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꿈을 갖는 것도 나이 제한이 있을까? 꿈을 꾸는 일이 마치 젊은이의 특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중년이나 노년은 꿈이 없거나, 없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인식도 있다. 현실에서 꿈을 이루었거나, 현실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이란 나이 제한이 없다. 오히려 중년이나 노년일수록 꿈을 가질 필요가 있다. 꿈이 있으면 젊어지고 삶이 풍요로워지기 때문이다. 영화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는 중년의 여성이 꿈을 갖게 되면서 삶이 풍요로워진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녀의 꿈은 남달랐다. 현실적 생활에 익숙한 나이에 접어든 사람이라면 좀처럼 품지 않는 꿈이었다. 당대 유명한 프랑스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구입해서 소장하고 싶다는 꿈. 그녀가 꿈을 향해 가는 여정을 따라서 영화는 전개되었다.
영화의 시공간적 배경은 1957년 런던과 파리였다. 1957년은 유럽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황폐해진 상태를 극복해 가는 과도기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었지만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며 해리스 부인은 런던에 살고 있었다. 가정부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이웃들과 일상의 순간을 공유하며 평범하게 살았다. 남편의 소식이 그녀에게는 유일한 꿈과 같은 일이었다. 주위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에 익숙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꿈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소소한 일상의 반복으로 너무 멀게 느껴지거나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애써 외면하며 살기 마련이다.
그러던 어느 날, 뜻하지 않은 우편물이 날아들었다. 남편이 보내온 것이다. 그 순간부터 그녀의 삶에는 변화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외면했던 내면의 욕망이 꿈틀대며, 그녀는 결혼 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꿈을 꾸게 되었다. 그녀가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 주위에서 많은 변화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영화의 극적 효과로 본다면, 우연의 연속과 같은 일이었다. 사실 지금까지 그녀가 어떻게 살았고 주위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지냈는지 감안한다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해리스 부인은 이웃들에게 지나치리만큼 친절했다. 그녀는 애정과 인정을 베풀며 살아왔다. 이해타산적 시각으로 본다면, 비합리적인 행동이었다. 사람의 관계가 주는 이해타산이란 눈앞의 이익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사람은 타인의 선의와 도움에 대해 마음의 빚을 졌다고 느낀다. 시차를 두고 기회가 된다면 그 빚을 갚아 나간다. 그녀가 보상을 바라지 않고 하는 행동들이 상대방에게 작은 기쁨과 감동이 되고, 그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 기운으로 퍼져나갔다. 그 기운은 시간을 두고 그녀에게 긍정적인 화답이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사람을 만날 때, 상대를 파악하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직업을 확인하는 일이다. 시각적으로 확인이 가능한 성별, 인종, 연령 같은 생물학적 속성뿐만 아니라,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까지 파악하면 상대를 대충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혈액형으로 상대방의 성격을 파악하는 방법과 유사한 수준이 아닐까? 빠른 판단은 편견의 결과이며, 편견의 원인이기도 하다.
영화는 무엇을 하며 사는가에서 무엇을 꿈꾸며 사는가로 관점을 바꿔주고 있었다. 자신이 처한 현실적 상황을 기준으로 자신이 꾸는 꿈을 제한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영화는 자신의 꿈을 그런 제한에 가두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상식적으로 무모한 꿈일지라도 혹은 아무도 품지 않는 꿈일지라도, 자신이 원한다면 하라고 권유했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이 헛된 꿈이라고 말려도, 자신의 꿈을 관철시키라고 부추겼다. 자신의 꿈을 타인의 입장과 경험으로 한정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해리스 부인의 꿈도 무모한 꿈이고, 아무도 할 수 있다 생각하지 않는 꿈이었다. 그래서 그녀와 그녀의 꿈이 특별했다.
아름다운 드레스는 여성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자신이 만든 환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초대장 같은 것이다. 그 세계에서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기쁨의 시간을 보내는 상상이 가능하다. 더구나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가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을 위한 맞춤 드레스라면 그보다 큰 의미는 없다. 해리스 부인은 자신이 받는 급여의 몇 십배에 해당하는 비용이 필요했기에, 돈을 모았고 주저하지 않고 사용했다. 그 과정의 우여곡절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영화를 흥미롭고 따뜻하게 끌어갔다.
이 영화를 한 줄로 정리하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유럽을 배경으로 유럽 사람들의 삶에 대한 영화였지만, 우리가 경험하고 인정하는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의 가치가 반영되어 있었다. 쉽게 공감하며, 극 중 인물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요소였다. 중년 여성이 꿈을 갖게 되면, 꿈 많은 소녀시절로 되돌아가는 일이 가능했다. 중년의 지혜와 소녀의 감성을 장착한 여주인공은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녀를 만나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그녀의 사랑스러운 면모를 보았다. 또한 그녀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가 아닌, 그녀가 무엇을 꿈꾸는지 알게 되면서 그녀가 행복하게 사는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행복하게 사는데 자격 따위는 필요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행복을 어떤 조건이 충족된 결과로 얻게 되는 심리상태 중 하나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면 행복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쓴 프랑수아 끌로르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가 소개한 행복의 원리 중 하나는 ‘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꿈꾸며 살 권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