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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수 Jun 03. 2023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났는가?

연극 읽기: 추남, 미녀

이 작품에는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 단 두 명의 배우만 등장했다. 두 배우가 2시간이 넘는 이야기를 다양한 역할로 들려주었다. 두 명이 맡은 극 중 인물은 서로가 매우 달랐다. 남성과 여성, 추남과 미녀, 가족 관계, 성장 환경 등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고 공감하며 호감을 가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연극은 그 이유를 연대기처럼 차근차근 풀어주었다.

갓난아기에게 못생겼다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 남자 주인공 데오다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 인생을 시작했다. 가족과 친지들이 정중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결론은 너무 못생겼다는 말이었다. 사춘기 청소년에게 외모란 자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성장기에 외모가 못생겼다는 말을 직접 듣게 되면 누구나 상처를 받는다. 사실 말보다 더 심한 상처를 주는 것이 있다. 바로 주변인들의 시선이었다. 그 눈빛에 움츠러든 데오다는 친구들과 사귈 수 없었고 교류를 포기했다. 스스로 상처받지 않으려고 상대의 반응을 예측하며 대응하는 행동 패턴은 그의 두뇌를 명석하게 만들었다. 그는 명석한 두뇌를 인간이 아닌 새를 향해 사용했다. 그 노력의 결과, 그는 유능한 조류학자가 되었다.

한편, 여주인공 트레미에르는 외할머니와 엄마의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 예쁜 아기로 태어났다. 갓난아기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너무 예쁘다는 칭찬이었다. 더구나 잘 울지도 않고 보채지도 않는 아기였다.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예쁘고 조용한 아기라는 장점은 어느 순간부터 걱정거리가 되었다. 그녀의 외할머니는 손녀가 말을 못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다. 그녀는 말이 없는 편이었다. 말을 하기보다 사람과 사물을 지켜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그녀의 예쁘고 조용한 특징을 어떤 사람은 어색해했지만, 어떤 사람은 매력으로 느껴 다가서기도 했다. 그녀의 첫사랑도 그렇게 시작했다. 다만 그 사랑이 너무나 짧았다. 그녀는 첫사랑에 상처 입고 깊은 내면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외할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으로 견뎌냈고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사람은 살다 보면 누구나 타인에게 상처받을 때가 있다. 이 연극은 상처받은 두 인물을 다루고 있었다. 독특한 점은 아이러니하게, 정반대의 처지에 있는 두 사람이 동일한 상처를 겪었다는 설정이었다. 한 사람은 너무 못생겨서, 한 사람은 너무 예뻐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받았다. 그래서 자신의 내면에 깊이 빠져 본 경험이 있었다. 그런 사람은 상대에게 상처가 있었고, 내면의 자가 치유를 해본 적이 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에 자신을 맞추는 일에 익숙하다. 그 익숙함으로 인해 오히려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시간이 없다. 내면에 빠져있고 굳이 상처 입은 경험이 있는 사람을 만나서 공감하는 절차를 밟을 이유도 없다.

반면, 데오다와 트레미에르는 남들과 달랐다. 그로 인해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만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란 것을 서로 알아차렸다. 더 이상 외모나 성격만으로 상대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밟지 않았다. 그것이 두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석처럼 작용했다.

이 연극은 각본이 전해주는 의미만큼이나 형식적 측면에도 색다른 점이 많았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한 명의 여배우가 매우 다양한 인물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단역이 아닌, 극 중에서 비중 있는 인물도 배우 한 사람이 번갈아 가며 연기했다. 무대에 여러 사람이 등장하다 보면 어수선하고, 관객이 밀도 있는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렵다. 연극에서 여배우가 맡은 주요 인물은 트레미에르, 그녀의 엄마와 할머니라는 모계로 이어진 가족이다. 유전적 관계가 있는 인물들이 중심이므로, 여배우 한 사람이 세 사람을 연기하는 편이 더 적절하게 보였다.

절반의 유전자를 공유하는 모녀간의 대화는 다른 듯 닮았다. 외할머니와 트레미에르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많았지만, 서로 닮았고 공감이 가능했다. 다른 존재이므로 당연히 다르지만, 공유하는 유전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하는데 어떠한 불편함도 없게 했다. 그것이 한 명의 여배우가 세 명의 여성을 연기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1인 다역의 기술적인 문제는 남아 있었다. 혼자서 동시에 2인 이상을 연기해야 할 순간들이 있었다. 연극은 이를 슬기롭게 해결했다. 무대에 두 명이 동시에 있지 않도록 상황을 설정하고 동선을 짰다. 여배우는 자신이 미리 녹음한 오디오와 대화를 나누었고, 전화기를 통해 대화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관객입장에선 한 사람이 아닌, 두 사람이 연기하는 상황으로 경험했다. 무대에 선 여배우는 트레미에르, 엄마, 외할머니 중 한 명으로 등장했고, 자신이 미리 연기한 트레미에르, 엄마, 외할머니와 소통했다. 순식간에 여러 사람으로 감정이입하며 연기를 해야 하는 터라 여배우는 거의 다중인격자가 되어야 했다. 다른 감정으로 전환되는 일을 대화 속도에 맞게 신속히 해야 했다. 그 어떤 연극보다 다양한 감정 소모가 심했다.

인간 내면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루면서, 일인다역으로 진행되는 연극이다 보니, 무대 장치도 그에 맞게 상징적으로 제작했다. 가장 인상적인 무대 연출은 빛으로 그린 원이었다. 원은 울타리였고, 보호막이었으며, 트레미에르의 세계를 상징했다. 울타리는 양면성을 갖고 있는데, 보호와 감금이다. 원은 타인이 주는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만, 자신을 타인과 차단하며 스스로를 감금되게 만들었다.

또한 연극에 영화적 기법이 적용된 점도 특징이었다. 카메라로 배우를 촬영하고, 촬영한 영상이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비치는 방식이었다. 짧은 시차가 있었지만, 무대의 배우와 스크린에 비친 배우가 동시에 존재했다. 극의 주인공인 주체이면서 동시에 관객의 시선이 닿는 객체가 혼재하도록 만들었다.  

끝으로, 스크린에 비치던 지하 공간을 지상으로 수직 상승시켜서, 관객이 지하 내부를 직접 볼 수 있게 했다. 인물 내면의 세계를 외면에서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마치 관객들에게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 때문에 자신의 내부에 갇혀있는 두 주인공은 서로를 마주한 순간 내면을 보았다. 마음의 닫힌 문을 열듯 서로에게 다가서는 심리를 공간적 연출로 표현했다.


그 두 사람은 손을 잡고 함께 미래로 나아갔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고서 내딛는 행복한 행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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