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ter Kim Jul 24. 2018

인생에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는 '모지스 할머니'로 불리며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중 하나다.

갑자기 한국인에게는 낯선 이 할머니 이야기를 꺼낸 데는 이유가 있다.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다 너무 맘에 드는 제목의 책을 만났는데, 이 책의 저자가 바로 모지스 할머니였기 때문. 책 이름은 '인생에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다.


이 책에 눈길이 간 건 어쩌면 인생 제 2막을 준비하며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거리는 마음에 한줄기 위로가 되는 문장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왜 제목을 이렇게 붙였을까 하는 마음에 바로 책을 읽어 내렸다. 책은 모지스 할머니의 생애를 할머니의 입을 통해 풀어나가고 있었다. 책 한 장 한 장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아기자기하면서, 따듯하고 다정한 할머니의 그림들을 만날 수 있다. 모지스 할머니는 미술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없었다. 시골 농장에서 거의 평생을 일한 평범한 여인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80세에 개인전을 열고 100세에 세계적인 화가가 되신 것이다. (할머니는 101세에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76세의 젊지 않은 나이에 어떻게 그림을 그리시 시작하셨을까? 특별한 사건이나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76세가 되던 해, 평소 앓던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인해 실을 자수바늘 구멍에 더 이상 끼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바늘을 내려놓고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76세. 언뜻 생각해 봐도 지금의 나에겐 정말 까마득한 나이다. 살아온 날만큼을 더 살아야지 어렴풋이 미칠 수 있는 나이다. 평범한 생각으로는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 적절한 나이는 아니고, 모든 것에서 은퇴해 여생을 한가로이 보내야 할 것 같은 나이다. 그런 나이에 모지스 할머니는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화가로서 성공했다. 작게 성공한 정도가 아니고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고, 그 그림이 백악관에도 걸릴 정도로 성공했다. 할머니는 76세의 나이에 그림을 시작하며 이런 성공을 예상이나 하셨을까? 네버.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모지스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하셨다. "사람들은 늘 '너무 늦었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지금'이 가장 좋을 때입니다."라고. 요새는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속담보다 TV에서 박명수가 말한 '늦었다고 생각하면 정말 늦었다'가 더 통용되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이런 메시지를 듣고 이야기를 들으니 이질감이 들 정도였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요새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이 떠올랐다. 다니는 회사가 시장 축소와 실적 악화가 겹쳐 200여 명의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말은 희망퇴직이었지만, 일부는 권고사직을 통보받기도 했다. 직장인에게 가장 중요한 고용 안정성이 흔들리다 보니 사내 분위기가 휘청휘청 엉망이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다음 대상은 내가 될지도 모르니 빨리 다음을 준비해 둬야겠다란 생각이 사람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것 같다.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 마다 모두 그런 소리를 했으니. 그런데 공통적으로 들었던 늬앙스의 말이 있다. 마흔이 조금만 넘었어도 이미 다른 일을 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말들이었다. 언제부터 마흔이란 나이는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나이가 되어 버린 걸까? 고백하자면, 나 역시 그런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 그런 나에게 모지스 할머니의 생애와 말들은 큰 위로가 됐다. 내가 좋아했던 할머니의 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신이 기뻐하시며 성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나이가 이미 80이라 하더라도요." 할머니는 그렇게 24년 동안 왕성하게 활동하며 1,6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그 나이에도 평균 일주일에 한 점의 그림은 완성하신 것이다.


모지스 할머니의 생애 이야기를 읽으며 읽는 내내 그녀의 유쾌함에 기분이 좋았다.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이 내 안에 스며들기도 했다. 그리고 모지스 할머니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동안 다니던 회사에 육아 휴직을 냈다. 이게 육아 휴직이 될지, 퇴직이 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8년여를 살던 지역을 떠나 고향으로 이사를 한다. 어쩌면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고,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무수히 많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두렵고, 또 다른 한편으론 기대감이 부푼다. 그래도 기대감이 더 큰 것은 어쩌면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님을 모지스 할머니로부터 배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할머니의 말처럼 결국 삶이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언제나 그래 왔고, 또 언제까지나 그럴 것이다.  







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을 볼 수 있는 곳

https://brunch.co.kr/@grandmamoses/1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