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무너졌다.
코로나19 바이러스(또는 그로 인해 생긴 두려움)가 가져온 변화로 일상이 무너지고 삶의 리듬은 박살이 났다. 일상이 무너지면 통제감을 상실하게 되고, 우울감을 쉽게 느끼게 되며 삶의 에너지는 바닥을 친다. 어떻게 해야할까?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개학일을 1주 연기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당장 떠오르는 건 맞벌이를 하는 부모들이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발을 동동 구를 모습들이다. 정부에서 돌봄 지원을 확대하겠다곤 하지만 내가 누리는 혜택으로 와 닿기까지는 거리감이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안다. 이번 주까지만 고생하면 다음 주에는 해결된다는 보장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해결할 방안을 찾겠지만, 기약이 없는 일들로 삶의 무력감은 덜컥 찾아온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밖을 나가보면 거리에 사람들이 없어 적막하기까지 하다. 어떤 사람들은 이 정도만 차가 안 막혀도 어디든 가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벤저스에서 타노스가 인구의 절반을 없애려고 한 걸까??)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소비가 줄어들면서 연달아 쓰러지는 무수한 자영업자들이 있다.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사는 사람들이 몇 달을 벌이 없이 버티길 바라는 건 어쩌면 우리 아니 정부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지옥을 경험하고 있고, 누군가는 그걸 이용해 돈을 버는 악마가 되고 있다. (아는 지인이 페북에 공유한 영상을 보니 약국에 마스크를 납품할 때 마스크 대신 휴지 조각을 넣어 납품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정말 미친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의 질문은 있지만 답 비슷한 것도 생각나질 않는다. 속 시원히 이렇게 해서 극복해보자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럼 난 무엇을 해야 할까?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환경의 힘에 짓눌릴 때면 늘 다 내려놓고 싶은 무력감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써 일상을 지킨다. 이리 막고 저리 막고 하면서도 일상을 회복하려고 애쓴다. 애써 억지 미소 한번 지어보고, 사람들에게 밝은 인사 한번 전해 본다. 그래도 나는 지금 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마음이 무거운 사람들을 향해 내 밝은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전하는 게 인지 상정.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안고 함께 울고 함께 웃는다. 꼭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한동일 교수님의 《라틴어 수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혹 쿠워퀘 트란시비트! (이 또한 지나가리라!)'. 분명히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지나 갈 일이라는 건 명확하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것이 지나가면서 할퀴고 가는 상처다. 서로를 보듬어 주자. 상처가 낫다면 약을 발라주자. 빠르고 올바르게 조치해준 상처는 흉터가 남지 않기도 할 테니... 하루를 또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낸다. 모두들 건강하시길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