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될 뿐이다.
그런데 행복하려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워도 현실에서는 불행해보이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나 내가 자주 보는 실제 불륜 사례를 재현하는 '애로부부'와 현실 육아에 대해 솔루션을 내려주는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 감정이입되어 화가 나곤 한다. 그렇기에 과연 결혼과 출산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 맞나? 오히려 행복과 멀어질 수도 있지 않나라는 혼란이 왔다.
저런 놈이랑 어떻게 살아? 이혼해버리고 말지.
자식이 저렇게 말 안들으면 진짜 어디 내다 버릴 수도 없고 정말!!
혼자 그렇게 분노를 하고 나면 역시 혼자사는게 최고지라는 결론이 나곤 한다. 혼자 살면 적어도 가족 때문에 인생이 꼬인다는 리스크는 없지 않나? 행복하기 위해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도 전혀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죽지 못해 사는 불행하기만 한 현실 사례에 화가 나니 말이다.
그렇게 결국 혼자 살아야 하나 생각을 하며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았다. 한창 순진무구할 10살 꼬마는 칼을 들고 엄마를 위협하기도 하고 엄마의 몸은 10살 꼬마가 휘두르는 주먹에 멍이 들어있었다. 엄마는 살고 싶어 나왔다고 하였고 아이는 엄마의 노력에도 계속 엇나가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자기가 낳은 자식 때문에 죽고 싶을 정도라니.
10살 아이는 아침에 학교에 보내려는 엄마에게 악을 쓰며 욕을 하고, 있는 힘껏 주먹질을 하였다. 보는 사람에게마저 공포심을 주는 그 모습은 이들에게 일상이었다. 예민하고 공격적인 아이를 받아줘야 하는 엄마도 분노가 풀리지 않는 아이도 지쳐보였다. 힘들게 낳아 키워주는 엄마한테 저렇게 세상 모든 증오를 다 쏟아내는 듯한 아이를 보면 오히려 저런 자식 없이 사는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부모이기에 포기할수도 없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엄마의 모습에 사랑을 줄 자식이 있다는 게 마냥 행복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는 너랑 얘기해야 돼."
"내가 왜!"
"엄마의 소중한 아들이니깐."
"이게 뭐가 소중한 아들이야. 이게 뭐가 키우는 거야? 죽이는거지!"
"재원이가 이렇게 아픈거 싫어 엄마도. 재원이가 이렇게 엄마 때리려고 하는 것도 엄마 속상하다구"
"노트북 가져오면 부신다고 했잖아."
"너가 하고 싶은대로 다 할 수 없잖아. 재원이 엄마 아들인데 왜 엄마말 이렇게 안들을까? 아들이 말 안 들으면 엄마가 어떻게 살아?"
"안 살면 되지. 니가 죽어야 마음이 편하다고!"
"왜 그렇게 생각했어?"
"이렇게하고 어떻게 살아! 이게 키우는거야!"
세상 모진 말과 행동으로 엄마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고작 10살의 아들을 보며 엄마는 어떨 때는 죽고 싶은 마음도 든다고 한다. 그렇게 난폭한 아들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행동에도 엄마는 그저 묵묵히 기다려주고 품어주었다. 그렇게 몇개월의 치료 끝에 그 난폭했던 아이가 점차 개선되어가자 처음에 지푸라기라도 잡은 마음으로 나왔다는 엄마의 어두운 목소리도 얼굴도 한결 밝아졌다.
거칠게만 보였던 아이도 찬찬히 기다려주고 보듬어주니 부드럽고 온화한 속을 내어주었다. 그렇게 엄마가 아이가 어릴 때 잘 모르고 체벌을 하며 혼을 냈던 걸 뒤늦게 사과하자 아이는 엄마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괜찮아! 엄마들은 잘 모르고 그럴 수 있어."
아이의 엄마는 어린 시절 자기가 사랑을 받지 못해 아이에게 사랑을 충분히 주지 못한 것 같아 아이도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순간, 그들은 다시 행복한 가족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서로의 사랑을 의심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지옥을 살던 가족들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순간 다시 천국으로 향한다. 그러니 결혼과 육아 그 자체가 불행이 아닌 그 과정에 사랑이 없어지는 순간, 그래서 서로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순간 불행해지는거다.
서른이 되어 깨달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찾은 답은 결국 사랑이었다. 결혼을 하던 하지 않던 아이를 낳던 낳지 않던 우리의 삶에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공허하거나 불행해진다는 거다.
인생에 살 날이 하루 남았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할 것이다. 그리고 말할 거다. 정말 사랑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