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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Jul 13. 2021

친할수록 우리는 서운해진다.

인간관계에서 관계가 깊어질수록 서운함은 불가피한 감정이다. 부모-자식, 연인, 친구 등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관계들은 가까워질수록 상대에게 기대하게 된다.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혹은 우리는 이만큼 가까우니, 이만큼 함께 했으니 우리는 상대가 나에게 적어도 이 정도는 시간과 정성과 돈을 쏟을 거라고 기대한다. 그러다 내 기대치와 상대방의 표현(기준)이 다를 때 우리는 실망하고 만다. 그래서 사이가 친밀하여 기대가 높아지는 게 어쩌면 관계를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만 그 감정을 이성적으로 컨트롤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감정 속에서 우리의 관계도 변한다. 사소한 서운함때문에 가족처럼 친했다가도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도 하고 크게 가깝게 지내진 않았지만 내 기대 이상으로 나를 챙겨주는 친구와 오래가기도 한다. 인간사에 피할 수 없는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우리의 관계도마저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내가 느낀 서운함도 상대가 내게 느낀 서운함도 요리저리 풀어가며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최근 엄마가 이사를 해야 하는데 이모(친언니)에게 이사를 간다고 이야기하며 집을 알아보는 것을 도와주길 토로한 적이 있다. 반면, 이모는 손녀가 태어난 시기인지라 우리의 이사보다는 딸의 출산과 손녀의 탄생에 온 관심을 쏟고 있던 때였다. 그래서 엄마가 기대했던 만큼 이모는 엄마의 이사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아니 엄마의 이사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듯했다. 반면, 엄마는 그동안 이모에게 많이 의지하기도 했고 엄마도 이모를 많이 챙기기도 했던지라 엄마의 중요한 일에 무관심한 이모에게 단단히 서운해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사 가는 줄 뻔히 알면서 연락 한통 안 할 수 있어? 내가 정신없어서 이사 가는 것도 못 챙겨줬네 미안하다고 할 수도 있잖아! 내가 그동안 얼마나 챙겼는데. 이모부 아프실 때도 ~~숼라숼라~~.

이제 더 이상 나도 마음 쓰고 정 쏟으며 챙겨주지 않을 거야. 적당히 거리를 둘 거야. 더 이상 바라지도 챙기지도 않고 적당히 그냥 그렇게 거리 둘 거야"


그동안 엄마가 이모를 얼마나 특별하게 생각하여 지극정성으로 대했는지 엄마는 거의 10년 전 일까지 끄집어내며 내게 하소연하였다. 엄마에게 이사는 중요하고 큰 일이었기에 엄마는 이모에게 심리적으로나마 의지하고 싶었던 거다. 그러나 기대했던 만큼 엄마의 일에 관심도 갖지 않았던 이모와 이모부에게 서운함의 골은 꽤나 깊었다. 그래서 뒤늦게 이사소식을 듣고 이삿집에 놀러 온 이모를 보고도 엄마는 쌀쌀맞을 정도로 냉랭했다. 가족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기에 서운함도 곱절이 된 거다.


물론 그 이후에 엄마의 서운함을 눈치챈 이모가 적극적으로 이사 후에 집을 필요한 소품을 만들어주기도 하며 엄마의 서운함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이모와 엄마를 보면서 나도 중간에서 엄마의 서운함을 풀리게 하려고 감초같은 중간역할을 했다. 그 결과, 철옹성같던 엄마의 서운함도 사그라들었다.


"엄마~ 이모가 이렇게 신경쓰고 그러는데 엄마도 이쯤되면 이모의 사과를 받아줄 때 되지 않았어? 서운했던 건 서운했던거고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받아줘야지. 나한테도 엄마 왜 삐졌냐고 연락온다니깐. 이모 입장에서는 딸의 출산이라는 중요한 일이 있었고 아마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모도 더 신경쓰고 챙겼겠지. 안그래? 예전에 이모가 이렇게~~~저렇게~~~~ 챙겨줬던것도 생각해봐."


가까운 인간관계에 있어 서운함을 피할 수 없는 감정이다. 오히려 적당히 거리가 있었다면 느끼지 않을 감정이지만 서로를 특별히 여길수록 우리는 정성을 쏟고 상대에게 기대하게 된다. 그러니 내게 서운함을 느낀 상대의 감정에 공감해주고 이를 풀어주는 노력 또한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는 덕목일 거다. 관계에는 관심과 정성이 필요하다. 상대의 중요한 일도 내 일처럼 챙겨주고 신경 써주는 관심. 혹 상대가 내게 서운함을 느끼고 있다면 이를 풀어주려는 정성. 혹시 가까운 지인이 내게 서운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면 상대에 대한 관심을 말과 행동으로 정성스럽게 표현해보자. 말로 표현하지 않았던 누군가의 꽁꽁 얼었던 서운함 감정도 눈 녹듯 녹을 거다.



