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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Jul 21. 2021

일잘러가 투덜거리는 방법

최근 갑자기 새로운 업무에 투입되었다. 우리 팀에서 나를 포함하여 6명이 특별히? 착출 되어 조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업무에 단기 지원으로 파병된 것이다. 처음에는 새로운 업무를 경험한다는 설렘 반,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반이었다. 그러나 파병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새로운 업무에 대한 설렘은 불만으로 변질되었다.


'아니 이거 너무 과한 목표 아닌가?'

'아니 이거 새로 온 우리들에게 너무 불리한 거 상황 아닌가?'

'아니 이거 합리적으로 업무가 배분된 게 맞아?'


며칠간 새로운 업무를 깔작거리면서 왠지 내게 불리한 상황처럼 보였기에 내가 잘 해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커졌다. 그래서 1차원적인 불만들도 내 안에서 꿈틀거렸다. 어쩌면 그때 나는 내 능력을 믿지 못하였기에 환경을 탓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 혼자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힘이 없기에 함께 파병 온 동료들과 입을 맞추고 싶었다.


'다들 이거 보셨나요?'

'이거 항의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거 너무 어려울 것 같지 않아요?'


사실 그 업무를 제대로 해보지도 않은 채 나는 불만을 쌓고 있었다. 어쩌면 제대로 해보지 않아서 두려움이 더 컸고 그에 따라 불만도 커졌던 거 같다. 그러나 나의 불만과 달리 다른 유능한 팀원들은 꽤나 성실하게 새로운 업무를 파악하고 성과를 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도 대세를 따라 자연스레 불만을 내려놓고 잠자코 업무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얼마 안가 성과측정에 대한 안내가 내려오면서 새로 온 우리는 업무의 방향을 이렇게 가져가도 되냐 혼란스러움에 맞닥뜨렸다. 그걸 보고 내 안에 불만이 또다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거봐.. 아 이상해 이 업무..'

"이거 우리 항의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가장 성과 좋은 일잘러가 이런 거 물어봐주심 안 되나요?ㅎㅎ"


회사에서 가장 말이 잘 먹히는 사람은 회사에 가장 기여하고 있는 일잘러라고 생각했기에 우리 중에 성과가 가장 좋은 동료에서 칼자루를 넘겼다. 그가 나서서 우리의 어려운 점을 좀 대변해달라고 말이다.


"저는 이거 최대한 2주 동안 최선을 다해서 해보고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한 다음에도 성과 수치가 크게 변동이 없으면 말씀드리려고요."


 말을 듣자마자 아차.. 싶었다. 해보지도 않고 불만을 토로했던 나와 달리 일을 잘하는 동료는 최선을 다해  후에도 문제가 그대로라면 그때 자신이  액션에 대한 근거와 데이터를 토대로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아무런 불평불만 혼란도 내색하지 않은  정말 미친듯이 최선을 다해 일했다. 그리고 그가 최선을 다해 일한 1주일 만에 아웃풋은 눈에 띄게 보였다.


그런 그를 보면서 나 또한 불평불만에 사로잡혀 멈춰 서있을 수 없었다. 주어진 업무에 집중했고 그 결과 내가 가진 불평불만은 무의미한 거였고 실제로 나 또한 어렵지 않게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괜히 해보지도 전에 낯선 업무에 겁먹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했던 거다. 그제야 나는 처음 업무를 안내받았을 때 내가 느낀 불만과 불평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지 않길 잘했다는 안도감도 들었다. 해보기도 전에 하는 불평과 불만은 상황을 바꿀 힘도 없을뿐더러 내 힘마저 뺏아가 버리니 말이다. 사실 막상 일에 집중해서 해보니 혼란스럽게 느껴졌던 부분도 명확해졌다. 어쩌면 우리는 제대로 해보지 않아서 두렵고 혼란스러웠던 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회사에서 고참으로 계셨던 팀장님은 만년과장으로 소싯적 열정을 잃은 채 회사를 다니고 계셨다. 그는 회사의 달라진 방향이나 업무에 대해 비판적으로 얘기해도 회사에서는 들어주지 않으니 그저 입 닫고 의욕 없이 회사에 다니게 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도 회사에 '이건 문제다, 고쳐야 한다'라고 백날 말했는데 아무리 말해도 회사가 들을 생각을 안 해. 그리고 이런 비판적인 의견도 불평, 불만한다고 여겨버리는 거지. 그러니깐 나도 그냥 말 안 해. 입을 꾹 닫아버리는 거지. 그러던가 말던가."


사회초년생의 나이였지만 그때 그 팀장님이 꽤나 모든 일에 불만을 표출하셨기에 그의 말은 내게 인상적이었다. 더 이상 그는 매사에 불평, 불만을 회사에 말하지 않았지만 그 불평, 불만 가득한 마음은 그의 태도에서도 느껴졌다. 마치 반항아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모든 일을 밑에 직원들에게 넘겨버렸으니 말이다.


이제서야 보면 그의 의견 표출 방법이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변화에 겁먹고 불평한 건 아닌지 말이다. 어제의 내가 그랬듯이.. 그리고 불완전한 회사를 탓하며 스스로를 갈아먹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회사에서 타의적으로 업무가 변경된 상황에서 불만이나 혼란이 아예 없는 사람은 없을 거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이지 새로운 업무에 대한 두려움과 혼란, 그리고 그 안에 불만은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면, 아직 안 해봤으니깐. 아직 안 해봐서 잘할 수 있을지 두려운 거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내게 유리하지 않은 상황들은 불만족스럽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회사에서 가장 힘이 없는 건 어쩌면 하기도 전에 늘어놓는 불평, 불만일 거다. 일잘러들은 문제제기를 하기 전에 해당 업무를 바닥까지 파악하고 최선을 다한 후에 근거를 가지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이 그들이 불만을 표출하는 방법인 거다.


그리고 그런 불만만이 상황을 바꿀 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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