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잘한 점과 못한 점
나는 마냥 20대일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막내인 것에, 어린 나이라는 것에 익숙했다. 나이만 성인일 뿐이지 나는 20대의 내 자신이 늘 아가 같아 애틋했다. 아가 같은 20대 시절에는 훗날 내가 서른이 되면 주민등록상의 성인이 아닌 진짜 어른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런 어른의 모습은 내게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 아득한 미래는 현실로 빠르게 다가왔고 이제는 한국 나이로 30살이 되고도 7개월이 지났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스물아... 아니 서른이요.'라고 말했으니 아직도 나 자신이 서른이 되었다는 것을 가끔 까먹기도 한다. 익숙하지 않은 나이 서른이 되었다.
나이에 후진은 없으니 앞으로 한 10년간은 '서른 (몇) 살'로 시작할 거다. 그렇기에 이제는 다신 오지 않을 지난 내 20대를 되돌아보며 20대의 나와 이별식을 하려고 한다. 이렇게 서른인 내가 20대의 나를 되돌아보며 잘했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정리해보고 더 멋있는 30대를 그려볼 거다.
20대를 되돌아보면 후회되는 일보다는 잘했던 일들이 먼저 떠오른다. 20대의 내가 맡았던 역할을 모두 잘했다고 자부할 순 없지만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열심히 살았던 20대의 내가 생각한 20대에 잘한 일 Best 5를 뽑아보았다.
대입과 동시에 나는 아싸였다. 내가 아싸였던 가장 큰 이유는 술을 마시지 않아서였다고 생각한다. 신입생 환영회를 끝으로 나는 대학교에서 진창 술을 마시거나 밤새 유흥을 즐기는 일이 내 체질에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향도 성향이지만 무엇보다 나는 술맛을 몰랐다.(물론 지금도 와인을 제외한 술을 사서 마신 적이 거의 없다.) 단맛을 좋아했던 내게 술은 너무 쓴 음료였기에 맛이 없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술자리는 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과에서도 나를 보면 "혹시 전과하셨어요?"라고 물어볼 정도로 있는 듯 없는 듯한 학생이었다. 다 함께 하는 술자리를 즐기지 않아서 뭔가 내 인간관계가 폐쇄적인가 싶다가도 술을 마셔야 친분이 쌓이는 관계는 진짜 친한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후회는 없다. 오히려 관계에 집중하지 않고 내 미래를 준비하며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으니 말이다.
대학교 3학년이 되면서 뭔가 진지한 미래를 준비해야 했다. 4학년이 되는 1년 뒤에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3학년이라고 뭔가 딱히 명확하게 그려지는 건 전혀 없었다. 난생처음 겪는 20대의 자유에 취해 어버버 하는 사이에 어느새 대학 온 지 2년이 훌쩍 지나있었을 뿐이다. 1학년 때는 어영부영 교양과 전공기초를 들었고 2학년 때는 전공을 조금 더 깊이 있게 들어가면서 이게 내 길인가 방황하기 시작했으니 3학년 되니 진로계획이 원점으로 돌아간 듯했다. 시간을 흐르는데 나는 과연 사회에 나갈 만큼 성장해 있나를 생각해보면 아직 이제 막 23살이 된 어린애였다. 그래서 도망치듯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갔다.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선택한 이유는 그 당시 중국이 뜨고 있었으니 내가 중국 가서 중국어라도 배워두면 먹고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었다. 그리고 또 교환학생을 가기 물가가 저렴한 국가였고 교환학생 지원 허들도 높지 않았기에 현실적 도피처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시나 중국에 갔다가 해서 고작 6개월의 교환학생이 내게 중국어에 대한 역량을 쌓아주거나 중국에 대한 스펙을 쌓아준건 없다. 다만, 교환학생을 가면 한국에서의 대학생활보다 시간적으로 여유롭고 한국에서 하는 아르바이트, 전공수업, 동아리, 친구들 등등에서 떨어져 있으니 좀 더 새로운 환경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빈 시간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리해보았고 빈 시간을 활용하여 공모전에 참여하여 막연했던 진로에 한층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하면 아마 눈앞에 바쁘게 주어진 일들에만 집중하며 장기적인 나의 진로를 고민할 틈이 없었을 거다. 교환학생은 수업이나 과제가 한국처럼 빡빡하지 않아서 언제나 여유로웠다. 그리고 해외에서는 해외에 있다는 거 자체가 경험이고 새로움이었기에 그저 여행 다니며 놀거나 빈둥거려도 죄책감이 덜했다. 그렇기에 방황의 시작기에 해외에서 맘껏 여유를 가지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뭐 먹고살지' 고민했던 시간은 내게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그렇게 직장인이 되고 3년 차가 되자 또다시 나는 이 길이 나의 길은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일도 제대로 못해내고 연애도 못하고 있는 내 꼴이 한심했고 배움에 대한 열정도 사그라들었다. 자기혐오에 빠질 법한 방황의 시기에 나는 2주간 휴가를 내고 유럽여행을 떠났다. 유럽에 와서 보니 눈 뜨고 잠드는 그 모든 것이 새로웠다. 내가 몰랐던 세계를 경험하는 재미는 나를 설레게 만들었고 더 열심히 살아서 더 많은 세상을 만나고 싶다는 의욕도 샘솟았다. 그렇게 나는 나를 힘들게 하던 작은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해외여행을 통해 인상적이었던 사람, 문화, 음식을 보며 나는 이걸 좀 더 배워볼까라는 호기심은 내게 새로운 목표와 가치를 알려주었으니 말이다.
