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올빼미
인간은 학습을 통해 사회적 가치와 규범을 습득한다. 사회화 과정을 거친 인간은 사회가 인정하는 상식을 기본 인식으로 장착한다. 상식적인 인간은 상호 신뢰하며, 사회적 교류를 하게 된다. 상식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교류는 기회비용을 낮추고 편리성을 제고하는 이점이 있다. 사회적 안정을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는 동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효율성의 과정에는 단점이 있다. 관념이 고정되면서 편견을 형성하고 무비판적 행동을 유발하기도 한다. 영화 ‘올빼미’는 상식이란 이름으로 감추어진 편견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게 만들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가치는 삼강오륜이었다. 이는 자유민주주의가 정착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로 계승되고 있으며 사회적 통념으로 남아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건과 인물들의 행동을 현재의 상식으로 받아들이는데 무리가 없다. 시대적 배경은 달라도 공유하는 사회적 통념이 많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게 되면 감독이 제기한 인식의 덫에 걸려들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감독이 관객을 우롱하는 것은 아니다.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자신의 의도와 문제의식을 충분히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등장인물들과 유사한 인식의 덫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이 영화의 매력이며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지점이었다. 감독의 의도는 여러 유형의 등장인물에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었다. 상식이 인식의 덫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선택한 인물들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천경수(류준열 분)란 인물은 소경이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낮에는 앞을 볼 수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볼 수 없는 소경이란 이유로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다. 심지어 그가 볼 수 없기 때문에 마음 놓고 비밀스러운 행동까지 하였다. 주변인들은 그를 소경이라 특정한 일만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였기에,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배제하였다.
둘째, 어의 이형익(최무성 분)은 왕과 왕비의 건강뿐 아니라, 왕족의 건강을 총괄적으로 책임지는 의사였다. 의사의 역할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다. 무릇 다수의 사람들이 원하는 의사란 치료의 과정에서 신분의 고하, 부의 유무에 따른 차별을 하지 않는 의사이다. 그러나 어의는 철저히 신분과 권력에 따라서 행동해야 하는 의사이며, 그의 생사가 왕족의 건강 상태에 따라 좌우되기 마련이다. 목숨이 달린 문제라 그가 왕족에게 행하는 의료행위는 그릇됨이 없어야 한다.
셋째, 인조(유해진 분)는 국왕이며, 백성들의 어버이로서 군림하였다. 그의 권력은 삼강오륜이라는 사회적 가치의 수호자란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만백성의 모범으로 인정하고 있기에, 그는 절대자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국왕은 그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보편적 인식에 해당하는 그 사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넷째, 영의정 최대감(조성하 분)은 권문세가이며, 수많은 유생들이 본받고 따르는 명성 있는 신하였다. 그의 말과 행동은 조정의 안위와 국가의 존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대부로서 안정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으려면, 그는 사대부와 유생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의 공적인 선택은 사회적 가치의 재생산이어야 했다.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지극히 당연한 역할을 수행했고, 그 역할에 대한 타인들의 기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었다. 이 영화는 누구나 수용가능한 상식에서 시작되었고, 그 상식이 만드는 편견으로 관객에게 긴장감을 느끼게 하였다. 편견은 관객의 시각 능력을 제한하여, 주인공처럼 소경의 경험을 갖도록 하였다. 감독은 이러한 반응을 예상하고 유도하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인간은 안정을 위해 투쟁하여 안정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고정관념에 서서히 젖어드는 경향이 있다. 안타깝게도 고정관념이 형성되면 또 다른 불안정의 씨앗이 싹트게 된다. 마치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를 정착시켰지만, 평화 상황이 지속되면 평화는 또 다른 전쟁의 씨앗을 품는 것과 비슷하다. 평화 시기에 결투, 경쟁, 전쟁 등의 갈등을 다루는 대중문화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는 것도 그런 경향에 대한 대리만족 때문이다.
사회적 가치는 다수의 인간들이 합리적으로 판단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능을 맡고 있다. 그와 동시에 그 다수의 인간들을 속이고 소수 인간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편견으로 눈이 멀게 되면, 다수의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희생자가 되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