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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Feb 18. 2020

회사를 넘나드는 갑질의 향연

거래처의 갑질러에게

사실 회사 안 '갑질'보다 더 무섭고 기분 나쁜 일은 회사 밖의 사람에게 당하는 '갑질'이다. '갑'업체 담당자가 '갑질'을 하면 '을'업체의 담당자인 나는 '슈퍼을'이 되어 속절없이 당해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내가 '갑질'에 화를 내어 '갑'과 사이가 틀어지면 업무적인 불이익이 올 것이고 그로 인해 피해 보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나와 일하는 동료들이기 때문에 감정을 표출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는 '갑'업체 담당자가 밤 12시에 전화하거나 실적에 대한 분풀이를 할 때 아무 말 못 하고 듣고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가 팀장 업무를 하게 되어 담당님들 두 분과 함께 일하는데 한 담당님이 맡은 업체 엠디가 그녀에게 굉장히 무례하게 말하는 걸 자주 보았다. 주로 카톡으로 소통하는 업무 대화에서 그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우리 팀 담당님께 평소 굉장히 짧게 말했다. 뭔가 문의를 하면 "아이그 정말"이라고 귀찮아했고 카톡 말투는 반 존댓말과 줄임말의 혼합이었다. 담당님은 내게 해당 엠디가 얼마나 무례하게 말하는지 토로하기도 했지만 '을'의 입장인 우리 팀이 딱히 그에게 제재를 가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그저 들어주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오히려 그에게 행사를 따내야 하는 아쉬운 입장이니 비지니스 예의를 지켰다.

"맛점하시고 위에 내용 확인되시면 카톡 부탁드리겠습니다."

"요청하신 내용 수정 완료하였습니다 :)"

그가 짧게 말해도 나는 길게 예의를 지키며 을의 역할을 다했다.



그러다가 지난주에 사건이 터졌다.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우리가 진행하기로 한 온라인 행사에서 당일날 우리 행사가 제대로 노출 진행되지 않았다. 사건의 원인을 물어보니 그는 정확한 설명 없이 우리 팀 담당님을 카톡으로 쏘아붙이며 "여기 들어가고 싶어 하는 업체 많거든요. 좀 무책임하신 듯"라고 말했다. 원인을 모르지만 우리는 '무책임하다'는 욕을 먹어야만 했다.



원인이 뭔지 알아야 나도 행사를 준비한 사람에게 해명을 하고 대안을 줄 수 있기에 무례한 엠디를 뒤로하고 고객센터에 문의를 했다. 고객센터에서는 해당 엠디와 소통하고 답을 주기로 했지만 답은 오지 않았고 다음날 아침 나는 그 엠디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우리는 행사 전날까지 제대로 세팅되었는지 확인했고 엠디님에게 해당 링크까지 전달드렸는데 답변이 없길래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일날 행사는 노출조차 되지 않았고 고객센터에 문의했지만 아직 답이 없습니다. 혹시 제대로 세팅하고 링크까지 드렸던 행사가 왜 당일 갑자기 삭제되었는지 원인을 아십니까?"


그러자 그는 특유의 카톡을 짧게 나눠서 보내는 말투로 대답했다.


"000 님한테 이야기했는데요?"

"같은 행사 이야기하시는 거죠?"

"안 그래도 어제 그것 때문에 이야기했습니다"

"세팅이 다 틀어져 있고 페이지도 내려가 있더군요"


"전날까지 세팅된 행사 링크를 엠디님께 전달드렸는데 그때까지 멀쩡했던 게 왜 갑자기 행사하는 날 삭제되어 있는지 원인이 궁금합니다."


"먼가 그쪽 세팅이 이상한 것 같은데요" 그는 아주 애매모호한 말로 대충 말했다.


"뭘 잘못 세팅한 지 확인을 해달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우리가 세팅을 잘못한 게 맞는지 00 회사에서 시스템 오류가 난 게 아닌지를 확인해달라고 어제도 고객센터에 문의한 거고요. 이전 다른 행사들은 문제없었는데 이번 행사가 이렇게 문제가 된 게 이상합니다."


"그쪽에 문제인 듯"

"하네요"


그는 꽤나 대충 '~인 듯하네요' 말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말투로 시종일관 카톡 했다. 구체적이고 확실한 원인을 알아야 대안도 세울 수 있는데 그는 원인을 제대로 파악할 노력조차 하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우리 회사는 아니 나는 '그쪽'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쪽이라니.. 회사에서 그쪽이라는 표현을 듣다니.. 신박했다.)


담당자인 본인이 남의 일 말하듯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그 말투에 나도 화가 났고 "정확한가요?" 따져 물었다.


"링크 에러겠죠"


참으로 애매모호하고 무책임한 그의 답변에 나는 그와 똑같은 말투로 되갚아주었다.


"정확하게 피드백을 해주셔야지. '그쪽 문제네요', '무책임하네요'만 말하시는 게 뭔가요? 제가 볼 땐 그쪽 문제 같은데? 그리고 '~겠죠'는 뭔가요? 어떤 이유로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런 걸 다시 해보시거나 이렇게 해결할 수 있다.라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제야 그는 문제가 된 링크라도 보내주었다.


"체크해 보시길"

"링크 에러인 듯"

"저한테 따지지 마시고, url 이미지 링크 체크하세요"


해당 링크는 문제가 없었지만 '~겠죠'라고 말하던 그가 링크를 보내주자 나는 문제 원인에 다가간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고작 이거 하나 더 설명해 주기기 그렇게 힘든 일인가 싶었다.


그래서 나는 아주 당당하게 물었다.

"그걸 말해주기가 그렇게 힘들었어요?"


"이거요 다 알아서 점검해요"

"왜 저한테"


그의 말에서 그는 꽤나 자신의 말투나 태도의 문제를 모르는 듯하였다. 저 짧은 두 줄의 카톡에서 '나는 여태껏 이렇게 일해 왔는데 왜 너는 나한테 난리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였다.


"다른 업체에서 다 알아서 하면 엠디는 아무 말 안 하고 '그쪽 문제인 듯'이라고만 말하면 되나요? 문제일 수 있고 우리 잘못일 수 있는데 그쪽 말하는 말투는 비즈니스적으로 문제가 있네요. 체크해보시길"


아마 내가 이렇게 말해도 그는 '뭐야 저 또라이는' 이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혹은 속으로 부들부들 거리며 이후 우리팀에 불이익을 주려고 벼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나는 그에게 본인이 한 말을 똑같이 던져주며 당하는 사람의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 기분을 느낄 감정이 있는 사람인지는 몰라도 말이다. 무례하고 몰상식한 그를 보며 ‘갑'입장의 회사에서 일한다해도 본인도 정작 나와 똑같은 회사원이면서 본인이 진짜 뭐라도 된 줄 알고 착각하는 저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저기요 엠디님. 저도 고객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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