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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수 May 01. 2023

누아르 위트와 미학

영화읽기: 길복순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정의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잘해서 먹고사는데 부족함이 없는 삶’이란 생각을 한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같은 사람도 있지만, 그 두 가지가 다른 사람도 많다. 그런 경우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하고, 잘하는 일로 돈을 벌며 산다.

이런 맥락에서 좋아하는 일을 잘해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영화 ‘길복순’의 주인공(전도연 분)도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자신의 삶을 행복한 삶이라 느끼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녀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좀 특별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사실은 여러 모로 불편한 점이 많다. 오해가 생기기 쉬워 곤란해질 때가 있다. 그것을 알기에 오해가 없도록 하려면 불필요한 설명이 많아지며 자질구레하고 귀찮아진다. 그래서 선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가 납득하기 좋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녀의 재능은 살인이다. 직업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있듯, 직업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을 뿐이다. 그녀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예술의 경지에 이른 실력 때문에 그 업계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통한다. 업계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녀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특별한 직업으로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다. 직업을 제외하면 그녀는 사춘기 딸을 키우는 평범한 엄마일 뿐이다. 딸과 대화 나누고 싶어 하며, 딸과 나눈 대화로 딸을 이해하고, 딸에게 바뀐 세상을 배우며, 엄마로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며 개선하는 보통의 엄마일 따름이다. 이런 특징은 ‘길복순’이란 다소 예스러운 이름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단지 직업 하나로 평범한 보통의 엄마를 엄청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통찰력에 있다. 칼을 잘 쓰는 직업답게 이름에 한 획만 추가하면 극적인 변신이 가능하다. 예스러운 이름, 길복순이 킬복순이란 존재로 탈바꿈한다. ‘킬복순’이 된 복순은 연륜과 실력을 겸비한 예명이 된다.  

이 영화는 살인을 게임처럼 다룬다. 사실 우리에게 살인이 게임이 된 지는 오래되었다. 슈팅 게임과 파이터 게임이 등장하면서 살인이 게임의 한 장르 같은 인식은 형성되었다.

이 영화가 살인을 칭송하거나 생명을 경시하려는 의도 따위는 품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삶이 각박하고 치열할수록 현대인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경쟁 구도에서 살생과 맞먹는 압박감처럼 다가오고는 한다. 그 압박감을 실제 킬러의 목숨 건 혈투로 상징화시킨 것이다.

변성현 감독의 위트와 미학이 돋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킬러가 평범한 주부의 삶을 살며,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쩔쩔매는 상황들은 모두 그의 위트였다. 특히, 야쿠자(황정민 분)와 대결에서 공정성을 주장하는 장면은 ‘누아르 위트’라 칭하고 싶다.

영화감독으로서 미학적 표현은 킬러 간의 혈전에 대한 상상 대결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마치 AI 알파고가 바둑의 수를 다양하게 고려하듯,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한 수많은 방법을 시뮬레이션으로 표현한 영상이 주목할 만하다.

길복순이 차민규(설경구 분)와 정면 대결에서 그 어떤 공격 패턴과 수비 패턴을 취하더라도 이길 수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유리한 차민규는 철저히 이기고 싶었는지, 그녀의 약점까지 끌어들이는 수를 두었다.

목숨 건 싸움에서 약점은 죽음을 의미한다. 상대의 약점을 간파한 사람이 결국 살아남는다는 것도 차민규가 길복순에게 가르쳐준 기술이었다. 그러나 그 기술을 그만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도 사용했고 그녀가 취한 약점은 치명적이었다.  

애써 영화가 주는 교훈이나 시사점을 찾을 필요는 없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받은 느낌은 이상한(?) 위안이었다. 고통스럽고 힘든 일들도 극단의 고통이 등장하면 조금 수월해지는 느낌이 드는 위안처럼 말이다.

그리고 배우 전도연은 어떤 역할을 맡아도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광고 제작을 위해 여러 차례 촬영을 함께 하면서 느꼈던 여배우 전도연의 매력이 그대로 잘 살아난 작품이다. 그녀를 위한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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