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 헤어질 결심
영화의 남녀 주인공은 각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경험하기에 자신이 처한 상황에만 온전히 집중하며 연기한다. 반면 관객은 두 주인공의 관점에서 볼뿐 아니라 전체 상황을 이해하기에 주인공보다 더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된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두 가지 관점에 대한 이해를 모두 요구했다. 남자와 여자 주인공의 비중이 비슷했고 서로 상반된 입장이고 문화적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의 관점 중에서 관객은 자신의 성별에 따라 한 명의 주인공에 몰입하게 된다. 나는 남자 주인공에 감정 이입해서 영화를 보았다. 남자 주인공(박해일)이 사건을 풀어가고 그 과정에서 어떤 심리 상태에 처했는지 공감했다. 그러다 보니, 결말에서 여자 주인공이 선택한 행동에 대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두 번 보고 싶었다. 이 영화를 일부러 두 번 보았다는 평론가도 있었다. 두 번 볼 수 없다면, 바둑 복기를 하듯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되짚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비로소 나머지 관점을 이해할 수 있었고,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에 공감할 수 있었다.
형사(박해일)는 피의자를 의심하고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녀(탕웨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사건이 종료된 후 그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범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는 더 이상 피의자였던 그녀를 좋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붕괴된 채, 그녀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
그녀는 폭행과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엄마의 유언을 실천하고 싶었다. 독립운동을 한 할아버지와 엄마의 유골을 산에 뿌리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자부심 강한 형사를 만났고, 남편 사망은 자살로 처리되었다.
그녀는 피의자에서 벗어나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섰다. 그의 사건에 관심을 갖고 사건해결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그는 우연한 계기로 그녀의 알리바이가 조작임을 알게 되었고, 138층의 검증까지 완료했다. 더 이상 형사의 도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 그는 그녀 곁을 떠났다.
그가 헤어짐을 토해내던 순간의 대화를 그녀는 음성 파일로 저장했다. 자신과 헤어진 그의 목소리를 반복해서 들으며 자신이 사랑받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해도 받을 수 없던 사랑이었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익히듯, 그의 음성을 들으며 자신이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을 붕괴시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사는 모습을 지켜보며 죄책감을 가졌다. 그녀는 그가 자신에게 했듯, 그를 관철하고 기록했고, 그의 음성 파일을 통해 사건을 마무리하는 방법도 깨달았다.
자신을 위해 헤어짐을 결심했던 그 남자를 찾아가 만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더구나 자신의 범죄를 두 번째 남편에게 들킨 뒤에는 그를 보호하는 목적으로 또다시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처음과 같았던 방식, 피의자 신분으로만 그의 앞에 설 수 있었던 그녀는 결국 모든 것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녀가 헤어질 결심을 했다. 자연사로 사람을 죽게 한 경험대로 자살하는 방법을 찾았다. 자신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헤어질 수 있는 방법이었다. 아무도 찾지 못하게 깊은 곳으로 사라지는 방식.
박찬욱 감독은 남녀 주인공 입장에서 각각 충분한 단서를 제공했다. 헤어질 결심이 어떤 마음인지, 얼마나 대단한 결심인지, 여주인공이 마지막에 선택한 결정도 충분히 설명했다. 그리고 결말의 씬도 남자의 말, '핸드폰을 바다에 던져버려요'처럼, 너무도 무덤덤해서 잔혹하게 느껴지는 미학적 방식으로 연출했다.
그런데 남자의 관점에서 보았던 탓에 영화가 끝났을 때는 그 선택이 단순히 방법적 측면의 충격일 뿐만 아니라, 그 상황조차 납득되지 않았다. 그러나 영화를 천천히 복기하며 두 가지 관점을 파악하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사람은 사랑을 위해 무엇을, 무엇까지 할 수 있는 존재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이란 이루어질 수 없으면 슬프고 가슴 아픈 일로 치부되어 버린다. 그렇다고 그 사랑이 더 이상 사랑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러한 사랑이 미학적 측면에서 논의되는 아름다운 사랑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랑이 된다.
인생은 뜻하지 않은 만남을 통해 스며드는 사랑을 주기도 하고, 회개하는 사랑을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