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작년 이맘때, 퇴사를 다짐하였다. 휴대폰 앨범에 작년 이맘때, 가고 싶었던 회사 채용공고를 캡처한 사진을 보며 벌써 일 년이나 지났구나를 실감했다. 그리고 그 1년 동안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정말 생각했던 대로 3개월 만에 목표로 삼고 가고 싶었던 회사로 이직에 성공한 것이다.
지난 1년간, 치열하게 이직 준비를 하고 새로운 조직에 열심히 적응하며 꽤나 열심히 살아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5년을 일한 회사와 아주 다른 분위기와 문화를 가진 회사였기에 내가 모르던 세계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와 회사에서 이런 것도 있다고? 좋다!'
'와 성과급도 많이 주네?'
'와 여기는 정말 수평적이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 대단하다!'
새로운 회사에서는 사소한 복지, 연봉, 분위기,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내게는 새로움이었다. 어쩌면 이전 직장에 대한 부정적인 점들에 질렸기에 새로운 회사가 더 빛나 보였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나는 새로운 직장생활에 만족하였고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도 이직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단순히 더 나은 조건의 직장인이 되었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이직은 내게 인생을 넓어주는 경험이었다.
이직을 하고 나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났다. 이전 직장생활 때까지는 그 작은 조직이, 회사가 나의 세계였다. 장거리 통근, 야근으로 워라밸이 무너졌기에 회사일을 제외하고 다른 걸 생각하기 어려웠기에 더더욱 나는 회사라는 우물에 갇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보이는 한계가 내 인생의 한계처럼 느껴졌다.
승진적체로 인해 과장 이상으로는 승직하기 어려운 회사였기에 내가 과장 이상의 연봉을 받는 것은 꿈일 것만 같았다. 예전에 한 팀장님이 내게 만년 대리로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조언했던 것처럼 그 회사에서 과장을 다는 것은 마치 임원을 다는 것처럼 희귀하고 대단한 일로 여겨졌다. 그렇기에 나 또한 나 스스로의 한계를 '대리 연봉'으로 설정했고 나는 회사에서 그 이상 버는 게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적당히 대리 월급 받으면서 살아도 되잖아~ 여자니깐 네가 혼자 쓰기 적지 않을 테니 그 정도 받으면서 적당히 스트레스받지 말고 속 편하게 회사 다녀."
연봉의 한계는 내가 회사에서 낼 수 있는 성과의 한계도 정해주었다. 내 몸값만큼은 이 회사에 기여해야 한다는 그 책임감으로 일하는 건데 내가 앞으로 회사에서 올라갈 수 있는 연봉의 한계가 여기까지라면, 나의 성과 또한 그 연봉 수준에서 멈추는 것이다. 누군가 열심히 일했는데 그가 만들어낸 성과는 보상은커녕 다음 해 회사에서 더 많은 업무와 책임만 부여된다면 우리는 성과를 내는 것에 대한 재미를 잃게 된다. 그렇게 오랜 승진적체와 연봉 동결로 대부분의 조직원들은 받는 만큼 일하는 것이 개인의 삶에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고 적당히 일하는 게 최고의 미덕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새로운 직장에서는 내 성과에 따라 성과급도 달라져서 내가 회사에서 받을 수 있는 돈은 이전 직장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연봉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받는 보상이 이전에 내가 느꼈던 한계를 뛰어 넘었듯 나의 성과에도 한계를 두지 않았다. 이직을 하지 않았다면 받을 수 없었을 성과급을 받았고 나도 스스로 더 높은 목표를 위해 달렸고 그 과정 또한 즐거웠다. 그렇게 나는 주도적으로 성장하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성장을 한다고 느끼는 순간 나는 또 다른 세계, 더 높은 세계를 궁금해졌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다른 세계로 혹은 더 높은 세계로 간다면 나는 또 내가 몰랐던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렇게 나 스스로 한계를 정하지 않고 노력하고 도전하면 더 좋은 다른 세계로 얼마든지 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예전 회사에 다닐 때, 이직을 해서 오신 분을 보면 나는 늘 예전 회사 거기는 어떠셨어요? 여기랑 비교하면 뭐가 달라요? 궁금증 가득한 눈으로 질문하곤 했다. 그렇게라도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다른 회사의 생생한 이야기를 알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기대에 찬 질문과는 달리 대답은 뜨뜨미지근했다.
"여기나 거기나 직장생활이 다 거기서 거기죠.. 똑같아요."
3개의 회사나 경험했는데 회사가 다 비슷하다고? 정말 이직을 해도 일하는 건 다 똑같은 건가? 의아아했다. 그러나 내가 이직해보니 우리는 우리가 다니는 회사에 따라 삶의 질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을 몸소 체감했다.
재택근무를 하는지 안 하는지
자율복장인지 비즈니스 캐주얼인지
자율출근제가 있는지 없는지
반차가 있는지 없는지
회사에 커피머신이 있는지 없는지
매년 연봉 상승률은 어떤지
성과 측정 기준은 어떻게 되는지
근무강도는 어떤지
수평적인지 수직적인지
등등
회사의 크고 작은 문화들은 하루의 1/3을 회사에서 보내는 우리의 삶에 긴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정장을 입고 매일 출근을 하는 직장인과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의 출퇴근 시간 피로도는 다를 거고
연차, 직급 상관없이 성과에 따른 성과급과 연봉 상승률이 정해지는 직장인과 연차에 따라 고정으로 부여되는 조직의 직장인의 마인드가 다를 거고
워라밸에 따라 가정에 충실할 수 있는 정도와 취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정도가 다를 거다.
그러니 직장생활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건 다 비슷한 문화의 회사를 경험했다는 뜻일 수도 있다.
혹시 지금의 회사가 나의 한계를 정해버리거나 나와 맞지 않는 문화나 체계가 있다면 더 나은 회사를 찾아 나의 세계를 넓혀보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이직을 하는 것도 이직 후에 만족스러운 직장생활을 하는 것도 쉽진 않다. (이직 후에도 만족하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데 이건 말그대로 운빨이니..) 그러나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는 건 그만큼 내게 다른 새로운 선택지도 얼마든지 있다는 열린 마음을 심어준다.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더 넓은 바다의 개구리가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