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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ter Kim Oct 04. 2018

[두 뺨의 온도] 3편. 기억을 잃어버리다

3편

이 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reading15m/547



"나영 씨, 근데 남자 친구 있어요?"

"아, 전 없어요. 성진 씨는 있어요? 있으실 것 같은데..."

바로 대답이 나올걸 기대했는데, 그가 잠시 머뭇 거린다...

지이이이잉~ 지이이잉~

그가 무언가 대답을 하려는 찰나에 전화 진동이 울렸다.

"나영 씨, 잠시만요..."

전화를 받고 다급히 들어온 성진 씨는 급한일이 생겼다며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그로부터 전화가 없었다. 사실 특별한 사이도 아닌 나에게 성진 씨가 전화를 해야 할 이유도 딱히 없었지만, 왠지 그날 저녁 나눈 술잔만큼 마음도 깊어졌다고 느낀 건 혼자만의 착각일까?...  울리지 않는 전화기를 바라보며, 혼자 마신 김칫국의 쓴맛을 느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회사에서 근무 중에 성진 씨에게 다시 카톡이 왔다.

 

[나영 씨 그날은 정말 죄송했어요, 일이 갑자기 생겨서요. 혹시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세요? 사죄의 의미로 맛있는 밥 살게요~]


오랜만에 성진 씨로부터 온 메시지를 본 순간 원망보다는 반가움이 더했다. 너무 쉬워 보일까 한 번 튕길까도 잠시 생각했지만, 그냥 냉큼 수락하고 저녁을 기다렸다. 칼같이 퇴근해서 집에 들렀다 가고 싶었는데, 갑자기 퇴근 전 쏟아진 업무 요청에 마음이 바빠졌다. 점점 시간은 흐르고 약속시간은 다가왔다. 이미 집에 들었다 가기는 불가능해진 시간, 자칫하면 약속시간도 늦겠다. 황급히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서 거울을 보는데, 아침에 헐레벌떡 준비하며 대충 걸치고 나온 옷차림이 맘에 들지 않는다. 퇴근 전 업무 요청한 사람들에게 괜스레 짜증이 밀려왔다.


성진 씨와 만나기로 한 곳은 지난번 만난 곳에서 멀지 않은 소곱창집이었다. 이 집 곱창이 기가 막히다고 칭찬하던 성진 씨 추천에, 이곳으로 약속을 잡았다. 저 만치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성진 씨가 보인다. 그 얼굴을 보는데 이상하게 두 뺨의 온도가 올라갔다.

학창 시절 별명이 홍당무던 시절이 있었다. 부끄러운 일이 있으면 왜 그런지 두 뺨이 유독 발 그래 해지는 모습에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뺨이 발그레해지는 현상은 대학 때에도 이어졌는데, 한 선배가 그럴 때마다 "너 또 두 뺨에 온도가 올라갔다~"라고 놀렸던 게 갑자기 기억났다.


"어서 와요 나영 씨~"

"아... 성진 씨 제가 갑자기 나오느냐고, 옷차림이 너무 별로죠 ㅠㅠ..."

"아니에요 빛이납니다. 예뻐요~"

예의상 하는 소리였겠지만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자리에 낮아서 소곱창 2인분을 시켰다.

"나영 씨 곱창엔 소준데! 우리 소주 한잔 할래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잠시 고민을 하느냐 선뜻 답을 못했다. 맥주도 잘 못하는 나는 소주가 두렵기도 했다. 대학 때 선배들이 계속 권해서 멋모르고 소주를 마셨다가 몇 잔 못 마시고 취해서 잠이든 이후로 소주는 입에 대본적이 없었다.

"아... 갑자기 소주는 좀 그렇죠? ㅎㅎㅎ 너무 제 생각만 했네요 죄송해요"

"아.. 아니에요, 우리 소주 마셔요. 저 잘 못 마시긴 하는데... 조금만 마셔볼게요"

"아 그래요 그럼 무리하지 말고 조금만 드세요 ㅎㅎ, 이모 여기 처음처럼도 한 병 주세요!"