혼란 속에서 있을 때, 시간을 내 맘대로 돌릴 순 없지만 공간은 바꿀 수 있다. 그렇게 혼란의 공간이라도 벗어나면 시공간을 초월하게 된다. 그때야 보인다. 내 작은 우물 밖 세상에는 좋아하고 경험하고 배울 것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사회생활이 뭔지 몰랐던 코흘리개 25살이었던 나는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다. 아는 것도 잘하는 것도 몰랐던 나는 첫 사회생활에서 눈물 콧물 빼며 나를 갈아 넣으며 일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그래도 5년을 버텨냈고 알게 모르게 산전수전 공중전의 첩첩 산경 속에서 배운 일들은 좀 더 단단한 나를 만들어주었다. 그렇게 그간 겪은 고난이 또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 나는 이직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단 한순간도 안주할 수 없었다. 입사하고 1년마다 발령 났기에 나는 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짧은 시간 안에 적응하고 성과를 내야 했기에 언제나 내 삶의 80%는 회사였다. 그럼에도 그때의 고된 시간이 지금의 여유를 만들어준 거 같아 가장 잘한 일이라고 손꼽는다.
잘하던 못하던 뭐든 끝까지 열심히 해보면 남는 게 있다. 대충 해서는 생기지 않는 굳은살들이 내 안에 박혀 더 단단하게 일하는 멘탈과 태도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아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는 것 같을 때 포기하지 않고 순수하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보니 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몸치였고 운동을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운동은 아예 하지 않고 살았다. 내가 배워야 하는 수많은 일들 중에 운동은 늘 우선순위에 밀렸다. 그래서 매년 건강검진을 위한 문진표를 작성할 때, '땀나는 운동을 일주일에 몇 번 몇 분 하시나요?'라는 질문에 늘 수줍게 0을 적어야 했다. 그럼에도 늘 새해 계획에는 '헬스 주 3회', '수영 배우기', '요가 배우기' 등의 다짐은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큰 맘먹고 제대로 운동을 배우기로 했다. 거금을 들여 필라테스 1년 회원권을 결제한 것이다. 역시 돈을 써야 사람이 움직인다..ㅎㅎ
쉽게 사그라들 수 있는 다짐이었음에도 소중한 내 돈이 아까워서 나는 매주 필라테스를 하게 되었다. '이번 수업 안 가면 내가 얼마를 버리는 거지?'라고 생각하면 정신이 바짝 들어 게으름이라는 친구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아도 냉큼 움직이게 된다. 물론 그러다 보니 운동에 대한 목표의식은 크지 않아 정신은 딴 데 두고 몸만 데리고 가서 어설프게 움직이다 오기도 했지만.. 어찌 되었건 한 번씩 센터에 가서 운동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서면 내 육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어깨가 말렸군.' '뱃살이 나왔군.' '어머! 나 등도 살쪘네?' 이렇게 레깅스를 입고 내 몸을 바라보면 개선할 점이 보이니 그것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되곤 했다. 개선할 점이 보이니 운동의 목표가 생기곤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몸치가 1년간 필라테스를 하고 나니 아주 잘하진 않아도 기본적인 스트레칭, 호흡법, 운동방법은 배울 수 있었다. 돈 내고 운동을 배웠다고 원래 0점에서 100점이 되지 않아도 0에서 30점은 된 나의 운동능력이 스스로 대견하여 1년 더 거금을 들여 필라테스를 또다시 결제하였다. 복근이 생기거나 살이 빠지는 등의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지만 뻣뻣했던 내몸이 자연스럽게 스트레칭하는 일상의 변화만으로도 만족스럽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라 잠시 쉬고 있지만 한 번씩 집에서 요가매트를 깔고 그간 배운 필라테스 동작을 나 홀로 하고 있을 때면 헛돈 쓰지 않았다는 뿌듯함이 든다.
쉬는 날,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늘 혼자 서점 가서 책을 읽고 오곤 했다. 나 홀로 서점을 가면 내가 가고 싶을 때 가서 내가 책을 읽고 싶은 만큼 머무를 수 있다. 다른 친구와 가서 서로 다른 타이밍을 맞출 필요가 없기에 나는 나 홀로 서점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내가 몰랐던 분야, 몰랐던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책은 내게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에 작은 창문 같았다.
그렇게 책을 읽기만 하다가 3년 전부터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몇 번 쓰면서 동료들에게 보여주는데 재밌다고 호응해주길래 브런치에도 입문했다.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저 내가 읽을 책과 내 생각과 감정을 남기고 싶었다. 작가라는 호칭이 민망할 정도로 그저 나를 위한 글쓰기를 하는데 이를 보고 독자분들도 공감해주시니 더 많이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도 생겼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시간이 생기면 책을 읽고 글을 쓸 생각에 설렌다.
온전히 나에 집중하는 취미생활을 찾아서 삶이 풍요로워졌다. 관심 가는 부분이 생기면 늘 책으로 먼저 찾아보고 어떤 일이 생기면 글로 적어야지라는 생각이 드니 일상의 크고 작은 관심과 경험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게 되었다.
20대의 나를 되돌아보니 30대의 나는 어떤 일을 하고 더 성장하며 살지 기대된다. 지금보다 열린 마음으로 더 많이 듣고 읽고 쓰며 성장하고 싶다. 나의 진짜 시간은 30대부터 시작할 테니깐!
여러분의 20대는 어떠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