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북극곰 Oct 23. 2021

내가 ‘유미의 세포들’을 사랑하는 이유

스포주의*

점점 시간이 생겨도 드마라는 웬만해서는 보지 않게 되었다. 보통 12부작, 16부작에 달하는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서 살짝은 지루할 수 있는 초반의 서사를 이겨낼 용기가 없었다. 어쩌면 온전히 한 편의 드라마에 흠뻑 빠질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걸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렇게 드라마보다는 짧은 영화나 예능을 보다가 우연히 유튜브에서 정신과 의사가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을 리뷰하는 영상을 보았다.


"'유미의 세포들' 보면서 저는 되게 감동받았던 게 뭐냐면. 내 세포들은 다른 사람들을 응원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지 않아요. 유미만 중요해요. 유미가 울면 슬프고 유미가 화나면 쟤가 밉고 유미가 행복하고 즐거우면 이 세포들이 다 좋아하거든요. 저는 여기서 힘을 얻었어요. 가끔 살면서 되개 외롭고 혼자인 거 같고 이 세상에 내 편은 없다고 느껴지지만 내 마음속에 있는 나를 응원해주는 세포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의 행복만을 원하고 내가 즐겁고 행복하면 다 이해해주고. 이 드라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응원하고 스스로를 좀 사랑하고 스스로 행복을 위해서 가끔씩은 남의 눈치도 좀 덜 보고 내가 우선으로 자기중심적으로 조금 한 번쯤은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닥터프렌즈] 유미의 세포들 정신과 의사 리뷰편 中
https://www.youtube.com/watch?v=Ia6RYBPu0Ew


'나의 세포는 오로지 나만을 응원한다'는 메시지에 꽂혀 '유미의 세포들'을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주인공인 유미님이 나와 동년배의 비슷한 직장인이라는 환경을 가져서 그런지, 그녀의 상황 하나하나는 어쩌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무척이나 공감이 가는 에피소드였기에 어느새 나는 유미의 세포들에 빠져들었다. (세포들도 너무 귀엽다ㅎㅎㅎ) 매 에피소드마다 내가 했던 고민들과 생각들을 그중 유미도 똑같이 하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내 안에 세포들도 유미의 세포들처럼 안에서 고민하고 힘들어하던 나를 응원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유미와 세포들을 보면서 때로는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고 때로는 유미처럼 고민하고 흔들리던 나 자신에 대한 확신도 얻었다.




이렇게 유미의 세포들에 유미 대신 나를 대입하며 같이 분노하고 울고 즐거워하며 매주 금요일을 기다리고 있다. 본방사수 애청자로서 아직 드라마가 끝나진 않았지만 공감백만배 띵장면을 뽑아보며 이 땅에 수많은 유미들을 응원하려고 한다.



1) 내 감정에 맞고 틀리고는 없다. 사람은 의심해도 내 감정은 의심하지 말자!

유미는 회사 남자동료인 유바비의 행동이 사심이 아닌지 의심하면서 유바비가 아닌 자신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건지 의문을 가졌다. 우리는 모두 주관적으로 자기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곤 하니 때로 내가 상황을 오해하고 있거나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한다. 나 역시 유미처럼 내가 아닌 상대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없기에 상대의 행동과 말을 보며 늘 상대의 생각과 마음을 짐작하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감정이 맞는지 틀린 건지 의심했다. 상대의 의미 없는 행동에 내가 의미를 부여한 건 아닌지.. 그런데 분명한 건 나는 상대의 생각과 의도를 100% 투명하게 알 수 없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이 불쾌한지 아닌지는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 내가 부담스럽게 혹은 불쾌하게 느껴지는 상대의 행동이나 말이 있다면 스스로의 예민함을 고민하기보다 내가 싫어하는 포인트에 확신을 갖는 게 맞다. 나의 감정을 의심하는 것만큼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도 없더라.. 그러니 스스로 이상한 건 아닌지 의심하지 말자.. 만약 내가 보수적이어서 용납할 수 없는 기준이 있다면 그 또한 나의 일부인걸.


유미 : 내 사고방식이 좀 옛날 사람 같아? 그냥 내가 남자 여자관계에 있어서 보수적인 건가 싶어서. 남사친, 여사친 그런 거 말이야.

구웅 : 글쎄 조심성이 좀 많은 스타일이긴 하지.

유미 : 그래? 내가 이상한 건가?

[유미의 세포] 8회 中



2) '이별 카드'를 가진 순간,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우선시하며 당당해진다.

