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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Aug 03. 2021

서른이 되고 보니 20대의 내가 못했던 것 BEST 5

20대의 잘한 점과 못한 점

올해 서른, 여전히 젊은 나이지만 마냥 어린 나이가 아닌 30줄에 들어섰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나의 20대가 끝이 났고 어느새 내가 모르는 아이돌들이 늘어났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알았던 것들이 이제는 노력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새삼 내가 마냥 젊지 않다는 것을 그렇게 느끼고 있다.



사실 뭐 20살에서 갑자기 30살이 된 것도 아니고 21, 22, 23,... 28, 29 이렇게 매년 야금야금 나이를 먹었기에 서른이 된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건 없었다. 다만, 막상 이제 서른이라고 하니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이랬다면 좋았을 걸이라는 후회들이 들곤 한다. 그때부터 그걸 꾸준히 했으면 , 그때 그걸 알았다면 지금쯤이면 어땠을까 하는 반성 말이다. 만약 인생의 선배가 옆에서 그 당시에 알려줬다면 내가 지금보다 빠르게 알 수 있었을까? 아마 직접 몸소 경험하지 않아서 옆에서 백날 말해줬다 한들 변하지 못했을 거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앞으로는 20대 때 잘못한 것들을 30대에는 채워나가려고 한다.



1) 돈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다.

일찍이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그에 비해 저축을 강도 있게 하지 못했다. 흔한 재테크 책에서 말하는 월급의 70~80%를 모아야 한다는 말에도 내 소비규모로는 도저히 무리였다.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신분이 바뀌면서 아낌없이 돈을 쓰는 지출습관을 한순간에 변화시키는 데에는 나만의 돈을 모아야 하는 목표가 필요했다. 그러나 내게 돈을 모아야 하는 목표, 가령 내 집 마련, 결혼자금 등은 너무 먼 미래 같았다. 그나마 엄마의 반강요로 월급의 대략 절반 정도는 뒤늦게 적금으로 들었지만 도대체 내가 왜 돈을 모아야 하는지 스스로 공감하지 못했기에 적금을 드는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월급과 소비는 그대로인데, 저축이 커지니 매달 카드대금 납부일이 오면 여러 장의 카드에서 빠져나갈 카드대금, 보험비, 적금을 계산하며 부족한 돈을 어디서 채워야 하나 골머리를 앓았다. 행여나 내가 적금을 한 달이라도 채우지 못할까 봐 엄마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했기에 적금을 연체시킬 수도 없었다. 억지로 적금을 붓는 동안 나는 늘 돈에 허덕였다. 그래서 좌담회 알바를 시도해보거나 내게 있던 상품권들을 중고 거래하면서 푼돈이라도 모아서 카드대금을 메꾸려고 했다. 즉, 소비를 줄일 노력은 크게 하지 못했던 거다. 소비는 저축보다 내게 더 즉각적인 행복을 주었으니...


그렇게 소비요정 직장인에게는 매달 월급이 들어와 곳간이 차면 넉넉하진 인심을 쓰곤 했다. 인심은 후해졌고 통장은 텅텅 비어갔다. 그럼에도 내게 돈을 모아야 할 이유를 알려주는 기회는 몇 번 있었을 거다. 사회초년생 시절, 내가 모은 돈으로는 보증금이 부족했기에 목돈의 필요성을 몸소 체감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게 불리한, 내가 무지한 목돈의 세계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걸 알려면 내가 변해야 하는데 그게 두려웠을 거다.


그러니 그때 내게는 돈을 모아야 하는 자발적이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단순히 목돈이 필요하다는 목표 말고 2년 뒤 5천 전세금 만들기, 5년 안에 1억 만들기 등등.. 마치 게임을 하듯 돈을 모으는 재미를 알아갔다면 소비의 고리를 어렵지 않게 끊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는 나만의 재무 목표가 없었고 엄마에 의해 반강제로 돈을 모았기에 돈을 모아도 돈을 모으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제야 재테크 개념이 생기고 돈의 목표가 생기니 월급의 80%를 목표로 저축하면서 과거의 나를 반성하고 있다. 스스로 깨우치고 재테크 공부를 하면서 내 눈으로 돈이 얼마나 모였고 얼마나 내가 벌고 있는지를 보는데 이것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겠다는 후회는 수없이 많이 했지만 그런 반성이 지금의 고강도 저축을 하는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속은 조금 쓰리지만..(아고.. 내 돈 다 어디 갔니)


2) 꾸준히 어학공부를 이어나가지 않은 것

대학시절에는 영어공부를 억지로라도 해왔지만 직장인이 되고부터는 영어공부를 해야 할 동기부여가 사라졌다. 업무상 영어를 쓰지 않았으니 회화를 공부해도 당장 긴장감 넘치게 몰입하지 않았다. 살짝 몇 개월 껄떡거리고 다시금 손을 놓기 일 수였다.


