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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Jul 03. 2021

3천만원짜리 사고를 쳤다.

작년 초, 성과를 내며 회사에서 나름 인정을 받던 때였다. 더 많은 성과를 위해 스스로 일을 만들어내고 더 많이 배우려고 했다. 작은 팀이었지만 팀장이라는 직책도 생겼고 내가 이끄는 팀에 팀원도 2명이나 있었다. 그래서 팀장으로서 팀원들이 의지할 수 있게 우리 팀이 존재감을 뿜뿜 낼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성취감에 취한 내게 일을 한다는 게 단순히 월급을 받는 것 그 이상이었다. 지금의 일이 나를 더 인정받게 하여 더 많은 보상을 쥐게 할 거고 나 스스로도 성공경험을 쌓아 스스로도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발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 성과가 회사 안에서 회자되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꽤나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질주하는 경주마처럼 달렸다. 그리고 그 질주하던 경주마는 얼마 가지 않아 사고,, 아니 큰 실수를 하고 만다.


광고비용 통제를 놓쳐 3천만 원이 오버되고 말았다. CPC 광고를 처음 진행하면서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달려든 거다. 그때는 나름 광고 활용에 도전하여 다른 지점과 달리 선도적으로 마케팅을 진행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여러 일로 정신없는 사이에 광고는 열심히 설정하면서 비용관리는 놓치고 있었고 그 결과 3천만 원이나 비용으로 청구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 광고 비용 대비 효율을 내고 있지도 못했다. 말 그대로 돈을 날린 것이다.


3천만 원이라니... ‘내가 작년에 낸 매출의 영업이익이 얼마더라... ‘ 이 비용을 내게 되면 내가 지금껏 고생하여 성과 낸 의미가 사라지고 마는 듯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허무하기도 하고 팀원들 보기도 창피했다.. 이런 중요한 디테일을 놓치다니.. 자신 있게 팀원에게 광고 세팅하라고 업무지시를 내려놓고 팀장이라는 사람이 광고비용 통제를 놓치고 있었다..


내가 친 사고를 알게 된 즉시,,, 본부 과장님께 보고 드리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여쭤봤다. 과장님도 거래처 담당자와 소통해보신다고 했지만 어찌할 바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비용 처리해야 한다고 그러니 지점장님에게도 말씀드리고 지점에서 해결하라고 말이다.. 어차피 비용은 지점에서 처리하니 본부 과장님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말하는 듯했다. 그분에게는 다른 여러 업무와 회의들이 먼저였고 내가 낸 사고는 그의 책임도 관심사도 아닌 듯했다.


그 후 바로 지점장님께 말씀을 이 사건에 대해 드렸다. 감사하게도 지점장님은 내게 낸 사고를 듣고 나를 타박하기보다 위로해주셨다. 그러나 나는 그의 위로에도 안심하지 못했다. 절대 지점비용을 3천만 원이 손해 보게 만들 수는 없었다. 나에 대한 믿음으로 많은 권한과 격려를 주셨는데.. 하물며 혼을 내도 모자랄 판에 위로까지 받으니 나는 내가 낸 사고에 대한 수습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일하려고 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나는 또 너 퇴사한다고 하려고 하는 줄 알고 겁먹었다. 괜찮아~ 나도 00 과장이랑 소통해볼게!"

"감사합니다. 지점장님.. 저도 다시 한번 거래처 담당자랑 소통해보고 최대한 다음 분기로 이월시켜 마케팅 비용으로 차감될 수 있도록 협의해보겠습니다."



그래서 나는 울며불며 거래처 담당자에게 매일 아침, 점심, 저녁마다 전화했다. 이 비용은 어떻게 초과 사용하게 되었고 이 비용을 우리가 다음 분기 마케팅 비용으로 지원받을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이다. 비용처리를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유예를 해달라고. 그렇게라도 내가 낸 사고를 수습하고 싶었다. 양사 서로 피해 보지 않는 협의점을 찾아 협상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습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 나는 입맛도 잃었다. 3천만 원이라는 비용 사고를 쳤다는 죄책감과 부끄러움이 나를 지배했다. 내 회사도 아니고 고작 일개 주임 주제에 뭔 주인의식인지 정말.. 내 적금이라도 깨서 비용처리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존심도 무너졌고 성취감도 박살 났다.


'나는 뭐하러 일을 했나.. 적당히 할 걸... 새로운 도전 따윈 하지 말고 적당히 묻어가면 이런 실수도 안 했을 텐데..'


그런 나의 좌절, 절박함에 나는 밤잠도 설치고 본부 과장님을 만나러 가기도 했다. 이 일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해결해 도움을 읊조리기 위해서 말이다.


"과장님. 이건 회사대 회사로 해결하면 해결이 될 거 같습니다. 우리 회사 정도면 중요한 거래처인데 마케팅 비용 처리하려고 광고 세팅하다가 과다 사용된 건데 초과된 광고비용을 다음 분기 마케팅 비용으로 청구될 수 있도록 공문이라도 보내주시면 안 되나요.. 일개 주임 나부랭인 저보다 과장님이 나서 주시면 가능한 일입니다 ㅠㅠ 제발요.. 저 진짜 이거 해결 안 되면 퇴사할 거예요.. 살려주세요 과장님."


절박했다. 나의 일 년간의 성과가 무너질 거란 두려움에, 내가 회사에 돈을 벌어준 게 아니라 돈을 쓰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나는 매일 끙끙 앓았다.


거래처 담당자에게도 매일같이 어떻게 내부적으로 소통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연락했다. 결국 그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초과된 비용은 2분기 매출에 따라 할당되는 마케팅 비용으로 처리될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처리되었다.