"나영 씨  그거 봤어요? 지난번 티브이 예능에서 여자 아이돌 가수가 나와서 곱창을 엄청 맛있게 먹었는데, 그래서 곱창 대란이 일어났었데요! 그러니까 더 먹고 싶어 지더라고요. ㅎㅎ"

"아 그거 저도 봤어요~ 곱창협회에서 감사패도 줬다고 하더라고요. 호호호호!"


불판 위에 곱창이 노릇노릇 구워지는 동안 성진 씨는 소주 3잔을 나는 한 잔을 비웠다. 오랜만에 목으로 넘어가는 소주 맛이 썼다. 그래도 웬일인지 오늘은 조금 더 마실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영 씨 드세요. 여기 곱창 진짜 끝내줘요~"

"네... 성진 씨도 좀 드세요...  아, 곱창 진짜 맛있네요~"

곱창집은 테이블이 4개밖에 없는 작은 가게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연인끼리, 친구끼리 왔는지 왁자지껄 이야기가 시끄럽다. 귀가 먹먹하여지는 게 이 소리 때문인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마신 소주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안 마시던 소주를 3잔을 마시고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그날의 일을 성진 씨에게 물어봤다.

"성진 씨 우리 저번에 만났을 때 무슨 일 있었어요? 그렇게 갑자기 가셔서 좀 놀랬거든요..."

입에서 이 말을 뱉자마자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도 주워 담을 수는 없고, 성진 씨가 대답하기까지 시간이 한참 길게 느껴졌다.

"아... 그날 좀 사건이 있었어요. 제가 꼭 필요한 일이라서 바로 갈 수밖에 없었네요. 죄송했어요 나영 씨. 그날 정말 즐거웠는데..."

대답을 듣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성진 씨가 왠지 곤란해하는 것 같아서 꾹 참았다.

"나영 씨, 이상하게 나영 씨랑 있으면 마음이 들떠요. 걱정도 없어지고 마냥 즐거운 거 있죠? 연애할 때 기분 같다니깐요? 하하하하하. 제가 술에 취했나 보네요, 별소리를 다합니다. 참 ㅎㅎ "

성진 씨는 술 핑계를 댔지만, 갑작스러운 성진 씨의 고백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동시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나 이 사람을 좋아하는 걸까... 아니 이 사람을 좋아해도 되는 걸까?....' 깔끔하게 저 여자 친구 없어요.라고 말해주면 속이라도 편하련만, 성진 씨는 이상하게 말을 돌린다. 복잡한 마음에 연거푸 소주를 두 잔 더 마셨다. 이미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었다. 점점 기억이 흐려진다. 정신줄을 붙들어야 하는데, 눈이 감기고 머리가 아프다.


"나영 씨! 나영 씨! 괜찮아요? 집에 갈 수 있겠어요?..."

어렴풋이 들리는 성진 씨의 목소리를 끝으로 기억이 끊어졌다. 일어나 보니 내방 침대였다. 머리가 지끈지끈 깨질 것만 같다. 시간을 보니 11시. 토요일이라 엄마가 깨우지 않으셨나 보다.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며 시원한 물이라도 마시려고 거실로 나갔다. 그런 나를 보고 티브이를 보고 있던 엄마가 한 소리를 하셨다.

"얘! 너는 다 큰 처녀가 그렇게 외간 남자한테 업혀오면 어떡하니?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그리고 너 그 작가는 언제부터 만난 거야?"

"그런 거 아니야!"

황급히 아니라고 대답하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갑자기 머리가 더 복잡해지며 떠오르지 않는 기억을 뒤적거렸다. 헛수고였다.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지난밤 일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뭔가 실수라도 한 건 아닌지 마음이 불안했다. 한 편으론 그래도 성진 씨가 나를 업어다 데려다줬구나란 생각에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냉수 한 컵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방으로 들어와 핸드폰을 보는데 카톡이 여러 개다. 성진 씨였다. 걱정이 됐는지 좀 괜찮냐는 카톡이 여러 번 와있었다. 쭉 읽어 내려가던 중 마지막 메시지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

.

.

.


[나영 씨... 어젯밤에는 죄송했어요. 갑작스러워 놀라셨죠?... ]

[그래도 저 술 취해서 그런 거 아닙니다. 진심이에요.]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어젯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기억해내려 안간힘을 쓰는 중에 갑자기 아랫입술이 아리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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