그러다 사내 이동을 지원하며 면접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직무가 바잉 업무를 해서 해외 거래처와 소통할 일이 많았다. 면접관은 내게 "영어를 얼마나 해요?"라고 물어봤는데 나는 거기서 당황했다. 지금껏 손 놓고 있었기에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다. "업무상 피해가 없을 만큼 합니다."라고 아주 두리뭉실하게 말했지만 나의 애매모호한 대답에 그들은 확신을 잃은 눈빛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 사내 이동의 기회는 외국어에 능통한 다른 동료에게 돌아갔다.


업무상 영어를 쓰지 않으니, 당장 영어가 필요하지 않다고.. 안일하게 생각해왔다. 영어를 잘하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이직을 준비하면서 한 외국계 기업에서 내가 하는 직무의 포지션 팀장 레벨 면접을 본 적이 있다. 나의 이력서를 흥미롭게 본 인사담당자는 원하는 연차보다는 낮았지만 나를 꼭 만나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나는 좀 더 열정적으로 면접에 임했고 인사담당자도 회사의 연봉과 복지를 나열하며 어필하였다.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날 뻔했던 면접은 "본사가 스위스여서 영어로 회의 가능하신가요?"라는 질문에서 좌초되고 말았다.. 자신만만하던 나는 마지막 질문에 꼬리를 내렸다. "아. 영어로 회의를 이끌 정도의 수준은 되지 못합니다. 상급 영어가 필수 역량이라면 저는 적합하지 않을 거 같아요."


당장 영어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더 넓은 우물로 나아갈 때 영어는 큰 무기가 되어준다. 내가 갈 수 있는 우물의 선택지를 넓어주고 더 높게 올라가는 지렛대가 되기도 한다. 영어 때문에 눈앞에서 기회를 놓친 후에야 뼈저리게 영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어학의 왕도인 '시간'을 반드시 투자해야 영어를 잘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늘 바쁘다는 핑계로 더 쌓아야, 더 쌓고 싶었던 어학 능력을 미루고만 있었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시간이 아니라 구체적인 목표가 부족했지만 말이다. 이제야 영어공부를 차근차근 시작하면서 좀 더 젊었을 때 꾸준히 영어공부를 했으면 어땠을까 후회가 남는다. 마흔에도 후회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이제야 영어를 좀 더 중요하게 공부해보려고 한다.


3) 어제의 나와 비교하지 않고 남들과 비교하였다.

내 전공은 영문학이다. 그렇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영어를 못하는 영문학과 출신이다. 대학교 2학년 때, 일찍이 나는 전공으로 먹고살 수 없음을 결론 내렸다. 이미 오랜 해외생활로 완성된 영어실력을 가지고 있는 동기들에게 게임이 되지 않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었기에 도망갔다. 그래서 영어를 공부할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며 내가 먹고살 길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이제는 먹고살 길은 있는데 다시 전공이 발목이 잡혔다. 20대 내내 나는 영문과지만 영어를 자신 있게 하지 못했기에 언제나 전공을 말하기 껄끄러운 콤플렉스였다. 더 늦기 전에 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늘 영어를 잘하는 사람에 대한 선망이 있었다.


남과 비교하여 포기했던 영어공부를 어제의 나와 비교하여 이어나갔다면 지금쯤 대학시절의 나보다 더 영어를 잘하고 있을 텐데 늦은 후회가 들었다. 지난 후회는 의미가 없지만 그 후회를 찬찬히 바라보면서 나의 '비교' 기질을 보게 되었다. 나는 늘 남들보다 내가 잘하냐 못하냐를 비교해왔다. 그리고 나의 이런 남과 비교하는 성향은 언제나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남들과의 비교는 결코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SNS를 통해 손쉽게 타인의 인생을 쉽게 구경할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 늘 자랑거리를 중심으로 나를 표현한다. 그렇기에 나는 늘 나보다 좋은 회사, 더 멋진 능력, 더 멋진 삶을 뽐내는 남들을 질투했다. 그리고 그 질투는 막상 현상을 바꾸기에는 너무나 야비한 감정이어서 혼자 방구석에 누워서 질투와 폄하로 끝이 난다.


비교는 때로는 경쟁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전투력을 가지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 아무런 경쟁심과 전투력이 없이 무심코 보는 수많은 타인의 피드(하이라이트)는 내게 불쾌한 질투심으로만 끝이 난다. 그렇게 나는 늘 타인과 비교하면서 어쩌면 더 낮게 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 유튜버는 자신이 친구들에게 가장 질투 나는 부분이 무엇인지 자신의 감정을 읽고 그 질투 나는 요소를 가진 사람이 되자는 목표를 삼았다고 한다. 질투는 욕망이니 나의 감정을 통해 나의 깊이 있는 욕망을 읽는 것이다. 인간에서 비교와 질투는 어찌할 수 없는 감정일 거다. 그 감정을 내게 유익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우쳤다.


'나는 똑똑한 사람에게 질투하기에 스스로 똑똑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읽고 공부하려고 한다.'



