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 약간의 거리를 둔다 / 소노 아야코
150페이지 분량의 짧은 에세이.
어렸을 때 불후한 환경에서 자란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불행을 어떻게 하면 보다 현명하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쉽게 풀기 힘든 문제를 독자에게 내던진다.
작가가 본문에서 말한 '약간의 거리를 둔다'라는 말은, 사람과의 거리를 말했다. 사람과의 거리는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거기에 따른 대가와 간섭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그러나 내가 책을 읽으며 느낀 '거리'라는 것에는 다른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그건 '감정'이었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감정에는 약간의 거리가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본문 중 작가는 말했다.
"행복한 인간은 지나치게 너그럽고,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친다. 그러나 오늘의 행복과 자신감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뒤에 숨어 있다."
지나치게 행복에 머무르려 하는 사람, 지나치게 불행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 이 두 성향의 사람 모두 행복하다 할 수 없다. 하나의 감정에 지나치게 치우친다는 건, 다른 감정을 내 삶에서 배제한다는 것이 되니까. 치우친 감정은 두려움이라는 함정에 속박된다. 무조건 행복하려 하는 이는, 작가가 말한 것처럼 언제 그 행복이 깨질까 노심초사하고, 불행에 머무르는 사람은 행복이 찾아왔을 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행복해도 되는 걸까, 이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거야.'
그렇기에 감정들이 나의 삶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못하도록, 감정과의 약간의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나와 불행, 그리고 나와 행복. 이 관계를 삼각대의 양 꼭지점이라 생각해본다면, 그 삼각대의 간격이 좁아들면 좁아들수록 삼각대는 제대로 서질 못할 것이다. 반면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서 펼친다면 삼각대는 온전하게 서있을 수 있다. 삶의 삼각대는 그런 감정들과의 약간의 거리가 존재할 때, 비로소 별 탈 없이 서있을 수 있는 것이다.
작가는 본문 중에서 다음과 같은 행복에 관한 흥미로운 말을 했다.
"어둠 없이는 빛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다. 인생이라고 다를 리 없다. 행복은 여간해서는 그 실태를 알아차릴 수 없지만 불행을 배우는 순간, 불행과 다른 행복의 존재를 상상하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듯, 행복이라는 것도 어쩌면 불행을 겪은 만큼 더 많이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현재까지 쭉 행복에 사는 사람은, 누리고 있는 그 행복이 행복인지 모른다. 하지만 불행을 겪은 이는 그게 행복인지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안다. 그래서 행복의 햇살에는 늘 불행이라는 그림자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그런 감정, 특히 불행과 직면하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다. 작가도 말했듯, 문학은 인간의 위대함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문학은 인간이 겪은 나약함과 슬픔, 유혹. 그리고 때로는 추악함까지도 보여주는데, 우린 그 모습을 보며 공감하고 느끼고 깨닫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행복이라는 게 너무나 상대적이다 보니, 방법은 많은데 명쾌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얼마 전 작가 알랭드 보통이 tv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잠시 등장해 이런 말을 했다. "미국인들은 행복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한국인은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한국인은 멋진 멜랑꼴리(우울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슬퍼할 줄 안다는 건 더 나은 민족으로 가는 첫 단계이니까."
알랭드 보통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너무 듣기 좋게 말한 것일까? 물론 우리나라 방송이었던 만큼 좋게 표현해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좋은 감정선을 가지고 있다. 너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정선의 좋은 감정선 말이다. 다만 거기서 장점이자 단점이라 할 수 있는 멜랑꼴리(우울감)를 어떻게 활용해 나갈 것인지가 관건일 것이다. 장점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그 감정을 적절히 승화시키는 공정이 필요한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