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주는 힘을 전적으로 믿으셔야 합니다.
2월 24-26일 매거진 일기
『Directory』매거진 창간호를 읽었다. 이 매거진은 부동산 플랫폼인 '직방'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를 위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인 '볼드저널'과 합작해 만든 잡지다. 창간호가 나오면서부터 페북에서 '역시 볼드저널이 만들면 다르다'는 글을 종종 봤다. 그렇게 관심을 갖던 찰나에 서점에 나갈 일이 있어 창간호를 집어왔다. 사 오는 길에『매거진 B_Instagram』도 함께 사 왔는데, 이야기의 밀도는 Directory 쪽이 높았다. 매거진B가 브랜드를 통해 우리네 삶을 담았다면, Directroy는 주거공간을 통해 우리네 삶을 이야기했다.
창간호의 주제는 Deposit(보증금) 이었다. 여러 청년들의 인터뷰를 담았는데, 보증금 500만 원, 1000만 원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네 일상은 왜 그리도 고달픈가란 생각이 들었다. 사실 생각은 들었지만 깊이 공감하진 못했다. 처음 독립해서 회사의 복지로 전세자금 대출을 받고 편하게(?) 보증금을 받아 전세 살림을 시작한지라 보증금 마련에 대한 어려움이 크지 않았기 때문. 그런 거 보면 회사(그것도 꽤 괜찮은 규모와 복지를 가진)에 소속되지 않으면서 독립해서 수백만 원 또는 수천만 원의 보증금을 마련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걸 퇴사를 하고 야생에 나와 이제야 느낀다. 수백만 원 마련하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주제가 보증금이었지만, 잡지는 학자금 대출을 포함한 대출에 대해서도 다뤘다. 보증금 마련을 위해 우리가 흔히 할 수 있는 수단이 '대출'이기 때문. 물론 이 마저도 앞서 말했듯, 회사라는 배경의 신용이 담보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사회에 나올 때부터 수 천만 원의 학자금 대출을 안고 나오는 청년들이 또 살집의 보증금 마련을 위해서 동분서주 돈을 벌러 다닌다. 그리고 겨우 겨우 마련한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곳은 반지하 월세방. 볕이 들지 않는 컴컴한 방에서 밝은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강요하는 건 어쩌면 또 하나의 폭력이 아닐까? 란 생각이 들었다. 남의 사정도 모르면서, 함부로 이래러 저래라 할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Directory 매거진이 마냥 암울한 소식만 담고 있는 건 아니다.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철학과 가치를 잘 담아냈고, 주거 공간의 특색 있는 사진을 소개해 이해를 도왔다. 남의 집 구경하는 거 다들 좋아하지 않나? ㅎㅎ 많은 인터뷰이가 언급했듯 공간에는 힘이 있다. 나 역시 새로운 집에 이사 와서 그걸 더 느끼고 있다. 공간이 주는 힘에 관심이 생긴 것은 『메이크 스페이스』의 역자이신 김얼님의 강연을 들었을 때부터다. 이 책은 창의적인 공동체 문화와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 공간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며 활용할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책으로, '우리는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우리를 지배한다'라고 말했다.
기분이 울적할 땐 집안을 정리하고 환기만 한 번 시켜도, 조금은 나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또한 공간이 주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잡지를 읽으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글로는 짧게 기록했지만, 더 복잡하고 추상적인 숙제가 남았다. 여기까지 이끌어 준 데는 이 잡지의 공이 크다. 아직 보지 못했다면, 16,000원을 투자해 이 매거진을 읽어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