유미가 남자친구 구웅의 오랜 여사친 서새이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지만 스스로 예민한 건지 보수적인 건지 고민하던 찰나에, 서새이의 선을 넘는 행동은 더 과감해졌다. 유미는 서새이의 행동에 여자친구로서 기분이 나빴기에 이건 이해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남자친구와 헤어질 마음이 없었던 유미는 남자친구에게 갈등을 빚으면서 이 문제를 터놓고 말할 수도 없어 꾹꾹 참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이제는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서새이의 행동에 유미는 폭발하고 만다. 그리고 그 순간, 유미는 지금껏 헤어짐을 생각해본 적이 없던 남자친구와 이 문제로 인해 헤어질 수 있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이별을 할 수 있는 관계라고 직감하는 순간 그녀는 그 누구보다 자신의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며 행동할 수 있었다. 나를 잃어가면서 지켜야 할 관계는 없다. 관계를 쌓기 전에는 온전한 내가 필요하다. 그러니 나의 원래 모습을 잃어가면서 혹은 숨겨가면서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누구든 '이별카드'를 당당히 꺼내자. 나를 힘들게 하는 상황이나 상대를 내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지만 나를 힘들게 하는 상대를 떠나는 건 나의 몫의 선택이니깐. 그 누구보다 나는 내가 제일 중허다고!!

  

 지금 유미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져주는 것 밖에 없어서 그래. 헤어질 맘이 없으면 아무리 싸워도 결국 져주는 것 말고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어. 나머지 카드가 '항복 카드' 뿐이지. 그 카드는 버리고 이걸 받아. '이별 카드' 연애 중에는 늘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하는 카드야. 이게 없으면 유미는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없어. 이별 카드를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유미는 이제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을 거야.


"난 니가 어떻게 생각하던 이 말은 해야겠어. 니 눈에는 안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 저 사람은 니가 감싸줄 만한 좋은 동료도 좋은 친구도 아닌 거 같아. 저런 사람을 곁에 두지마 웅아. 너는 좋은 사람이잖아. 웅이 너한테 소중한 사람이 생길 때마다 니 친구는 또 지금처럼 행동할 거야. 니가 누굴 만나든지 말이야. 나 간다."

나는 서새이를 날려버릴 능력 같은 건 없다. 웅이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싫으면 안 보고 좋으면 계속 보는 선택은 나의 것이다. 물론 그건 웅이도 마찬가지겠지.

[유미의 세포들] 9회 中



3)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고민에서 필요한 건 현실적인 상황 분석-솔루션이 아니라 무한한 응원이다.

부서이동의 기회를 얻은 유미는 새로운 일에 뛰어들기 위한 용기가 필요했다. 용기를 얻기 위해 남자친구인 구웅에게 부서이동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지만 지극히 현실주의자인 구웅은 용기고 나발이고 아주 그냥 맥 빠지는 소리를 하며 유미가 가지고 있던 용기마저 박살내고 만다. 그걸 보고 누군가는 현실적으로 남자친구 입장에서는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음... 유미가 여러 번 힌트를 주며 마케팅부에 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보여주는데 유미에게 용기를 주는 (유미가 듣고 싶어 하는) 센스는 어디다 말아먹고 자기 입장에서 뼈만 때리는데?!


우리는 인생에서 수없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리고 그 선택이 앞으로의 삶을 결정지을 수 있는 변화의 기로에 선 것일수록 우리는 고민의 늪에 빠진다. 그래서 내 안에 고민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돌아 그냥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해봐! 너를 믿어! 쫄지마!'라고 말해주는 그 한마디가 필요할 때가 있다. 경험하지 않은 미래의 상황을 100% 장담할 수도 없고 나의 능력을 100% 믿을 수도 없기에 그 한 마디를 구하려고 우리는 고민을 털어놓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부터 일면식도 없는 인터넷상 익명의 사람들에게까지.


사실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내 마음속에 숨어 있어서 본인이 모른 체하고 있거나 겁먹고 꺼내보지 않을 뿐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도 나 안에 가진 꿈도 내가 나를 제일 잘 안다. 그러니깐 나의 최측근이라면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응원해주세요..! 내 선택을 위해 가장 가까운 연인에게서 내가 필요한 건 현실적인 조언이나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피드백이 아닌 무한한 응원과 격려니깐.


구웅 :  새로운 일도 좋지. 그렇지만 니가 안 해봤던 일이잖아. 지금껏 잘해왔던 일을 더 잘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 막상 가면 생각지도 않은 일을 할 수 도 있어. 익숙하지 않은 일이잖아. 저번에 짧은 홍보글 쓰는 것도 하루 종일 스트레스받았다면서. 그걸 매일 할 수 있겠어? 좋은 걸 기대했는데 막상 기대와 다르면? 적응하기 힘들면? 인생이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니깐. 난 최악도 늘 대비해야 된다고 생각해.

유미 : 대비? 어떤 대비? 시도조차 하지 않는 대비?

[유미의 세포들] 10회 中


내 안에 세포들아~ 언제든 내 편이어줘서 고마워! 너네가 열심히 나를 응원하는 만큼 나도 나를 믿고 더 열심히 살아볼게! 힘내자 내 세포들~~~

작가의 이전글 내가 장담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