이제 문제는 2분기 매출이었다. 3천만 원을 마케팅 비용으로 처리하려면 꽤나 도전적인 목표 매출을 달성해야 했다. 여기서 나는 또 한 번 고민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당장 다음 달부터 30% 매출 성장을 시킬 수 있을까. 일주일 내내 고민했다. 그렇게 나는 퇴근을 해서도 주말이 되도 이 3천만 원의 노예가 되었다.


주말에도 3천만 원의 죄책감에서 탈출하지 못한 나를 친구는 따뜻하게 위로해주었다.

"괜찮아. 우리는 회사원이잖아. 회사원이니깐 회사원의 실수에 대한 책임도 결국에는 비용관리, 직원관리를 못한 총괄책임을 윗사람이 지는 거고 회사가 그에 대해 지불하는 거지. 그래서 회사원하는 거야! 잘하는 거 잘하는대로 다 보상받고 못하는 거 다 못하는 대로 책임지는 건 사업자가 하는 거지. 3천만원을 통해 앞으로 비용을 관리하는 자세를 배운 거니깐 너무 속상해하지 마. 지금 실수 안하고 이걸 못배웠으면 나중에 3억, 30억 더 큰 실수할수도 있었을거야! 우리는 직장인이고 직장과 나를 분리하면 이번 일은 오히려 개인적으로는 배움의 기회가 된 거야."



그 따뜻한 위로에도 나의 온신경은 내가 낸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누렸던 성취감은 박살 났고 주말에도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출을 높이고 영업이익을 늘리는 것뿐이라는 거였다.  추가로 성과를 만드는 게 내가 낸 사고를 수습하는 방법이었기에 주말에 회사 선배를 만나며 나의 고민과 도움을 구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의 진지한 고민에 오히려 그 선배는 진지하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는 되레 내게 방법이 없다며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당장 다음 달부터 30% 성장을 시키는 게 말이 되냐? 그리고 너 지금 주말에도 이게 뭔 고생이냐. 회사에서 네가 잘못한 건 윗사람이 책임지는 거야. 그래서 그 사람이 그 돈 받고 있는 거야. 왜 니가 끙끙 앓고 있어. 다음 분기 마케팅 비용으로 차감하기로 했으면 니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거야. 그리고 너 만약에 당장 팀 이동하게 되거나 이직하면 지금 이 고민 진짜 무의미해지는 거다. 넓게 봐라. 넓게. 그래서 지금 중요한 건 달성할 수 없는 목표에 목메는 게 아니라 협상하는 거야. 당장 현실적으로 30% 성장이 어려우니 지금 할 수 있는 건 연말까지 마케팅 비용으로 광고비 차감해달라고 거래처랑 협상하는 게 제일 현실적이다. 지금 황금 같은 주말에 이런 일로 스트레스받지 마라. 무슨 니가 사장이냐 임원이냐. 그 3천만원, 1조 매출 내는 회사에서는 그렇게 크지도 않다. 회사에서 더 무의미하게 몇 천만원 쓰기도 하더라. 그러니 그냥 주말에는 놀아라."



따뜻한 위로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냉정한 조언이 내게 더 깊게 와닿았다. 그리고 문제에서 조금 떨어져 냉정하게 생각하니 정말 그의 말이 맞았다. 나에게 3천만원과 회사에게 3천만원의 가치는 다를 테니 조금 죄책감이 풀리는 듯했다. 그리고 내가 수습할 수 있는 선으로 기간을 유예시키므로 실제 청구되는 광고비용은 천만원 수준으로 줄어들기도 했으니 말이다. 울며불며 거래처와 본사 과장님 쫓아다니고 전화하며 어느 정도 큰 문제를 처리한 거니 내가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여기까지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그렇게 얼추 문제가 해결되고 정말 나는 그때 그 조언해줬던 선배 말대로 갑자기 다른 팀으로 발령이 나게 되었다.



나중에서야 매일 연락하며 괴롭혔던 거래처 담당자님은 우리 회사의 다른 지점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있었는데 다들 이렇게까지 해결하지 않고 쿨하게 비용처리를 했다고 했다.


"담당자님이 그렇게까지 마음 쓰고 해결하지 않아도 되는데.. 다른 지점은 그냥 다들 쿨하게 비용처리하셨어요. 정말 그렇게까지 나셔서 수습하지 않으셔도 됐는데"

"제가 저지른 일이니 제가 나서서 수습해야죠. 그때 적극적으로 도움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그제야 그렇게 한 달간 나를 괴롭혔던 3천만원의 사고도 내게 하나의 직장생활 에피소드로 남았다.



멀리서 보면 별거 아니었다.

인생에서, 직장에서 우리에게 위기의 순간은 언제나 있다. 큰 사고를 치거나 큰 갈등을 겪거나 큰 아픔을 겪거나.. 그 순간들이 닥치면 우리는 스스로를 못마땅하게 여기다가 어쩌면 삶을 왜 사나라는 우울감에 젖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또 지나고 보면 내가 겪었던 아픔, 갈등, 사고는 모두 흐미해져 간다. 세상 무너질 거 같던 일들도 어느샌가 어찌어찌 잘 꿰며져 그런 일이 있었는지 티도 안 나게 우리는 살아간다. 그리고 한때 내가 그랬지라는 힘든 경험이 있었기에 우리는 더 단단해진다.



그 3천만원의 사고는 어쩌면 자만하지 말고 방심하지 말고 더 디테일하게 배우라는 하늘의 계시였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실수 같았지만 생각보다 세상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멀리서보니 정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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