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나오는 HDMI, VGA 등의 용어는 무시하셔도 내용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용어에 두려워 마시길!
6년 전 결혼할 때 산 조립 PC는 저렴하게 맞춘 거라 HDMI를 지원하지 않았다. (그때 아이맥을 사지 못한 걸 지금도 후회...ㅠㅡㅠ) 그래서 일반적으로 많이 쓰던 VGA 케이블로 모니터와 연결해 주었다. 얼마 전 서피스 고를 하나 들이면서 이제 낡은 데스크톱의 필요가 없어져서 이걸 TV에 연결해 주고, 모니터는 보조 모니터로 활용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내가 가진 맥북이 VGA를 지원하지 않고 HDMI 단자만 지원하기에 HDMI to VGA 케이블을 열나게 찾았다. 쓸만할라 치면 꽤 비싼 케이블들이 나와서 사지 않고 며칠을 고민하며 후기만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모니터의 뒷 면을 보게 되었는데, 이럴 수가.... HDMI 케이블 연결 단자가 이미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보면 사실 당연한 결과다. 그때 이미 HDMI 가 상당히 널리 쓰이고 있었기 때문에 모니터에서 HDMI 연결을 지원하는 건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저 내가 모니터를 살 때부터 VGA 연결을 해왔기 때문에 당연히 HDIM 연결을 지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
이 사건을 경험하면서 다시 한번 프레임의 무서움을 깨닫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환경과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자신만의 프레임 속에 갇혀 산다. 그 프레임이 크고 작을 수는 있지만 프레임 자체가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프레임으로 해석이 되지 않는 프레임 밖의 상황(또는 사람)을 만나면,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 프레임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옳고 그름으로 판단했을 때 '그르다'라는 생각이 쉽게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프레임이 정말 옳은 것일까? 내가 앞서 이야기했던 모니터의 상황에서 나는 이 모니터는 VGA만 지원하는 구형 모니터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확인하는데 30초도 채 걸리지 않을 일(모니터 뒤판을 한번 들여다보며 어떤 단자를 지원하는지 보는 일)을 하지 않고 HDMI to VGA 케이블을 검색하고 찾는데 3일의 시간을 보냈다.
난 도대체 왜 그랬을까? 30초면 끝날 일을 3일이나 쓰는 극도의 비효율을 저지르면서 말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모니터 뒷면을 먼저 확인하는 게 당연한 수순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맞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또는 길들여진) 프레임에 빠지게 되면 우리는 그 밖의 일들은 생각해 보지 않게 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의심해 보지 않게 된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이냐?
꼭 어쩌자는 말은 아니고, 우리가 좋든 싫든 자신만의 프레임을 가지고 생활한다는 걸 잊지 말자는 말이다. 즉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때로는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럼 어떻게 자신의 프레임 밖을 바라보고 경험하며 내 프레임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을까? 일단 내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걸 늘 인지한다. 그리고 기존의 내 프레임을 불편하게 만드는 글, 책, 사람 들을 만나서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는 것도 좋은 시도라 생각한다. 이 정도만의 노력으로도 우리는 우리가 가진 프레임으로 인한 아집에서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쉽진 않은 일이다.
[2019.10.11 업데이트]
책을 읽다보니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 '프레임'을 '동굴의 우상' 이라고 표현했다는 걸 알게됐다. 개인 경험에 의한 우상을 말하는데, 각 개인의 고유하고 특수한 본성이나 자신이 받은 교육과 타인과의 교류에 의해 생긴다고 주장했다.
그나저나 아이맥은 언제쯤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