4)  가족에게 내 감정대로 말하고 행동했다.

나는 감정적인 사람으로 감정 기복도 심하다. 특히나 혈기왕성한 20대의 시절, 나는 늘 내 감정대로 행동하며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상처되는 말을 내뱉곤 했다. 나의 부족함에는 관대하면서 가족들의 부족함에는 날을 세웠다.


가족과 갈등을 겪을 때면, 쉽게 마음을 풀지 않았다. 내가 부족한 점이 있으면 부모님 탓을 하며 회피했다. 내가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못난 내 감정과 회피 성향이 늘 가족들의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타인에게는 친절하고 때로는 너그러우면서 가족에게는 내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들이 사랑하는 나는 그 어떤 행동에도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나는 내 맘대로 감정을 표출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가족의 사랑을 볼모로 행동하는 나는 이기적인 아이였다.


"아빠 때문에 내가 ~~~ 된 거야!"

"엄마는 왜 ~~~~ 하는 거야!"


늘 내 입장만 이해받길 원했다. 가족들의 입장에는 공감하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후에 그 갈등과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부단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가족의 마음에 상처를 남긴 내 20대는 돌이켜보면 내게도 큰 상처를 남겼다. 내가 그렇게 가슴의 비수를 꽂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족이 있다면 그건 오로지 나의 죄책감으로만 남으니깐. 좀 더 너그러웠다면 어땠을까.


충분히 반성해도 이미 늦을 때가 있다.   



5)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정의 내리고 조언하는 이들에게 아무 말하지 못한 것

가족에게는 쉽게 화를 냈지만 막상 나는 정말 화내야 할 곳에서는 화내지 못했다. 날 잘 아는 척하는 친구나 상사, 직장동료들의 평가에는 흔들렸다. '내가 정말 이런 사람인가?' '내가 정말 이게 안 맞는 사람인가?' 조언인 듯 나를 정의 내리는 타인의 말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나는 그들이 나를 생각해서 해준 말이니 그들을 원망하기보다 그들이 정의 내린 나를 원망했다.


"너는 이게 안 맞아. 저렇게 해야 해."

"너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왜 이것도 못할까.'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일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건 조언이 아니었다.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판단할 문제에 선을 넘는 무례한 행동이었다. 이렇게 어디 가나 아는 체하며 정의 내리길 좋아하는 오지라퍼는 있다. 그런데 사실 그런 오지라퍼의 특징은 막상 자기 앞가림은 못한다는 거다. 자기 앞가림을 못하면서 낮아진 자존감을 타인에 대한 조언과 오지랖으로 채우는 것이다. 진짜 잘난 사람들은 자기 일하느라 남에게 관심도 없고 쉽게 남을 보고 평가하거나 정의 내리지 않는다. 그들은 본인이 완벽히 모든 걸 다 알지 못한다는 겸손을 가지고 내가 모르는 타인의 모습이 있음을 알고 배려한다. 나는 자존감 낮은 오지라퍼들이 상처 주는 의미 없는 말이 진짜 객관적인 시선인 줄 착각하며 나를 몰아세웠다. 굳이 그런 사람들 말을 주의 깊게 들을 필요도 없고, 흔들릴 필요도, 상처 받을 필요도 없었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냐?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오만한 오지라퍼에게 당당하게 말해줄 거다.

"너나 잘하세요."



갓 신입사원이 되었을 때, 상사가 1년 차 직원들을 모아 두고 혹시 대학생활을 되돌아봤을 때 후회는 게 있냐고 물어보는 스몰토크 시간이 있었다.


 동기는 '공대를 갈걸' 이런 후회를 한다고 했다. 밥벌이에 대한 후회였다. 반면, 갓 신입사원이 된 나는 당장 취업이라는 큰 숙제를 해결했다는 만족감에 취해있었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대학시절을 되돌아보았을  딱히 후회되는 기억이 없었다. 그때그때 최선을 선택을 하였다고 생각했으니. 그런데 서른이 되어 20대를 회고해보면 후회되는 일들이 많다. 그때 나는 눈앞에 급박한 일을 해치우느라 장기적인 목표나 계획이 없었다.


당장 눈앞에 취업을 목표로 삼았을 뿐 진정한 인생의 목적이나 거대한 꿈, 인생의 방향을 고민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직장인이 돼서도 2차 사춘기를 겪으며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안해했다. 20대에는 그저 미래의 생존을 넘어 더 큰 인생관을 그려야 했다. 인생에서 어떤 가치를 우선순위에 둘지, 왜 그게 내게 중요한 가치인지,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지.. 이런 철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고는 결국에는 우리 앞에 놓은 수많은 현실적인 난관을 풀어주는 힘이 될 거다. 그러니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 당장 급하지 않더라도 중요한 일을 찾아내서 꾸준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후회 없는 20대일 거다.


늦었지만 지난 20대에 내가 잘못한 게 무엇인지 이제야 아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의 20대에 가장 후회되는 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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