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의 존재
첫째 고양이 쿤이가 지구별을 떠난 지 반년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늦은 시간 재활용 분리수거를 하러 나가는 길에 몸집이 아주 작은 치즈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이상하게도 다른 고양이들과는 달리 그 아이는 우리가 다가가도 도망치지 않았다. 어미로 보이는 고양이와 형제 고양이들은 멀찍이 달아나 경계를 했지만, 그 아기 고양이는 힘없이 주저앉아 우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눈병이 심한지 눈을 거의 뜨지 못했고, 며칠째 굶은 듯 앙상한 뼈마디가 도드라져 보였다. 누가 봐도 치료가 시급한 상태였다.
우리 부부가 그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기로 결정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선 치료만이라도 해서 다시 돌려보내자.” 나의 말에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고, 근처에서 작은 박스를 구해 고양이를 조심스레 담은 후 24시간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진단 결과는 ‘허피스’였다. 사람으로 치면 독감 같은 질병으로, 치료만 잘 받으면 생명에 지장이 없지만 그대로 두면 상태가 악화되거나 죽을 수도 있는 병이었다. 다행히 치료는 오래 걸리지 않았고, 30분쯤 뒤 아기 고양이는 다시 박스에 담겨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한결 나아진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그 작은 존재는 여전히 기운이 없어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우리는 다시 고양이를 발견한 곳으로 돌아갔다. 치료만 마치면 놓아주려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기고양이의 가족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비가 내린다던 예보대로 빗방울까지 굵어지고 있는 상황. 혼자 힘으로 도저히 버티기 어려운 아기 고양이를 차마 홀로 둘 수가 없었고, 우부부는 하는 수 없이 ‘임시보호’를 선택하며 그 아이를 집으로 데려오게 되었다.
그렇게 그 아이는 ‘망고’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지금은 우리의 사랑스런 둘째 냥이가 되어 매일 저녁의 꿈자리를 함께하는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나의 유년시절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고양이를 ‘애완동물’이라 불렀다. 그런데 요즘은 집에서 함께하는 이 아이들을 보통 ‘반려동물’이라고 일컫는 것 같다. 마냥 귀엽고 예뻐하는 마음인 애완(愛玩)과는 달리 반려(伴侶)에는 함께 동반한다는 뜻이 담겨있으니, 이 말이 널리 사용되고 있음이 어쩌면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까 싶다.
일전에 대중교통에서 【반려동물은 사랑입니다】라는 광고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단순히 사랑의 좋은 면만을 강조한 말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사랑을 하면, 혼자있을 때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야 하고, 돈도 들고, 몸도 피곤하고, 감정 소모도 많아진다. 솔직히 편하려면, 사랑하지 않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아마도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 우리 삶의 본질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도 결국 사랑을 선택하는 일이다. 그리고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 집안을 뛰어다니며 사고를 치고, 예상치 못한 흔적을 남겨 놓는 그 작은 존재들이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가끔은 온 방에 ㅔ분탕질을 해놓은 발취를 보며 헛웃음이 튀어나온다. 실소라고 해야 할까. 사랑이란… 분명 득보다 실이 많은 행위가 분명하다.
유기동물 보호센터에는 여전히 많은 동물들이 영문도 모를 버림을 받고 들어와 아픔을 앓고 있다. 몸집이 작은 반려동물들은 매사에 호기심이 많지만, 우리가 그들을 받아들일 땐ㅡ 호기심보단 관심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관심으로 아끼고 소중히 여길 때, 소유가 아닌 동행이 될 때, 비로소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는 사랑으로 거듭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