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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수 Feb 06. 2023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품고 있던 질문은 무엇일까?

영화 읽기: 아바타, 물의 길

Avatar: The way of water (Image source: NewsBytes)

거대한 환상의 서사시였다. 숲에서 경험하는 상상의 세계가 바다로 옮겨졌다. 전편의 성공 공식이 이번 작품에도 적용되고 있었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자된 만큼, 확실한 성공 보장이 필요했을 것이다.

몇 가지 성공 공식이 보였다. 먼저 전 세계 다양한 관객들에게 보편적인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주제 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주제를 잊게 할 만큼 놀라운 시각적 체험도 있었다. 특히 전작의 미학적인 이미지를 경험한 관객들은 이번에도 충분한 기대감을 갖고 극장을 찾았을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 주제 의식은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었다.

첫째, 정의였다.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현대사회에서 경제적 논리에 의한 파괴와 소멸은 흔한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정의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감독은 인간이 부를 추구하고 축적하는 활동이 맹목적일 때 나타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단지 부를 쌓으면 좋다는 인식과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된 인물을 등장시켰고 악역을 맡게 했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행성을 공격하고, 에너지를 수집하는 군대는 인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명분이라도 있었다. 고래처럼 지능 높은 바다 생명체의 뇌수를 채집하는 헌터들은 명분이 없었다. 그들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다. 그 과정에서 자행되는 파괴와 살생에는 어떤 정의도 설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둘째, 환경이었다. 인간은 우주에 대해, 심지어 지구와 인간 자신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행성의 자연 생태계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거대한 하나의 생명체와 흡사했다. 모든 생명체들이 보이게 혹은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대지와 만물의 여신인 가이아(Gaia)를 연상시킨다. 각기 다른 외형을 하고 있지만 같은 신이 깃들어 있는 존재처럼, 우리가 사는 지구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모든 동물들이 DNA를 갖고 종을 번식한다는 공통점을 고려하면 납득할 수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명분으로 호모사피엔스는 다른 생명체를 존중하는 태도를 잊어버렸다. 다른 생명체를 도구로 만들었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희생시켰다. 이제는 그로 인한 부작용의 피해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인간 또한 거대한 자연의 일부란 사실을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다.  

셋째, 개인의 선택이었다. 대부분의 개인은 조직에 소속된 채 생존한다. 조직의 활동에는 책임이 수반되고, 그것에서 자유로운 수 없는 개인들이 조직의 질서를 따랐다. 대표적으로 피라미드 형 구조 속에서 대다수의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의 지시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명하복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그 관계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잘못된 지시에 대해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특히 상명하복의 원리가 기본 원칙인 군대에서도 상관의 지시에 대한 개인의 문제의식과 갈등은 존재했다. 그 갈등 상황에서 개인의 선택은 수많은 대중문화의 주제 의식으로 사용되었다. 개인은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만, 궁극적으로 개인의 선택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생명과 관련된 행위들에 있어서, 무조건적 복종에 따른 행위일지라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를 수행한 부하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명령을 수행하는 존재는 기계가 아닌 인간이며, 이성적 판단에 따른 양심적 선택의 의무는 조직의 논리를 뛰어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세 가지 공식은 전편의 공식을 계승한 것이고, 이와 달리 이번 작품에는 추가된 공식이 있었다. 다만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어 있는 아바타라는 존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서 다루기 부적합한 공식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작품에는 1편에서 정의한 ‘아바타’란 존재가 등장하지 않았다.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선 돌연변이처럼, 정신과 육체가 융합된 새로운 존재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렇기에 새로운 공식이 추가될 수 있었다.

넷째 공식은 가족의 가치였고, 영화는 이를 독트린처럼 내세웠다. 모든 사건의 출발도 가족이고, 해결도 가족이었다. 미래와 환상의 세계에도 여전히 인간은 가족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았다.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가족이란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다리의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쩌면 다리의 기능을 하는 가족의 역할이 현대 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 같았다. 온갖 사회적 모순과 갈등이 가정 내 문제에서 비롯된 사례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자식의 자율과 부모의 이해에 기반한 가족관보다는 다소 가부장적인 가족관을 부각했다. 부모가 책임감을 갖고 자식의 생각과 행동에 관여하는 엄격한 방식을 강조했다. 부모가 내세우는 엄격한 가치의 수용 여부는 자식의 선택이었다.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표현한 포인트는 자식의 선택이 아닌, 자식이 부모의 가치를 경험했는지 여부였다.

자녀들은 개인의 자유와 가족의 관계는 대립적일 수 있음을 배우고, 두 가지를 조화롭게 다루는 방식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 경험하는 많은 문제의 실마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외계 생명체인 나비족의 삶을 통해, 과거 지구상의 원주민들이 자연과 더불어 살았고 가족 중심의 공동체 의식과 자연을 존중하고 숭배하며 살았던 삶을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언급한 네 가지는 흥행을 보장하는 요인들임에 분명했다. 아쉽게도 지나치게 보편적인 가치를 다루고 있기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은 오히려 새롭지 않았다. 누구나 쉽게 예상을 할 수 있는 이야기의 전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시간의 상영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새로운 볼거리가 지루할 틈을 만들지 않았다. 전작은 숲의 세계에서 나무, 꽃, 동물 등을 새로운 이미지로 표현했으며, 익룡 같은 조류를 등장시켜 속도감 있는 비행 액션으로 놀라운 경험을 제공했다.

이번 작품에는 바다의 세계에서 그 이상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시각적 이미지를 구현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대한 생명체는 바다에 있듯, 숲에서 볼 수 없던 거대한 생명체들이 등장했다. 지능이 높은 바다 생명체는 무형의 문화를 중심으로 연대 의식을 갖고 있었다. 또한 인종과 교감하며, 영혼의 형제애를 나누었다. 날치, 상어, 고래 등을 연상시키는 생명체들의 등장은 익숙함과 새로움의 결합이었다. 익숙함과 새로움의 조화는 관객들이 영화 속 생명체를 받아들이는데 무리가 없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조화는 전편을 능가하는 새로운 시각적 체험으로 충분했다.

끝으로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한 가지 의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네 가지 성공 공식은 단순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공식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것은 작품을 구상했던 감독이 내렸던 결론이고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답이었다. 그렇다면, 감독이 이러한 답을 하도록 만들었던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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