지난 내 생일에 기대했던 친한 친구에게 생일 축하 연락이 오지 않았다. 뭐 대단한 선물을 바라는 것도 아닌데…친한 친구 생일에 카톡 한 통도 어렵나?라고 생각하니 친구가 괘씸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친구에게 이런 서운함을 털어놓을 쿨함도 없었다. 꽁한 마음에 네 생일날 나도 똑같이 연락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동안 서로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생일 축하한다는 카톡 하나가 어렵나 뭐. 참내. 나도 연락 안 해.'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서운함을 쌓아둔 채 몇개월간 친구와 연락 없이 지내다가 문득 내가 그 친구에게 무엇을 해주었나 생각해보았다. 내 서운한 감정에서 친구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친구 입장에서 나는 어떤 친구인지 말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지금껏 나의 좋은 일을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며 축하해주던 친구가 내 생일에 연락 한통 없다는 것은 뭔가 내게 서운한 게 있거나 혹은 친구에게 연락할 기분이 들지 않을 만큼 속상한 일이 가득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서운함에서 벗어나 나는 친구에게 과연 어떤 친구였는지, 나를 객관적으로 돌이켜보았다.


오랜 친구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면 나는 아주 형편없는 친구였다. 친구가 내게 고민을 토로하면 나는 늘 훈계하듯 친구의 행동을 지적하며 그녀를 더 아프게 했다. 친구가 내게 바란 건 '그래도 괜찮아.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라는 위로였을텐데 말이다. 때로 내게 친구가 필요한 순간 그녀는 늘 용건 없이도 연락하거나 만나며 마치 나의 연인처럼 내가 외로움을 느낄 새 없이 나와 함께 해주었다. 반면 내게 그녀에게 친구가 필요한 순간 함께 해주었나 생각해보면 나는 늘 친구가 먼저 연락하게 만들었던 이기적이고 바쁜 친구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면서 친구가 네게 섭섭해서 연락을 안 한 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건 친구의 서운함을 담은 시그널?)


반면, 그녀의 지금까지 모습을 되돌아보면, 그녀는 내게 늘 뭔가 더 챙겨주고 싶어 하고 내가 어떤 상황이던 내 편에 서서 나를 옹호해주었다. 어쩌면 내가 친구에게 시간도 정성도 돈도 아끼는 모습이,, 그녀의 편이 아닌 중립적인 관점에서 평가하려는 모습이 그녀에게 차갑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내게 친구가 어떠했는지가 아니라 친구의 입장에 서서 내가 어떤 친구였는지 되돌아보니 연락이 없던 친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친구가 내게 무엇을 해줬냐가 아니라 내가 친구에게 지금까지 무엇을 해줬나, 어떤 친구였나 생각해보면 서운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친구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용기 내 친구에게 사과했다. 내가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전했다. 나의 진심이 그녀에게 닿아 쌓였던 서운함이 녹아내리길. 친구가 내게 했던 든든한 친구 역할을 이제는 내게 하기로 결심하며 말이다.


"잘 지내고 있어? 안 본 지 일 년은 넘은 거 같아.. 보고싶다! 생각해보면 난 너에게 아주 형편없는 친구였던 거 같아. 늘 네가 내게 고민이나 안 좋은 일을 털어놓으면 훈계하듯 말하며 너를 더 아프게 했던 거 같고.. 내게 네가 필요할 때 너는 늘 나와 함께 해줬는데 나는 네가 친구가 필요한 순간 함께 했나 생각하면 늘 네가 먼저 연락하게 만든 이기적인 친구였기도 했으니깐. 문득 이런 생각이 들면서 네가 내게 섭섭한 게 있겠구나 아니 섭섭할 수밖에 없는 친구였구나 내가 싶더라고. 나는 너를 떠올리면 늘 더 챙겨주고 싶어 하고 늘 내 입장에 1000% 공감해주던 너의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아 미안하기도 해. 내가 너 있는 곳으로 네가 필요한 순간에 함께 할게! 만나서 만난 거 사주고 술 마실래~!"


"낮술했어??ㅋㅋㅋㅋ

난 널 평생갈 칭구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연락 자주 못해도 항상 맘에 생각하고 있는 친구란다. 서운한거 그런거 없어 없어ㅋㅋㅋ 내가 성질이 좀 그렇잖아. 너 잘못 아냐아냐. 너도 나한테 서운한거 있음 툴툴 털어주라~ 그리고 우리 결혼해도 애 낳아도 연락 끊기지 말고 오래오래 가자~ 연락 자주 못하더라고 서로 서운해 하지 말고 변치만 말자!! 알았지?"


진심을 담은 내 연락에 친구는 오글거린다고 한참 웃다가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오랜만에 진솔한 연락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고 사소한 서운함 따위가 방해할 사이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의 서운함이라는 감정은 아마 인류 역사와 함께해온 본능적인 감정일지도 모른다. 이기적인 인간이 나의 기준에서 상대에 대한 기대치를 높일  우리의 감정은 반사신경처럼 서운해지니 말이다. 그리고  서운함이라는 감정은 어쩌면 죽을 때까지 평생 겪는 감정일거다. 그러니 서운함을 느낄 때마다  감정이 아닌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보자. 상대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해보고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면 좀더 성숙하게 서운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혹시 입장 바꿔 다시 생각해봐도 서운하다면 큰소리로 말해보자! 시원하게 감정을 풀어내놓는 것도 어쩌면 눈치없는 상대에게 서운함을 풀 기회를 줄 수 있는 대인배의 행보일 테니 말이다.


정말 서운하다~~~ 정말! 네가 어쩜 그럴 수 있니?!


서운함이 깊어질수록 속상한건 상대가 아니라 나일테니 서운함이라는 공을 상대에게 토스해버리자! 내 서운함을 듣고도 상대가 변함이 없다면 상대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서로 상처받지 않을 거리를 두는게 필요할지도 모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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